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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밥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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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은 PainterEUN Oct 26. 2022

갈증을 가시게 하는 살얼음 식혜

쓸모에 관하여


엄마는 밥을 매일 하신다.

매일 그 밥을 다 먹게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하루가 지난 밥은 맛이 없다며 밥이 되면 밥솥에 밥을 덜어 내 식힌 후 그 밥은 차곡차곡 냉장고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들어간 밥은 가끔은 볶음밥으로, 가끔은 누룽지로 만들기도 하시는데, 조금 큰 마음을 먹으실 때는 감주(단술) 즉 식혜를 만드신다.

자세한 조리법은 모르지만, 질금(엿기름)을 사 오셔서 바락바락 빨래 빨듯이 빨아 우러나온 뽀얀 물과 밥을 밥솥에 넣고 하룻밤이 지나도록 보온을 유지했던 걸로 기억된다.


감주를 만들 때면 아주 오래된, 보온과 취사 버튼만 있는 커다란 전기밥솥이 집에 등장하는데, 그 전기밥솥을 볼 때면 왜인지 모를 정겨움이 묻어난다.

세월이 지나서도 쓸 곳이 있는 건재함과 동시에, 엄마가 해주는 식혜도 공식처럼 같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밥솥을 보면 쓰다만 작품들이 떠오른다.

시기를 재다가 되려 때를 놓쳐버린 작품.

역량이 부족해서 멈춰버린 원고들.

열심히 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들.

저 밥솥처럼 내 작품도 다시 쓰임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언제고 생명을 틔울 수 있게 관심을 기울여 쓸모를 다할 수 있도록 작품들을 잘 보관해두고 싶어 진다.

결과를 얻지 못한 결과물들도 과정에 그치지 않도록 이따금 꺼내 반질반질 닦아두어야지.


엄마의 식혜는 너무 달아 목이 아플 지경이지만

살얼음 끼도록 얼린 뒤 마시는 시원한 식혜는 더위도 싹 날려버리곤 한다.

내 치워둔 작품도 어느 순간엔 누군가의 갈증을 확 가시게 하는 원고로 탄생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는 날 얼음을 동동 띄운 살얼음 낀 엄마의 식혜처럼 말이다.



Painter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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