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재미가 살아있는 희소가치 챗국
고유함
익히지 않은 미역의 미끄러우면서도 꼬들한 식감, 익혔을 때보다 더 진하게 느껴지는 바다 내음, 시큼하면서도 구수한 국물, 차르륵 수저와 부딪치는 얼음 소리, 이따금 씹히는 생마늘의 맵싸함, 아삭하면서도 칼칼한 고추, 오독 깨물면 고소함이 퍼지는 참깨까지 하모니를 이루는 챗국.
아침, 밤은 제법 선선해졌지만, 한낮의 더위는 아직도 한창이다.
집에서는 더운 날이면 엄마는 종종 미역 챗국을 해주신다.
채를 받쳐 된장을 푼 맛국물에 불린 자른 미역을 넣고 마늘, 식초, 간장, 소금, 깨소금을 넣어 얼음을 동동 띄우거나 냉장고에 넣었다가 시원하게 먹는 냉국인데, 여기에 기호에 따라 고추를 썰어 넣어 칼칼한 맛을 낸다. 챗국의 오리지널 느낌을 맛보고 싶다면 넣는 것을 추천하지만,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고추를 썰어 넣지 않아도 무방하다.
구수하면서도 산미로 인해 깔끔한 느낌이 드는 챗국은 익힌 재료가 없어서인지 들어가는 본 재료의 식감과 맛들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림에서는 국물에 된장이 들어가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 저리 그려냈지만, 실제로 들어가는 챗국의 미역 양은 훨씬 많다. 챗국은 된장 맛국물과 미역 투톱 주연의 음식이랄까.
익히지 않은 생미역을 쓰는 음식이기에 미역을 넉넉하게 넣으면 미역이 전해주는 바다 내음과 재미있게 씹히는 질감과 ASMR로 원재료가 주는 특유한 챗국의 맛을 한껏 더 느낄 수 있다. (시중에 파는 마른미역을 불려 사용해도 무방하다.)
챗국은 국밥처럼 밥을 말아먹는데, 국의 시원함과 밥의 따뜻함을 오가며 느끼는 온도 차도 재미가 있지만, 들어간 재료의 생생한 느낌과 간간한 간의 조화로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챗국 한 그릇만 있으면 더운 날의 밥도 술술 잘 넘어간다.
비싼 재료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여느 식당에 가더라도 흔하게 찾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비단 엄마가 만들어 준 챗국만이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나는 엄마의 챗국을 먹으며 희소가치를 누린다.
많은 날 주머니가 가벼운 나임에도 다채로운 맛 세상을 탐험하게 해주는 엄마 덕분에 때로 가장 부유한 이가 된 듯하다.
어쩌면 특별한 음식이 아닐지라도
엄마가 만들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 음식은 희소가치를 지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적인 맛이 어떠하든 세상 모든 엄마의 음식은 자녀에게 고유한 의미를 지니기에 어떤 일류 셰프의 음식도 우리 뇌에서 기억하는 엄마의 맛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워질수록.
더욱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