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챙기지 않으면 생기는 일

허니문 단물 빠지는 소리

by 쉐비

지은 지 15년 차인 우리 아파트 단지는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주차난이 심하다. 건축 당시 세대당 거의 1대씩만 계획한 것이나 다름없는 수량이다. 그러므로 세대마다 차가 한 대라도 더 늘어나게 되면 그것은 곧 주차 불편을 초래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설령 각 세대가 승용차 1대씩만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유 공간을 찾아 편하게 주차하기란 쉽지 않다. 2대 이상인 세대가 늘어나면 주차난은 당연히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에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규범적 수단이 바로 주차관리 규정이고 그것은 반드시 사용료에 관한 조항을 담고 있다. 보통 세대별 1대는 무상, 2대 이상은 차량 수에 따라 차별적으로 사용료를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 관리사무소에 등록된 차량은 주차면 수보다 거의 50% 가까이 더 많다. 그러니, 밤이 되면 단지 내 도로는 온통 주차된 차량 행렬들로 양쪽이 즐비하다.




이 수치는 그나마 양심적으로 등록한 주민들이 그렇다는 것이지 은근슬쩍 등록하지 않고 있는 세대가 상당하다는 지적도 심심찮게 나온다. 2대 이상인 세대에 대한 주차장 사용료를 더 인상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없을 수 없다. 사용료가 너무 싸다는 것이다. 차량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인상률을 대폭 올려야 한다며 강경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반면, 사용료를 내는 사람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반발한다. 사용료를 올려서 부족한 주차장을 늘리는 등 일말의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마땅히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만한 부지가 전혀 없는 마당에 적절한 대안도 없이 무작정 인상하자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으며 불합리하다고 되받는다. 그것은 한마디로 분풀이 대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질책하듯 노려보며 볼멘소리를 쏟아내는 것이다.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같은 문제라도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은 이처럼 극명하게 갈린다. 그런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쌍방의 주장은 팽팽하게 대립하며 갈등은 고조되기 마련이다. 공동주택 단지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라고 해서 일반 사회와 다를 바는 없다. 해결책은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적절히 중재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모색하여야 한다. 그러한 활동의 중심적 역할은 입주자 등의 대의기구이자 의결기구인 입주자대표회의가 담당한다. 그리고 의결사항 집행자인 관리소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차량 숫자가 주차 용량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황인지라 우리 단지에서 주차관리는 언제라도 입방아에 오를 수 있는 붙박이 현안이다. 주차관리의 요체는, 차를 소유한 거주자들이 빠짐없이 차량을 등록하게 하고, 소정의 주차장 사용료를 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부과하고 수납하는 것, 그리고 출입 통제와 주차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차량을 등록한 표시로 관리사무소가 발급하는 주차 스티커의 의미는 크고 또한 중요하다. 차주에게는 아파트 단지 출입문 통과를 허용하는 통행권이 되고, 관리사무소는 잡수입 원천의 하나로 관리하게 된다. 3개월 전, 입주자대표회의는 차량등록 상황 전반을 점검하고 미등록 차량 색출을 위해 차량 스티커를 새로 제작, 배포하기로 의결하였다. 그에 따라, 기존의 스티커는 새것으로 교환하고, 미등록 차량은 관리사무소에 등록하는 작업을 그동안 진행해왔다. 교환발급 기간이 끝나면 계도기간을 운영한 뒤 강력한 주차단속을 하겠다고 예고도 하였다. 기간 내에 발급률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독려와 동시에 협조를 요청하는 뜻이기도 했다. 관리사무소를 방문하는 사람 중에는 스티커를 왜 바꾸는 거냐고 묻거나, 안 해도 될 일을 괜히 만들어 귀찮게 한다며 역정을 내는 사람도 더러는 있었으나, 대부분은 순순히 협조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기대보다 속도가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 문제였다. 스티커 발급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예정대로 주차단속을 강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경험이 많은 직원들과 의논한 끝에 단속 시기를 좀 더 늦추기로 하였다.


주차장 사용료 조정은 입주민들 사이에서 이미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동대표들이 현재의 사용료 수준이 너무 낮다며 일찌감치 대폭 인상할 것을 벼르고 있었고, 그런 소문이 이미 파다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사용료를 조정하기 위한 주차관리 규정 개정안이 입주자대표회의에 상정되었다. 개정내용은 차량이 가장 많이 편중된 2대 보유 세대의 요금을 인상하는 것이었다. 차를 한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2대 이상 보유 세대로 인하여 겪어야 하는 불편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 2대 이상인 세대는 그들에게 불편을 주는 만큼 적절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제안발언이 있었다. 그렇게 거둬들이는 잡수입은 특정 목적을 위하여 사용할 수는 없고, 연말결산을 거쳐 관리비 차감 재원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법령과 규약에 부합하는 처리다. 회의에서는 인상률이 지나치게 높다며 반대의견이 있기도 하였으나,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현재 1만 원을 2만 원으로 100% 인상하기로 전격 의결한 것이다. 의결과정을 지켜보던 방청석에서는 큰 소리로 반대한다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날 이후, 그와 관련한 불만 민원이 관리사무소로 쇄도하기 시작하였다.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팬데믹(pandemic)으로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이 시국에 100% 인상이라니 그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그렇게 많이 받아서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 것이냐, 이런 결정은 입주민들의 의사를 묻고 사전에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잘못된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규정을 잘 아는 관리소장은 대체 무슨 역할을 했느냐. 따지듯 묻는 민원인을 진정시켜가며 나는 성실하게 설명하고자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심신은 지쳐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나에게 폭언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정중한 말투로 응대한 것이 가장 컸겠지만, 흰머리가 많은 나의 외모도 한몫 하는 듯하였다. 주차관리 규정은 적법하게 개정되었고, 인상된 주차료는 이번 달부터 관리비 고지서에 반영돼 부과될 예정이다.



오늘 입주자대표회의가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의자료를 미리 준비하여 엊그제 각 대표에게 전달하였다. 경비원들께서 수고하여 주셨다. 관리소장은 회의에 참석하더라도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이 아니므로 의결권은 없다. 소장은 회의 준비 – 참관 – 결과 공고 등 행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실제 회의에서는 회장의 리드에 따라 안건을 차례로 설명하고, 안건마다 의결 주문대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회의록은 본래 총무이사가 작성하게 되어 있지만, 대개는 관리소장이 담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회의의 시작과 끝을 모두 소장이 직접 챙기는 살림꾼 역할을 한다. 오늘은 그다지 복잡한 안건이 없어서 모처럼 회의가 일찍 끝날 것으로 예상하며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토의 과정에서 안건에도 없는 주차단속 문제가 갑자기 불거져 나왔다. 요새 단속이 잘 되고 있냐며 회장이 먼저 나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렇다고 짧게 대답하였다. 그때 내 옆 좌석의 연로한 남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이 악어 눈초리를 하고 나를 쳐다보며 발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올해 나이 70세인 남 대표는 제대로 단속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힐난하듯 따지기 시작하였다. 하루 중 단속하는 시간이 언제냐, 단속 시간을 소장이 알고 있느냐, 정문 차단기는 왜 올려만 놓고 가동을 하지 않는 거냐며 연달아 물었다. 내가 주차 단속하는 시간을 말하자, 오히려 그때는 단속해봐야 별 효과가 없다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대각선 방향에 앉은 박 감사도 여태껏 주차단속에 걸렸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며 공박에 가세하였다. 사실 평소 온건한 성격인 그분이 그렇게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어서 임팩트(impact)가 컸다. 박 감사는 작심한 듯 오히려 한술 떠 뜨고 나왔다. 자신이 퇴근하고 귀가할 때마다 정문 차단기가 항상 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외부인도 아무나 들어올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속을 안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정문에서 출입 통제를 엄격하게 하면, 외부인들이 봤을 때 이 아파트는 관리가 잘되고 있는 단지라는 인상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이며 발언을 마쳤다.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난감했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동안 관리과장이 경비원들을 통솔하며 잘 단속하고 있겠거니 생각하며 솔직히 그 문제는 좀 소홀했기 때문이다. 실상이 다르다고 지적을 받고 보니 나는 더 답변할 내용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에 대한 동대표들의 신뢰가 급전직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링 위의 권투선수가 강펀치를 맞고 비틀거리는 상황처럼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얼버무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회장이 끼어들며 은근히 핀잔을 었다. “우리 소장님이 아직 우리 아파트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는 것 같아”. 그러자 반대편에 앉은 총무이사가 나를 두둔하듯 말했다. “6개월 정도 지나면 우리 아파트에 정이 들고 주인의식도 생기겠죠~”. 나는 그동안 잘 챙기지 못했던 점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아울러 앞으로 철저하게 단속하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부임한 지 5개월째인 지금, 동대표들이 앞으로 한 달간 더 소장이 하는 일을 지켜보겠다는 신호를 보내온 이상, 나는 그 뜻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했다. 정치권에서 허니문(honeymoon)은 통상 대통령 취임 후 100일을 가리키는 용어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시작된 의회 특별회기가 100일 만에 끝난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금년 1월, 미국의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과 같은 날 관리소장으로 부임한 나는 은연중 입주자대표회의와의 허니문 기간이 이미 끝난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회의에서 나온 발언을 듣고 그것이 6개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봐주는 것이고 잘하라는 뜻이겠지만, 그렇더라도 분명한 것은 이제 단물이 거의 다 빠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리고 오늘 회의를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회장은 끝으로, 지금까지 주차난과 관련하여 입주자대표회의가 다뤘던 문제들과 인상한 주차장 사용료가 이번 달부터 적용되는 점 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관리소장은 그런 점을 잘 인식하고 주차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회의 종료를 선언하고 의사봉을 들더니 탁! 탁! 탁! 세 번을 두드리렸다. 낙관했던 회의가 아프게 끝났다.



소장의 하루하루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짧고 바쁘다. 바쁘다고 해서 그것을 변명의 이유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본래 관리사무소의 일이란 이론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자주 느끼게 되는 곳이다. 그런 점을 못마땅해하며 힐난하는 동대표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충분히 잘할 자신이 있다고 다짐했기에 스스로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일하다 보면, 부족한 점이 나타나고 실수도 하겠지만, 그것은 병가지상사와 같은 것이니 결코 주눅 들거나 자신감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세상에 작은 변화라도 가져올 수 있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분명 빛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초심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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