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땐 팝(Pop) 음악으로 나를 위로한다.
1년을 24개로 구분한 24 절기 중 열네 번째라는 처서가 이틀 앞으로 다가섰다. 처서(處暑)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한자 풀이로 ‘더위를 처분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한자를 보니 금방 이해가 갔다. 옛말에 처서는 땅에서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했다. 계절의 변화를 눈에 보이듯 반영한 절묘한 표현이 재미있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부터 농촌에서는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묘지의 벌초를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달력을 열어보니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여기저기 무성하게 자라 있는 풀을 깎는 제초작업과 관목의 전지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 모신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산소도 찾아가 벌초를 해야 한다. 더위가 한풀 꺾여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시절이 도래함에 따라 안팎으로 챙겨야 할 일들도 또한 많아졌다. 서늘한 기운에 모기의 입이 비뚤어질 지경이어서 더 이상 극성부리는 일도 사라지게 될 거라고 하니 힘겨운 계절이 이제 정말이지 가기는 하나 보다. 처서는 한마디로 가을로 들어가는 문턱이나 다름없는 절기여서 반갑다. 이처럼 무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는 절기의 손바뀜 소식만 들어도 답답한 가슴에 숨통이 트이는 듯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건 왤까.
토요일 이른 아침, 잠자리에 누운 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나서 힘껏 기지개를 켰다. 몸은 여기저기 쑤시고 천근만근인데 왠지 기분은 가볍고 좋았다. 처서가 지나면 시절이 한결 좋아진다니 모호하고 확실치 않은 부담감이 어느새 훅 떨어져 나간 느낌이다. 지난주는 너무나 힘겨운 시간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주일 사이에 줄줄이 예정된 회의를 차례로 잘 소화하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줄곧 마음이 바빴다. 하지만, 주변 사정은 내가 계획한 대로 차근차근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지는 않았다. 비단 어제오늘에 그친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내 사정과 아랑곳없이 무시로 관리소장실로 찾아오는 민원인들로 인하여 예정한 일을 제때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였다. 요 며칠 사이에는 유독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끄떡하면 찾아와서 과거 자료 찾아달라며 정보공개 청구서를 내미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보통 아파트 단지에서 보기 드문, 참으로 기이한 일들이다. 그중에는 경찰서 제출용이라고 용도를 쓴 신청서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밖에서 전화를 걸어와 뭔가를 따지고자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런 사람 가운데에는 내가 하는 말을 녹취하고자 일부러 전화하는 사람도 있어 피곤하다. 회의가 있는 날이면 방청하겠다고 오는 사람들도 제법 많고, 회의에 끼어들며 큰소리를 치는 등 난장판으로 끝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녹취하라는 주문이었다. 어디서 들은 말을 금방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끼리끼리 만든 단톡방에 올려 불을 지르는 일은 이 마을 특유의 소통방식처럼 보였다. 거기서 들은 말을 확인하고자 말했다는 사람에게 다시 전화로 확인하기도 한다. “그 말 맞아요?” 불신의 극치요, 소용돌이는 그치지 않는다. 쇼펜하우어는 '말은 그 사람이 사는 존재의 집'이라며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는데, 말의 무게와 신중함이 아쉽기만 하다. 그런 소수의 인사들이 다수를 왜곡하는 외딴섬 같은 마을이라고 해둘까. 들여다보면, 쩨쩨하고 넌덜머리 나는 일에 불과한 것이 대부분이다. 한 줌의 사람들이 서로 엉켜 그토록 매달리는 데에는 본질을 벗어난 감정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입주민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갈등과 대립이 물밑에서 상상 이상의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난무하다. 어찌하여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가. 내가 지금 그들과 같은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 마을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이토록 불신이 팽배한 커뮤니티에서 일하는 나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말 한마디 하더라도 신경이 쓰이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기어코 소장을 만나 얘기해야 한다며 쳐들어오듯 사무실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주장만 늘어놓기 일쑤이고 상대방의 말은 좀처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집요하게 자기 앞길 찾기에만 매달리는 행태들의 대행진이다. 이렇게 수려한 마을에 살면서 그렇게까지 서로가 앙칼지게 파고들어야 할 만한 일들이 대체 뭐가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세상을 좁게 보면, 시야도 그만큼 좁아져서 좁쌀만 한 일에 매달리며 쉬이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나저나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고, 다 만나주고, 다 대답해주고 나니 내 몸은 이미 녹초가 되고 말았다. 사실 지난주에는 첫날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 너무 힘들구나. 이 정도면 집에 가야 하는데...’ 혼잣말을 되새김질하듯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지쳐버린 기분은 처음이었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된 여인들의 진절머리가 나는 기분이 어땠을지 떠올려질 정도로 힘에 겨웠다. 나는 이미 에너지가 바닥 나 거의 탈진한 상태여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저마다 욕구불만인 채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피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견디기 어려운 임계점을 처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신만만했던 인내심의 한계가 정령 거기까지인가 나를 의심하기도 했다. 눈치 빠른 정 대리가 커피 한잔 가져오며 나에게 말했다. “소장님, 오는 사람마다 다 받아주면 어떡해요?” 퇴직 전 사무적으로 일반 민원인을 대할 때와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기력도, 의욕도 진작에 바닥난 상태였지만, 어쨌든 주말의 휴식을 잃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금요일 저녁 늦도록 사무실에 홀로 남아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처리해 두고 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 덕분에 토요일인 오늘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은 편하고 여유로워서 좋았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차에 문간방에서 자고 일어난 아내가 안방으로 달려오며 나를 불렀다. “여보! 여보!! 여보!!!“ 올리비아는 자주 그렇게 ‘여보!’ 소리를 세 번씩 부르곤 한다. 사람들이 많은 백화점이나 아웃렛에서도 큰소리로 그런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만 빼꼼히 쳐들고 그쪽을 바라보기만 한다^^ ”아니, 일어나자마자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니~, 있잖아~, 밖에 아주 서늘한 바람이 부는데 같이 나갔다 옵시다^^“ 나는 잠은 충분히 잤지만, 여전히 몸이 무거워서 나가자는 말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눈만 깜박거리며 그대로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내 머리맡에 다가와 앉으며 어서 가자고 보채기 시작하였다. 요즘 내가 운동을 너무 안 해서 배가 나와 못 쓰겠다며 재촉하였다. ”그래, 가봅시다!“ 나는 찌뿌둥한 기분을 전환해 보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밖에는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우산을 하나씩 들고 집을 나섰다. 소나무 다리 터널을 지나는 동안 주고받는 말들이 터널 내에서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우리는 아이들처럼 재미있다는 듯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말하고 웃으며 시내 중심지(CBD)를 향해 걸어갔다. 가는 동안 빗줄기는 가끔은 강해졌다가 가끔은 가늘어지기를 반복하며 계속 내렸다. 아내는 내가 쉬는 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신이 난 표정으로 끊임없이 말을 이어갔다. 휴일 아침 차량 통행이 뜸한 사거리 도로 건널목에 이르자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었다. 아내는 좌우를 살펴보고서는 아무도 없으니 얼른 가자고 했다.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만류하였지만, 올리비아는 그냥 가겠다며 잰걸음으로 횡단보도를 휙 건너가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혼자 남아 파란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서히 길을 건넜다. 아내는 벌써 저만치 앞에서 답답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빨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우리는 같이 길을 갈 때면 언제나 그렇게 상반된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내곤 한다. 아내는 길이 아니더라도 그냥 샥~ 가로질러 가기 일쑤지만, 나는 비록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바로 난 길을 따라서 간다. 서로가 편한 선택을 한 결과다. 내가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올리비아가 기어코 한마디 했다. ”어이구, 아무도 없는데 그냥 빨리 오면 되지, 뭐 한다고 그렇게 빼~앵 돌아서 와?“.
한참을 더 걷다가 우리가 가끔 가던 길목 카페에 들어갔다. 널찍하고 깔끔한 데다 사람도 별로 없어 쾌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아침 식사를 빵과 커피로 간편하게 때우기로 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마주 앉았다. 나는 카운터에서 허니바게트볼 빵과 까뻬라테, 올리비아에게는 치킨 케사디아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주었다. 이번 주에는 집에 오지 않은 아들과 딸 얘기를 하며 포크와 나이프로 빵을 자르며 한 조각씩 먹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지난주 일터에서 내가 무척 힘들었던 심경을 꺼내어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내는 갑자기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좀 더 자세히 말해보라고 채근하기 시작하였다. 일주일 내내 몸에 기력이 없어서 마치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꾹 참으며 버텼노라고 되풀이하였다. 마치 무서운 선생님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고백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져 속으로 살짝 웃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올리비아는 안 되겠다며 정색을 하고 당장 병원에 가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늘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까짓 것 괜찮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다그치기만 했다. ”어서 일어나요. 빨리 병원에 가게. 몸이 큰일 나게 생겼는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여“. 더 이상 저항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곧바로 걸어서 인근의 내과병원으로 직행하였다. 도착하자마자 올리비아가 접수대로 달려가더니 신속하게 접수 수속을 마쳤다. 나는 순식간에 강제로 입원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이 1인실에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다. 그리고 주사액이 든 비닐봉지 두 개가 높이 매달린 링거 주사기를 오른팔에 꽂은 채 거의 한 시간 가량을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링거 주사를 맞는 동안 아내는 아들과 딸에게 내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전했다. 반응은 물어보나 마나지. 아이들은 아빠가 불쌍하다며 당장 일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며 카톡방을 달궜다. 아내도 건강이 더 중요하다며 나보고 빨리 그만두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나는 동생들을 놀려줌과 동시에 이런 일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누운 자세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왼손에 들고 링거 주사를 맞고 있는 나의 모습을 어렵게 직찍 해 오 형제 카톡방에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장형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며 놀라고 또한 염려도 많이 해주었다. 줄줄이 전화도 하며 건강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였다. 나는 은근히 동생들의 그런 반응을 보고 위안을 느끼며 즐거워하였다.
평소 같으면 나의 주장과 고집을 아내에게 좀처럼 굽히지 않는데, 오늘은 어쩌다 상황이 그렇게 전개돼 내가 꼼짝없이 아내에게 굴복하고 만 꼴이 되고 말았다. 한편으로 허망하긴 했지만, 오늘은 두텁고 즉각적인 보호를 받은 느낌이 들어서 비록 순순히 따랐을지라도 자존심 상한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그토록 다투며 살아온 우리 두 사람인데, 어쩌다 이렇게 아끼고 챙겨주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 살다 보니 세상에 이런 일, 이런 날도 있구려^^ 바야흐로 나이가 듦에 따라 신체가 점차 허약해지니 아무리 강골 남편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아내에게 오늘처럼 순순히 굽히고 의존하게 되는가 싶어 순간 허탈했다. 이 단지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꼭 7개월이 지난 시점에 나를 돌아보는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갈참나무 터널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바로 드러누웠다. 참 오래된 음악이지만, 언제 들어도 좋은 나의 애창곡 <Massachusetts> 동영상을 열었다. 파란 분위기의 콘서트장에 운집한 관객들 사이로 잔잔한 멜로디의 전주곡이 흐르기 시작한다. Feel I'm going back to Massachusetts... 오늘따라 그들 비지스(Bee Gees) 3형제가 바로 지금 나의 기분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다. Talk about the life in Massachusetts, speak about the people I've seen... 입 가에 미소를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