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 초, 입주자대표회장단으로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다. 신임 관리소장이 앞으로 잘해달라는 뜻을 담은 격려의 자리라고 생각하며 응했다.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으레 그렇듯 주로 나의 신상과 경력은 물론 성격과 일하는 스타일을 탐색하는 질문들을 쏟아냈다. 가끔 웃음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마치 심층 면접장에 들어서 있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동대표들이 나에 대하여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계속 궁금해하며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었다. 입주자대표회장 주도하에 일방적으로 흐르는 대화는 점차 그들이 사는 단지 이야기로 옮겨갔다. 그동안 아파트 단지에서 많은 일이 벌어졌다고 하였다. 그 가운데 특히 잘못된 일들이 있었다며 하나, 둘 나열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옆에 앉은 감사와 총무이사가 회장이 하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올커니,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며 나는 그의 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회장단과 같이 점심 먹는 시간이 격려가 아니라 실은 주문하는 자리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관리소장의 손을 빌려 처리하려는 의도로도 들렸다. 일종의 청구서를 받는 기분이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작은 화려한 장미꽃을 보는 듯하였으나, 결국은 가시처럼 날카롭게 벼르는 예봉을 보고야 말았다. 긴장된 마음으로 향후 전개될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했다.
일행은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서서히 걸어서 단지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나와 나란히 걷던 입주자대표회장이 우리 아파트 단지 조경이 참 잘돼 있다며 손을 들어 좌우 주변을 번갈아 가리켰다. 소나무, 벚나무, 느티나무, 반송, 배롱나무, 단풍나무, 메타세쿼이아, 느릅나무, 박태기나무, 쥐똥나무 등 크고 작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조화롭게 서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로는 철쭉, 영산홍, 회양목, 눈주목 등 여러 종류의 관목들이 각기 가지런한 무리를 진 채 뽐내고 있었다. 그밖에도 담벼락, 옹벽마다 담쟁이덩굴, 인동덩굴, 줄사철나무 등이 두텁게 감싸고, 바닥에는 꽃마리, 황금 낮 달맞이, 스텔라 원추리, 씀바귀, 바위취, 초롱꽃, 제비꽃, 차가 프록스, 물싸리, 조록싸리, 자주달개비, 왕포아풀 등등 무수한 화초들이 가냘픈 멋을 부리고 있었다. 단지 밖의 거대한 자연공원과 잘 어우러진 단지 안의 조경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콧노래가 나올 법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장은 과거에 조경 우수단지로 선정된 경력도 있다며 우쭐했다. 밥 먹고 이쑤시개 물고 가볍게 하는 이야기일지라도 단지와 관련되는 것이라면 관리소장은 어느 하나라도 가볍게 듣고 지나쳐버릴 수 없다. 조경 관리도 신경 써야 할 주민들의 주요 관심사라는 것을 유념하기로 하였다.
저만치 관리사무소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홍 반장이 삽을 들고 뭔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회장이 그에게 슬금슬금 다가가더니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 말이 시비조로 들렸는지 홍 반장의 반응이 의외였다. 보면 모르냐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회장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상치 못한 이런 상황에서 소장인 내가 과연 어떻게 처신해야 옳은 것인지 순간 고민스러웠다. 회장님께 그게 무슨 태도냐며 홍 반장을 나무라야 하나, 아니면 내가 따로 얘기하겠다며 회장님을 만류해야 하나.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회장은 약간 당혹해한 표정을 짓다 말고 금세 언성을 높이며 그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왜 필요하냐, 자재로 쓰는 모래가 질이 왜 그 모양이냐, 물량을 누가 산정했고 어떻게 했느냐며 몰아붙였다. 홍 반장도 말끝마다 조목조목 대꾸하며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회장님이 뭘 좀 알고 얘기하는 거냐며 대들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회장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나를 힐끗 한번 쳐다봤다. 나는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냥 겸연쩍게 웃었다. 회장은 다시 홍 반장을 바라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찔러 넣듯 말했다.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거든!” 그러면서 기왕에 하는 일이면 똑바로 하라고 톡 쏘아붙였다. 비록 내놓을 만한 자격증은 없어도 이 바닥 경험이 적지 않은 홍 반장은 그저 기가 차다는 듯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러더니 하늘을 향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이고, 나 참~~”.
다음 날, 회장은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나에게 권하며 어제 있었던 홍 반장 일을 다시 꺼냈다. 그 사람이 개판이라는 것이었다. 일을 대충대충 하는 데다가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고 혹평하였다. 내가 부임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라 알 수 없지만, 심지어는 그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며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 대한 불신의 골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었고, 이미 눈 밖에 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게다가 홍 반장이 누구와 개인적 인연으로 채용되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고 넌지시 말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강화하였다. 그런 사람에게 주민들이 1년에 수천만 원씩 봉급을 주는 건 말도 안 되는 예산 낭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나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해졌다. 이런 일을 맞닥뜨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난감했다. 하지만, 벌어진 상황을 피해 갈 도리가 없었다.
관리사무소의 직원들 사이에서도 홍 반장은 이미 왕따 취급을 받고 있었다. 말투가 점잖지 않고 거친 데다 독불장군처럼 행세하는 것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색안경을 끼고 보면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그 역시 누군가 뒤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 저러는 것일까 하고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보다 나이가 젊은 시설과장과 언쟁이 잦았고, 이제 지시에 불응하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보다 못한 최 과장이 폭발하며 그에게 직격탄을 날려버렸다. “이봐요, 홍 반장님, 그렇게 맘대로 할 거면, 차라리 집에 가세요~~~!“. 거의 동년배인 내가 책임자로서 타일러도 그는 전혀 달라지는 기미를 보여주지 않았다. 되레 ”그럴 바엔 차라리 나를 자르라“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급기야는 책임자이자 인사권자인 소장의 지시도, 명령도 따를 수 없다고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다. 내가 그를 불러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는 녹취하겠다며 버젓이 휴대폰을 켜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가 하면, 동시에 내가 하는 말을 노트에 또박또박 적겠다며 저항하는 태도를 보였다. 자기도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면서 노동청에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공세를 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하얗게 굳어 있었고, 글을 쓰는 그의 손끝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우리가 왜 이 지경에 빠져 헤매야 하는지 착잡한 마음도 들었지만, 반전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한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직원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최 과장은 저런 사람과 도저히 같이 일할 수 없다며 나에게 징계해야 하지 않겠냐고 촉구하기도 하였다.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나는 여러 날을 두고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본사 고문 노무사에게 전화를 걸어 징계 등 처리 절차를 상담하였다. 가끔 주변에서 있었던 유사한 일들이 떠올랐지만, 예상치 않게 직접 당사자가 된 이상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 아픈 문제일수록 해법은 원칙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확인, 절차준수, 규정적용 등을 정확히 하자면 전문가에게 1차 확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노무사는 계약기간 중인 직원을 해고하려면, 해고를 정당화할 만한 급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답변이 참 사무적이고 교과서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노무사님, 여기가 무슨 일반기업도 아니고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인데 뭐 급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는 게 있을 수 있나요? 파산이나 합병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냐고요? “. 어이없다는 나의 반문에 노무사는 자신도 그걸 모르는 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법의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요즘은 법이 약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추세이니 아무쪼록 절차에 하자가 없도록 소장님이 잘 처리하여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또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상황 판단과 책임은 오로지 관리소장이 감당해야 한다는 냉엄한 사실 앞에 허약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런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직을 걸어야 하는 것이 관리소장의 운명이라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했다.
본사의 이 지역 담당자와 징계위원회 회부에 관하여 협의를 하는 등 고민을 거듭하던 중 홍 반장이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저항을 중단하고 그만두겠다는 의사표시로 보여 내심 반갑기도 했고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앞으로 그가 보일 수 있는 행보는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외부기관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나는 그에 대응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관청에서 나를 부르면, 가서 소명할 생각으로 그동안 취했던 조치들을 일목요연하게 일지로 정리하였다. 관련 서류들도 가지런히 챙겨뒀다. 주변의 관록 있는 동료 소장님들의 의견을 듣기도 했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의 견해를 들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인근 지역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재취업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토록 일찍 다시 일자리를 찾았다니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도 생각하였다. 쉬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조기 재취업에 성공하는 것이 문제를 치유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일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일터에서 주변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며 새출발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어디서나 사람들은 사람으로 인하여 즐겁기도 하고, 반대로 힘들어 하기도 한다. 감정과 이성이 작용하고 누구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인격이 있기에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살피고 마음의 문을 좀 더 넓게 열어놓는다면 상호 공감하며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은 더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일방만의 유불리는 있을 수 없다. 구겨진 상황을 풀자면 그 이해 당사자 모두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많이 고민하고 최대한 인내하며 최선의 해법을 찾는 노력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경험은 소중하다. 그것을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활용할 때 우리는 더 지혜로워질 수 있고 인간성도 완성을 향해 진일보 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린 사회의 적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우주의 도움과 행운은 노력하는 자에게만 스며든다고 한다. 어떻든 이번 고비를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우주의 도움이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Thank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