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창가에 서서 물끄러미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관리동 건물 2층에 있는 탁구장이다. 이용자가 거의 없어 항상 비어 있다. 건넛방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다가 휴식차 수시로 들락거리는 나의 부속실 같은 곳이다. 시야가 제한적이기는 하나 창가에 다가서면 아파트단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망루 같은 공간이다. 청소와 쓰레기 수거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자연스레 내다보게 된다. 바깥은 언제 봐도 아담하고 조용한 단지라는 인상이 풍겨온다. 군데군데 서있는 진초록 조경수들의 자태가 수려하고 아름답다. 절로 마음 흐뭇해지고 기분은 산뜻하게 전환된다. 헝클어진 상념들이 가지런히 다시 정리되는 시간이다.
지난달 말일자로 퇴사한 경비원 박 반장님의 후임을 생각하고 있었다. 80세가 넘었건만 1년만 더 일할 수 있게 도와달라던 그였다. 한 편이 되어드릴 수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경매로 산 아파트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고 했다. 일자리가 없으면 비싼 금리를 감당해야 한다며 하소연을 하였다. 그 연세에도 재테크에 열심인 모습이 놀라웠다. 1년 전에는 다른 이유를 들먹이며 한 번만 더 연장하자며 한바탕 소동을 벌였던 전력이 있다. 소위 마을에서 콧방귀깨나 뀐다는 주변 인사들을 동원해 은근히 압박을 가하는 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겉으로는 아쉬운 마음에 굽신거리는 척하지만, 속내는 빤히 들여다 보였다. 나더러 당신이 감히 나를 이길 것 같냐며 강하게 밀어붙이는 움직임이 쉽게 감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곤혹스럽고 난감하였지만, 단호해야 했다. "박 선생님, 이제 건강을 생각하셔야 할 때 아닌가요...?" 나보다는 오히려 용역회사가 반장님의 건강을 더 염려하고 있었다. 온열질환, 뇌졸중, 돌연사 등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특히 고령 근로자에게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 요인을 미리 제거하고자 하는 용역회사의 방침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불가피 후임자를 물색해야 했다.
퇴사한 반장님도 집에 돌아가면 엄연한 입주자일 것이다. 관리비를 내는 사용자 입장이 되면 태도는 사뭇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 달 후, 입주자 중 박 반장님과 연배가 비슷한 어르신이 관리사무소에 찾아왔다. 인건비가 갑자기 많이 나왔다며 그 연유를 나에게 캐물었다. 몇 달 전, 기전주임 1명을 더 충원한 데 따른 영향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당시 입주자대표회의에 실정보고를 하고 고뇌를 거듭한 끝에 채용하기로 의결을 했던 사안이다.
영감님은 공고를 했냐, 주민동의를 받았냐는 등 절차를 제대로 밟은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위수탁관리계약서를 복사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선생님, 그건 정보공개청구서를 작성해 주셔야 합니다." 영감님은 옆에서 경리주임이 살며시 내미는 양식을 받아보고서는 순순히 써주었다. 내가 이 동네에 부임한 이후 1년 6개월 만에 처음 받은 제1호 청구서였다.
며칠 후, 영감님은 같은 생각을 하는 다른 세 분과 함께 다시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미리 약속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면담을 갖기 위한 자리였다. 알고 보니, 그분들은 8년 전에 동대표를 같이 했던 사이였다. 지금은 연세가 70대 중반에서 80대 초반에 이른 원로분들이었다. 비록 직원 한 명을 증원하더라도 그에 따른 임팩트는 평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관리비를 주택공급면적에 비례하여 부과하기 때문이다. 대형 평형에 사는 사람의 불만이 가장 컸다. 금전적으로 부담을 주는 결정을 하는데 왜 미리 주민동의를 받지 않은 거냐며 역정을 냈다. 그는 분쟁조정기구에 조정신청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다.
안건 처리의 적법성 만을 주장할 일이 아니었다. 공무원 출신인 회장님의 대응은 차분하고 논리적이었지만, 그분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과거에는 없었던 법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개정이 되고, 그에 따라 관리주체의 의무사항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안전을 중시하는 국가의 정책방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국가가 법을 수단으로 주택관리에 개입하는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하나같이 관리비에 부담을 더하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회장은 그래서 한 명을 더 고용하게 되었다는 데에 중점을 두며 열심히 설명하였다. 비슷한 규모의 주변단지들보다 인원이 1~2명 적은 사례조사 현황도 참고로 보여드렸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소 귀에 경읽기나 다름없는 모양으로 줄곧 비판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우리는 우리식을 살아야 한다며 증원을 취소하고 원상 복구하라는 것이었다. 난감하였다.
뒷 좌석에 앉아 배석해 면담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착잡하였다.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 1위라는 우리나라 실상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국민연금제도가 1988년도에 도입되었으니 70대 이상 노인들이 받는 금액은 젊은 세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 것이다. 관리비가 단돈 1만 원만 추가되더라도 충격이 클 거라는 생각에 면담을 지켜보는 나의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한편으로는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 푼이라도 절약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어르신들의 고뇌이고 현주소다. 주변의 내 친구들, 아니 나라고 해서 그런 사정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을 하더라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마저 장담하기가 어렵다. 서글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