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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Mar 25. 2023

 "전기과장님 모십니다"

때 아닌 구인난 딜레마

   일 잘하는 김 과장이 사직서를 냈다. 근무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아무런 말도, 기미도 보이지 않았기에 놀랐다. 그렇지만 그는 속으로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퇴직금은 받고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만 1년을 채웠다는 것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만두려면 미리 언질을 줘야지 이런 식으로 하면 곤란하지 않냐며 내가 짜증을 냈다. "미리 말하면, 소장님이 붙잡을까 봐서 그랬죠...^^" 당장 내일 떠나더라도 우선은 갱신 근로계약서부터 써놓자고 했다. 다만 며칠이라도 여기 있는 동안은 근거 없이 일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이 생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근로기준법상의 엄한 규정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과장은 내 말을 듣고 순순히 계약서에 서명을 하였다. 곧이어 그가 가야 할 날을 못 박아 기재한 사직서를 내 앞에 내밀었다. 후임자를 채용해야 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나는 즉각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누리집에 전기과장 구인공고를 냈다. 여기는 소장뿐만 아니라 과장, 주임, 경리 등 모든 관리사무소 직원의 구인과 구직공고가 시시각각 올라오는 인력시장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해진 양식에 급여 수준을 적고, 학력(고졸 이상)과 실무경력(전기산업기사 1년 이상)도 적었다. 그런데 불안했다. 이미 게시돼 있는 구인공고문들을 주~욱 살펴보니 김 과장의 급여가 상대적으로 너무 적었다. 앞전 전임자가 떠나며 했던 말이 다시 소환되며 나의 귓전에 울렸다. '그 월급 보고 여기 올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김 과장도 내가 올린 이번 구인공고를 봤다며 비슷한 말을 했다. 경력 1년 이상인 사람이 그 월급에 여기 오겠냐며 자격을 완화해야 한다고 재촉하였다. 그는 후임자가 오든 말든 이달 말에는 갈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집이 서울에 있는 그는 이곳 용인까지 와서 고시텔에 묵으며 일하고 있다. 그런 그가 집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는데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즉시 공고문을 수정하였다. 경력 제한 없음. 학력도 제한 없음.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열악한 근로여건을 재차 확인해야 했다.




   구인공고를 낸 지 1주일이 지나고 10일이 지나도 이력서 한 장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장은 어떤 역할을 해야 마땅할까. 손 놓고 무력하게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공석을 적기에 채우고 업무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노력하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즉각 다른 단지 구인공고문 30장 가량을 출력하였다. 그리고 각 공고문마다 세대수와 경력, 그리고 급여란을 볼펜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하였다. 결재 차 관리사무소에 들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님께 실정과 상황설명을 하며 그 공고문 세트를 내밀었다. "이런 말씀드리기가 참 뭐 한데, 아무래도 회장님과 대표님들께서 실상을 좀 아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공고문들 가져가셔서 한번 살펴봐주시죠." 회장님은 그 자리에서 페이지를 넘기며 대략 훑어보더니 우리 월급이 너무 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급여인상은 회의에서 결의를 해야 하니 우선은 '급여인상 예정'이라는 문구를 넣어 재공고 하자고 하였다.




   통상 기전과장으로도 부르는 전기과장이 담당하는 역할은 많다. 관리사무소 규모가 작을수록 더욱 그렇다. 전기안전관리자, 소방안전관리자, 승강기안전관리자, 기계설비유지관리자 등을 혼자서 전담하며 기술업무를 총괄한다. 자리가 비면, 그만큼 업무에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그런데, 전기과장 뽑기가 쉽지 않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해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 2022년 전기안전관리법이 개정되면서 경력인정기준을 강화한 영향이 커 보였다. 그러다 보니, 최근 들어 이들의 몸값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치솟아버렸다. 여러 구인공고에 제시된 급여 수준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월급이 적은 단지에는 구직자들이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단지의 이메일 접수상황으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2주가 지나도록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정한 현실을 확인하고 한숨만 나왔다.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지만, 관리업체나 관리소장이 취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과 방법이 없었다. 본사 본부장에게 상황을 전하고 조언을 구해봤다. 급여가 너무 적어서 대폭 인상하지 않으면 뽑기 힘들 거라고 잘라 말했다. 월급 인상이 당근책이고 핵심이라는 데에 견해차는 없었다. 그렇지만, 권한이 없으니 더욱 답답하기만 하였다. 소장 혼자 걱정한다고 해서 돌파구가 나올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 정도 되면 인력확보를 위해 재빨리 결단하고 당근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행 위탁관리방식 체제에서는 구조적으로 그것이 어렵게 되어 있다. 직원 채용은 관리소장 소관이지만, 급여 결정권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차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게 된다. 소장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동안 입주자대표회의나 동대표들은 그것이 마치 남의 일이나 되는 것처럼 나 몰라라 하며 태연한 모습이다. 그들의 속내는 주택관리를 관리업체에 위탁했으니 당신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이다. 그렇지만, 법령상으로 책임소재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오산이다. 법률은 안전관리자를 선임하여야 할 주체가 건축물의 소유자 또는 점유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주택관리업자는 점유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소유자에게 선임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아파트단지의 소유자 역할은 입주자대표회의가 담당하고 회장이 대표한다. 안전관리자의 선임신고인이자 해임신고인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직원 채용에 발 벗고 나서야 할 사람은 바로 회장과 동대표들이다. 일선에서 뛰는 소장에게 응당 협조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상호 긴밀히 협력하고 공동 대처해야 하는 문제다. 이 과정에서 관리소장은 당면한 인사문제를 풀기 위한 가교역할에 적극 나서야 한다. 입주자대표회의가 반응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제반 실정을 보고하고 설득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김 과장 후임을 채용하기 위하여 회장님이 대책을 강구해 보자는 견해를 표명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매듭이 잘 지어질 수 있도록 소통하며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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