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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Jun 19. 2023

소장들의 수다

분회 모임 활용법

   갈까, 말까. 관리사무소장들이 한 데 모여 같이 점심 먹는 분회 모임을 두고 망설이는 생각이다. 이게 매월 하는 건지 분기마다 하는 건지 조차 아직도 구분이 안 된다. 매번 그렇게 맹탕 기분이다. 그동안 몇 번 나가봤지만  의미도, 재미도 느끼지 못한 실망감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즐겁게 해 주기를 바라서가 아니었다. 정년퇴직하고 나서 이 분야에 뒤늦게 뛰어든 터라 대부분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우선은 얼굴을 트고 싶었다. 그래서 활발하게 정보교환 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가 형성되면 그것만으로도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희망과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내가 더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막연하나마 여전히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고 있다. 분회장 단톡방에 모임 공지를 띄우면 그나마 고민하게 불씨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주, 내가 적을 두고 있는 소속 관리업체 분회 모임이 있어 다녀왔다. 참석자가 30명 가까이 되었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본부장 일정에 맞추느라 한차례 날짜를 바꿔서 잡은 날이었다. 소속 업체 분회 모임은 내키지 않더라도 꼭 참석한다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소장에 대한 임면권을 본사가 가지고 있다는 현실적 판단을 한 결과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뭘 모르던 시절에는 배짱 좋게 모종의 핑계를 대고 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본부장이 참석하는 일차 명분은 현장에서 고생하는 소장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그는 모임에 참석한 소장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나에게전기과장 잘 구했냐고 물었다. 두 달 전에 있었던 우리 단지의 현안문제를 잊지 않고 들먹여서 놀라웠다. 비록 이미 지나간 일이기는 하지만, 100개 가까운 소관 단지 중에서 정확히 나와 관련된 문제를 콕 찝어 기억하고 있다니. 본부장다운 면모가 보였다.

   

   식사가 나오고 밥을 먹는 순서가 되자 여기저기서 끼리끼리 어울리며 이야기꽃이 만발하였다. 왁자지껄 웃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무질서한 상황이 곧 정리되고 상호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고 나누는 자리가 만들어지리라 예상하고 기다렸다. 유감스럽게도 식사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런 분위기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홀로 점잔 빼며 어색하고 멍하니 앉아있는 모양이 오히려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데에 일조하는 것 같았다. 한 데 섞이지 못하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불현듯 밥값 생각이 났다. 무엇 하나 얻은 것 없이 공허하게 그저 빈 손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게 뻔했다. 나의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각성하였다. 바로 옆에 벌어진 이야기 판에 살짝 귀를 기울이며 리듬을 타고서는 가까스로 끼어들 수 있었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간에 실감나는 경험담을 나누는 성과(ㅋ?ㅋ)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뭔가 건진 것 같아 마음이 후련하고 위안이 되었다. 소장들끼리 사귀고 정보교환하는 방식에는 거창한 격식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 간의 격의 없는 소통은 이런 자리에서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그때서야 게 되었다. 만약 누군가 나서서 자리를 정리하고 질서 정연하게 진행을 하였다면 그런 효과는 오히려 반감했을 것이다. 식사를 마무리하면서 본부장이 마지막 속내를 드러냈다. 위탁관리계약 만료가 도래하는 단지에서는 재계약이 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신규 수주할 기회가 포착되면 꼭 알려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영업실적에 대해 그가 받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식사 후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좀 더 소통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인근 까페로 자리를 옮겼다. 나도 같이 갔다. 지난번 주택관리사협회 분회모임 때 참석했던 식후 커피 타임 기억이 좋아서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소모임 자리가 되니 대화가 분산되지 않고 한결 편하게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협회 분회 모임은 소속 업체 분회와 달리 보다 수평적 성격이어서 더 자유스럽고 편하다. 어쨌거나 낯선 사람들과 거리감을 좁히기는 밥 먹는 시간도 좋지만, 커피 타임이 그만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30년 직장 생활하는 동안 무의식 중에 몸에 밴 격식과 위계질서를 의식하는 딱딱한 매너가 문제였다. 소장들 간의 소탈한 모임에서 나도 모르게 그것이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종종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모임에 가면 한쪽 구석에 앉아 말없이 분위기만 살피는 사람이 꼭 한두 명은 있다. 그들 중에는 특히 나처럼 정년퇴직하고 관리소장직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많다. 딱 보면 티가 나고, 무언 중 서로가 힐끗 눈치만 보며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돌아보니, 거추장스러운 허울을 벗고 이 바닥에 적응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가급적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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