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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Jan 15. 2022

실무경험이 스펙이라오!

들은 이야기, 겪은 이야기, 지켜본 이야기



   아파트 관리사무소 실무경력과 주택관리사 자격. 종사자라면 점차 시간이 감에 따라 겸비하게 되는 필수 요건이다. 그와 같은 외형상의 완전체를 갖춰야 시장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고객인 입주자대표회의가 그것을 원한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초보자에게는 난감하고 높은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경험이 아예 없거나 일천하다고 하면 좀처럼 불러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개구리에게도 올챙이 시절이 있었듯이 이미 분야의 고수 반열에 오른 사람일지라도 실무경험이 많지만 자격증이 없거나, 자격증은 있으나 경험이 전무한 시절은 있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저마다 독특한 방법과 기회를 활용하여 길을 개척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흑역사를 써온 사람들이다. 실제 경력이 무려 5년, 심지어 10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면, 이 험한 바닥에서 어떻게 그렇게 장수할 수 있는지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와 롱런(long run)하는 비결을 들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자격증이야 순전히 본인의 노력으로 취득해야 하는 것이니, 시험에 합격만 하면 된다고 치자. 관건은 아무래도 공인자격을 취득한 후 취업의 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가느냐다. 힌트가 필요한데 그것을 과연 어디에서 얻어야 할까.  



   

   인터넷에는 주택관리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까페가 다양하고 많다. 정보교환과 친목도모, SOS(도움 요청), 위로와 격려까지 온갖 희로애락이 넘치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군가 궁금한 점이나 애로, 또는 고민을 게시하면, 경험 있는 사람들이 해법이나 조언, 참고될 만한 팁을 댓글로 올려주는 방식으로 회원 간 소통이 아주 활발하다. 학원에서 회계공부를 하고 자격을 취득한 사람, 기술자로 일하고 싶은데 전기, 소방 또는 기계 중 어떤 자격을 따는 것이 유리한지 궁금한 사람, 주택관리사보 시험에 막 합격했거나 정년퇴직하고 장롱 속 자격증을 꺼내 관리소장직에 도전하는 사람 등 뭇사람들이 하소연하듯 길을 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경험자들이 들려주는 요지는 실무능력을 배양하고, 겸손하게 배우라는 것이다. 일단 부딪쳐야 길이 보이고, 자신을 낮춰야 많이 배우게 된다는 충고다. 막연한 처지에서 길을 사람들에게는 어떤 가능성에 대한 실마리나 힌트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기도 한다. 좋은 까페는 초짜와 고수가 한데 모여 묻고 대답하고,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자율학습장 같은 곳이어서 인기다. 이런 순기능에 힘입어 최근에는 회원수 10만 명이 넘는 까페도 등장하고 있다.




   실무지식이나 경력 쌓기에 관한 스토리는 사람 수만큼 많다. 각자 걸어온 길이 다르고 출발선도 다르다. 누구의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얘기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획일적인 경우는 없다. 접근방식이 각양각색이고 행보가 독특하더라도 한편으로 보면, 그것이 기회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초보자의 첫걸음은 어떤 모습일까.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 내가 겪은 이야기, 그리고 내가 지켜본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들은 이야기

   얼마 전, 안양에 있는 소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3년째 관리소장을 하고 있는 L관리과장을 채용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대수가 꽤 많은 단지에서는 관리과장, 전기과장, 시설과장을 규모에 따라 각각 따로 두기도 한다. 각자 전문분야를 책임 있게 관리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L소장처럼 세대수가 적은 단지에서는 관리과장 한 사람만 두는 경우가 고, 심지어는 과장을 아예 두지 않는 곳도 다. 이번처럼 관리과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채용하는 것은 본업인 기술업무 외에 행정업무도 수행하게 하기 위한 포석이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전기기사나 전기산업기사 자격이 있는 사람을 보임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떤 사람을 쓸 것인지는 전적으로 인사권자인 관리소장의 뜻에 달린 문제다. 이번에 채용한 관리과장은 주택관리사보 자격을 이미 갖고 있었고 사회경력도 화려했다. 명문대를 나왔고,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공기업에서 2년 전 정년퇴직을  사람이었다. 재직 시 일찌감치 자격증을 따놓은 그는 퇴직 후 여러 군데 이력서를 내며 소장직에 응모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한 경험 갖고 있었다. 오랜 직장생활을 했으니 관리사무소 일이라면 굳이 경험이 없더라도 충분히 잘 해낼 자신이 있다며 도전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아야 했다. 이메일로 A4용지 한 장 짜리 이력서를 보내 상대방을 설득하기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나 다름없었다. 100통을 보내도 전화연락이 한 통도 없거나 기껏 연락이 오더라도 한두 군데 정도 있을까 말까 한 실정이었다. 어쩌다 전화받고 면접을 보러 가면, 그동안 좋은 직장에 다닌 사람이 편히 쉬시지 뭐할라고 이 일을 하려고 하느냐며 핀잔주듯 질문하는 사람도 있어 절망에 빠지기도 하였다. 돌아보면, 아예 연락이 오지 않은 경우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실제 현장에서 일한 경력이 없으니 더 이상 볼 것 없다며 서류심사에서 아주 쉽게 제외해버린 것 같았다. 면접을 본 케이스는 아마도 전 직장의 성격이나 이미지 - 공기업에서 일을 하였으니 법을 잘 지키고, 업무처리가 공정하고 투명할 것이라는 - 를 일부 감안한 결과가 아닌지 분석도 해보았다. 실패 원인을 캐본들 별 소용이 없는 일이어서 더욱 허탈하였다. 그래서 관리소장 지원을 포기하고 직책을 낮춰 과장으로 응모하게 되었다. 이력서에 관리사무소에서 일한 경력을 한 줄이라도 써넣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경험과 경력이 곧 가장 강력한 스펙이라는 걸 깨달은 결과다. 사실 자격증이 있지만 일부러 관리부장이나 관리과장으로 일하며 경험을 쌓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규모가 큰 단지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사실 그런 자리도 많지는 않다. L소장을 만나 관리과장으로 취업한 주택관리사보는 그래서 운이 아주 좋은 케이스에 속한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L소장이 기계, 전기분야에도 밝은 데다 오래전부터 계획한 자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하여 적절한 시점에 소장직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리과장이 잘하면 자리를 물려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겪은 이야기

   구인공고를 보고, 한꺼번에 두세 군데 단지에 이력서를 이메일로 빠방 보냈다. 매번 그랬듯 이번에도 어디선가 연락이 오리라고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실업급여를 받던 시절이라 매달 이력서를 구인업체에 이메일로 제출하고, 그 증거를 한 달에 한 번 지정받은 날 고용센터에 제출해야 했다. 나라에서는 구직활동(이력서 제출, 방문 또는 면접 등) 실적을 근거로 심사를 하고 '실업인정'을 받은 사람에게만 소정의 구직활동비를 지급하므로 지원서를 보내는 일은 필수이고 중요한 일이었다. 이력서를 보낸 지 1주일이 지나고 10일이 지나도 아무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예상한 일이지만, 이번에도 꽝인가 싶어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려려니 하고 다시 체념하고 있던 차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주택관리입니다. 이력서 내셨죠?" 아니, 이메일 보낸 지 2주일이나 지났는데 연락이 오다니...! 뜻밖이었다. 알고 보니 부재중 전화까지 찍혀 있는 걸 확인하고 또 한 번 놀랐다. 아쉬울 게 없는 관리업체가 응시자에게 두 번씩이나 전화를 하고 기어코(ㅋㅋ..) 통화를 해주다니. 고맙고, 또한 감동이다. 면접 보러 오실 수 있냐고 묻는 전화기 속 여직원 목소리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하방문 약속을 하였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그 관리업체 사무실을 찾았다. 본부장 직함을 가진 사람이 들어와 명함을 나에게 건네주고는 나와 마주 보며 테이블에 앉았다. 이메일로 보낸 나의 이력서를 훑어보며 말을 꺼냈다. "사는 곳이 우리 사무실에서 가까워서 한번 들러보시라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집이 가까워서 불렀다니...? 불러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할 처지였지만, 솔직히 느낌이 좀 이상했다. 나는 그의 눈을 주시하며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정년퇴직을 하고 이제 막 아파트 관리소장을 해보겠다고 나선, 나이 든 초짜라는 사실을 이력서로 잘 파악하고 있었다. "선생님, 아무런 경험도 없이 소장으로 가면, 일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귀담아듣다가 조심스럽게 되물어보았다. "작은 단지로 가면 그래도 할 만하지 않을까요?" 그는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 테이블을 내려다보다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장 자리가 수시로 나오기 때문에 초보 소장으로 가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며 여운을 남겼다.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만, 먼저 경험을 좀 쌓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하듯 말을 이었다. 기전이나 시설, 혹은 과장으로 6개월 정도 일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이 바닥의 생리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그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 말이 그날 면접에서 가장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사무실을 나서며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회사에 대하여 주변에서 들은 바도 있었기에 혹시 내가 센스 있게 어찌어찌하면 자리를 하나 줄 수 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그 지리가 소규모 단지 소장일까, 경험 쌓기용 기전 반장이나 관리과장 자리일까. 무슨 뜻이었는지 생각해보니 모호하였다. 반대로, 그의 말을 정직하게 받아들이자면, 그것은 앞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라는 충고의 말이기도 했다. 비록 돌아가더라도 결국은 더 빠른 길을 귀띔해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선하고 친절한 경우를 봤나! 당장에 채용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호의를 베푸는 그의 저의가 무엇인지 생각할수록 자못 궁금하기만 했다. 두 갈래 생각 사이에서 나는 상당히 헷갈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년퇴직을 한 사람이 6개월이고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그런 일을 배워 언제 소장을 하겠냐는 갑갑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조급한 마음은 그럴 필요 없다며 이미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그 회사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지켜본 이야기

   기전직으로 일하는 G반장은 나이 60세 되던 해 말 입사하였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 분야에 아무런 경험이 없는 그가 입주민 아무개의 소개로 생짜 초보로 들어왔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소위 아무개가 심은 사람이라는 식으로 회자되곤 했다. 2인 1조 격일제로 근무하는 단속적 업무라 그는 짝을 이루어 같이 근무하는 K반장이 사수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아직 일을 잘 모르는 만큼 배우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도 하며 용기를 북돋워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가끔 두 사람이 같이 일을 나갔다 돌아와서는 티격태격 다투는 일이 가끔 눈에 띄었다. G반장은 K반장이 일처리 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며 투덜거렸고, K반장은 G반장이 도대체 일을 너무 몰라서 답답하다며 불만스럽게 큰 소리로 맞받아치곤 했다. 고참인 K반장은 세대 내 보수작업을 나가면, 집주인과 불필요한 말들을 너무 많이 하며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이 G반장의 불만이었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도 쓰잘데 없이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G반장은 민원이 들어와도 혼자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일처리가 완벽하지 않아 다시 민원이 생기는 등 업무가 미숙하다며 직원들 사이에 입방아에 오르기도 하였다. G반장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틈틈이 공부해서 전기기능사와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을 취득하는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자격을 보강한 만큼 차차 기회가 닿아 그는 소방보조 수당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G반장의 경우는 아무런 자격도, 경험도 없는 사람이 맨 몸으로 들어와 부딪치며 실전능력을 쌓아가는 사례다. 일을 배워야 하는 초보는 고참이나 사수가 호락호락 가르쳐주지 않아 여러모로 고달프다. 그렇지만 참고 견디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일이라는 것이 사람이 사는 집과 단지를 관리하는 것이어서 민원이 상당히 미세하고 또한 거센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단위로 일컬어지는 입주자들을 상대하는 일이니 만큼 심신이 고달픈 직업이다. 경험 많은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어우러진 일터이지만, 무시로 오는 사람, 떠나는 사람들로 이직률이 참 높은 일터이기도 하다. 일 자체가 힘들어서 떠나기도 하지만, 사람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가 아마도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임에도 아파트뿐만 아니라, 다른 집합건물까지 합하면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족히 수십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관계 당국이 실무경험 때문에 애로를 겪는 초보자들의 고충을 덜어주면 좋겠다. 그들이 원하는 자리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배치교육 등 연수프로그램에 '실무연습과정'도입하거나 가칭 '실무학교'를 오픈하면 어떨까. 며칠간 전문강사의 이론강의만 듣는 것으로 마치는 현행 교육방식은 초보자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해야 할 일들을 실습으로 익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지금처럼 경력자 위주로만 찾는 풍토도 훨씬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종사자 모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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