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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Feb 12. 2023

주택관리에 국가의 개입은 선(善)일까

규제의 덧에 빠진 주택관리

   사적자치(私的自治). 공동주택이든 오피스텔이든 시설물의 유형을 불문하고 그 관리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현장에서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그것이 원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다는 뜻인지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고자 네이버 지식백과를 찾아보았다. 사법상(私法上)의 법률관계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기 책임하에서 규율하고, 국가는 이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근대 사법의 원칙이라고 다. 누구나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법률행위를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주의다. 이러한 계약자유의 원칙이 주택관리업무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 바닥 처음 발을 디디고 들어와 뭘 모르던 초보 시절, 관리회사의 대표이사가 면접시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광경을 목격한 일이 있었다. 그는 관리규약 개정을 예로 들면서 주택관리업무에 정부의 개입과 간섭이 지나치다고 지적하였다. 사적자치를 방해하고 훼손하는 행위이므로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문제라고 강변하였다. 그런 주장은 업계를 대변하는 신문 사설 등을 통해서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우성치듯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현재진행형이다.



   실제 현장에서 부대끼며 느낀 나의 소회를 한마디로 잘라 말하자면, 주택관리업무에 사적자치의 영역은 거의 없다. 거의 모든 업무처리가 법률규정에 의거해 이뤄지고 있고, 또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당국의 감독이 이뤄지고 있. 그동안의 경험과 온갖 행태가 배어있는 역사적 산물일 것이다. 과거에 몸담았공기업의 업무처리 방식과도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때도 업무처리의 기준은 법규였고 국가기관의 감사를 받았으며, 벌칙도 수반되었다.



    앞서 대표이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자율과 자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관리규약만 봐도 그렇다. 법률과 준칙에 따라 거의 그대로 받아쓰기하듯 제정하거나 개정해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자치규약이라 하지만, 입주자 등이 함부로 손대거나 마음대로 고치지 말라는 것이다. 자칫 법률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도 입주자 등의 동의절차를 반드시 거치라고 한다. 규제의 면피다. 실정이 이러하니 사실 자율과 자치가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다. 유감스럽게도 법률개정이 되풀이될수록 규제와 간섭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주택관리업무는 이처럼 법률과 지침의 이름으로 국가에 의해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규제되고 있다. 법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이 차고 넘치는 만큼 도. 시. 군.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의 감독과 감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업무처리에 오류나 잘못이 있으면 법률에 따른 과태료나 벌금 등 엄한 처벌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법마다 규정마다 온갖 책임은 관리업무의 최고책임자인 관리사무소장에게 집중되고 있다. 세상의 직업 중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과중한 부담을 혼자서 감당하도록 강요받는 서글픈 현실은 애써 못 본 체 간과되고 있다. 관리소장의 위상이 초개처럼 허약하고 작아 보이는 이유다. 이 같은 현실은 주택관리업무가 사적자치라기보다엄격한 공적 규제가 적용되는 일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재건축  사례에서 보듯 국가의 규제와 주민자치 간의 책임과 한계를 구분하고 규정하는 일은 어렵고 복잡하다. 분명한 것은 사회가 발전하고 안전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국민들이 국가의 존재의의와 책임을 묻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책임과 역할이 강조될수록 국가의 개입은 점차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국민정서의 반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세대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할 것을 요구하는 결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관리비가 그렇게 슬금슬금 늘어나더라도 주민들이 그것을 즉각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공동주택관리법이 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관리함에 있어 적용되는 법률이다. 듣자 하니 주택관리를 규제하는 이런 법은 우리나라에만 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국민들이 워낙 '법대로'를 좋아하기 때문에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법이 있으면 만사가 그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든 비용이 들더라도 법률로 의무화하고 책임을 묻는 방식이면 어렵지 않게 먹혀들어간다. 들여다보면, 목적과 의의를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으로 인하여 사실상 주택관리의 사적자치를 말하기는 어렵게 되지 않았나 싶다. 공적 규제가 더 맞다고 보는 이유다.



   한 예로 주택을 비롯한 각종 시설물 관리 현장에는 전기안전관리자와 소방안전관리자가 배치돼 있다. 각각 전기안전관리법과 소방법에 따른 의무사항이다. 통상 전기과장이 겸직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지만, 이제 특급소방시설과 1급 소방시설은 겸직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하였다. 대형 시설물의 화재예방을 위하여 유자격 기술자를 추가로 채용하고 별도 선임하라는 뜻이다. 시간문제일 뿐 그 적용범위는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용증가 요인은 또 있다. 기계설비유지관리자도 따로 선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각종 기계설비의 성능검사도 전문업체에 의뢰하여 실시하여야 한다. 기계설비법 개정에 따른 의무사항이다. 안전을 위해서는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에 누구도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일어나고 있는 관리여건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안전관리가 보다 촘촘하게 개선되는 점은 반가운 일이나 왠지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는 전기기술인협회, 소방협회, 기계설비협회, 변호사회 등등 각종 이익집단이 무수히 많다. 금번 각종 제도개선사항의 시행이 혹시라도 업계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뛴 결과는 아닌지 그 뒷맛이 씁쓸하다. 일의 내용과 방법 등 즉각 관리현장에 적용되어야 할 규제가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 그렇게 할 수밖에없었는지 의문이다.



   최근 어느 국회의원이 공동주택에 변호사를 외부업무감사로 두도록 하자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는 뉴스가 떴다. 깜짝 놀랄 일이다. 주택관리에 먹을 게 많은지 여기저기서 넘보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아파트관리와 관련한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개정 발의는 해마다 줄을 잇고 있다. 법의 강력한 지배력으로 자치는 사라지고, 이래저래 관리비 부담만 자꾸 늘어가는 모양새다. 온갖 법규로 옭아매진 주택관리 현장의 사적자치는 죽은 지 오래다. 주택관리를 과연 이렇게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인지 찬찬히 생각해 볼 일이다. 법의 의한 지배가 강화될수록 참신하고 창의적인 대안이 등장하기를 고대하기는 어렵다. 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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