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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U Aug 11. 2020

대한민국 3년차 직장인이 유럽 여행을 간다고?

15일간 서른 도시, 서유럽 대륙을 횡단한 두 남자의 여행기 #01

어쩌다 첫 유럽여행으로 서유럽을 가게 됐을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대책이 없었고, 매우 과감한 선택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의 지난 스물 여섯 번째 생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나는 3년차 직장인이었고, 생일이라는 이유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문맥에서 느껴지듯이 무단 결근이었다면 스스로도 쿨하고 멋있어 보였을 텐데, 그럴 용기는 없어서 일주일 전부터 계획적으로 연차를 결제 받았다.


고작 생일이라는 이유로 소중한 연차를 사용한다는 건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어도 철저히 지난 2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직장인이 된 이후부터는 생일날 회사에 출근해서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퍽 하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업무 지시와 감정이라는 애매한 사이는 인격 모독을 당하기 일쑤였고, 퍽 하면 수당도 안 주는 회식으로 근무가 연장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생일만큼은 불행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평일이었던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아침 늦잠을 청했다. 비록 아침 햇살이 들지 않는 지상 1층 서쪽 방향의 자취방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생일날 첫 끼부터 외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직장에 출근한 친구 J의 점심시간을 빌려 점심을 함께 먹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J의 직장 인근에서 매우 정갈하게 나오는 장어덮밥을 사 먹고 싸구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한 뒤 길을 나섰다. 마침 인근에 호수 공원이 있어서 늦봄의 따뜻한 햇살을 쬈다. J와 나는 잠시나마 이렇게 직장과 멀어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매일 치열하게 보내는 하루들에 비해 세상은 덧없이 평화롭고 맑았다. 서로 모르는 사이에 번갈아 가며 “아…”라는 감탄사를 자아냈고 감탄사 길이만큼 짧은 점심시간은 끝나 J는 사무실로 복귀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생각에 여유가 부족한 현대 사회의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J를 홀로 사회로 돌려보내고 나는 병원을 찾았다. 그저 생일이라는 이유로 놀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즐겁게 보낼 수 있지만, 스트레스가 가득한 사회에서 살다 보면 몸이 성한 곳이 그리 많지 않다. 평소 알지 못했던 지병도 너무 간단하게 생기기 마련이다. 당장에 아픈 곳은 없지만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이유로 늙어버린 스스로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도심에 나온 김에 큰 병원을 찾았다. 그러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초이 형과 연락이 닿았다.


초이 형은 20대 초반에 군 생활을 하면서 선후임으로 알게 된 사이였는데, 다행히도 초이 형이 내 후임이었다. 그러나 어떤 선후임보다 관계가 좋았고 그 사이는 제대 후에도 돈독했다. 물론 초이 형이 프랑스 유학을 간 이후부터는 카카오톡 연락을 주고받는 게 최선이었다. 그 연락조차도 8시간이라는 시차로 인해 자주 연락하긴 힘들었다.


마침 그 날은 초이 형이 늦게까지 잠에 들지 못했고 한국 시간으로 오후 늦게까지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당시 초이 형에게는 힘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오해로 여자친구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결국 가치관의 차이로 골은 이미 깊어져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감정적 고통을 겪고 있었던 초이 형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들어주는 일 밖에 없었다. 결국 초이 형은 자신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했다. 차라리 후련하다고 했다. 다만, 초이 형이 어떤 감정이 들고 어떤 생각을 해도 무엇보다 슬픔이 가장 크다고 느꼈다. 당장이라도 옆에서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멀리서 카톡으로 밖에 못 들어주니까 내가 미안하네, 회사에서 연차 쓰라고 난리인데 내가 갈까? 파리 가는데 얼마야?!”


나에게는 비상금 200만원 남짓과 연차 15개가 남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쏟아낼 비장한 마음으로 초이 형에게 물었다. 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본 초이 형은 반가워했다. 약 3주 뒤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을 갈 예정인데 바르셀로나에서 만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연이어 실행력이 빠른 초이 형은 여행 일정표와 항공권 시간을 알려주었다. 나 역시 그 실행력에 발맞춰 당장 회사에 전화를 걸어 연차 사용의 허가를 받았다. 이 기쁜 소식을 바로 초이 형에게 전했고, 우리는 속전속결로 항공권 예약 및 각종 투어예약을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은 내가 파리를 가겠다고 선언한 뒤 고작 3시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평범한 상황은 아니었다. 유럽을 가기로 결정하고 3시간만에 비상금을 탈탈 털어서 항공권 예매까지 마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 순간 온 몸의 근육이 미세한 희열로 실룩거리고 있었으며,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입꼬리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비록 초이 형을 위로하겠다는 목적은 있었으나 그와 처음 떠나는 해외 여행이었고, 그동안 스스로 다녀온 해외 여행 중 가장 멀고,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떠나기 때문에 설렐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런 여행을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단지 즉흥적인 기분에만 의지한 채 결정했다는 게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아무런 대책이나 준비가 없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엄습했으며, 평소와 다르게 즉흥적이고 과감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설렜고, 그동안 나를 억압했던 회사와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행 항공권 예약을 마친 스물여섯 번째 생일은 사회 각자 위치에서 고생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치킨을 뜯으며 저녁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앞으로 3주 뒤에 펼쳐질 서유럽 횡단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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