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달아나지 말아
벌써 뒤에서 두 번째 주를 4월은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그리고 멀찌감치 바쁘게 달아나는 4월의 뒤꽁무니를 보며 누워있는 나. 스물두 살의 봄이 가고 있는데, 뭐랄까, 서글프면서도 덤덤하다. 덤덤하면서 서글픈 건가? 뭘 먼저 얘기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그 비슷한 느낌. 아쉽지만 마냥 아쉽기만 한 것도 아니고, 섭섭하지만 마냥 섭섭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홀가분한 것은 절대 절대 아니고. 그냥 그렇게 맹맹히 벚꽃 만연했던 봄이 지나가고 있다. 어렸을 적엔 개나리가 더 많이 보였던 것 같은데, 오랜만인 듯 꽤 낯선 봄은 거리 곳곳에 새하얀 팝콘을 부풀리고 있었다.
여태껏 봄이 짧은 줄로만 알았다.
아차 하는 순간 꽃은 이미 지고 없어져 있었으니까.
내 매일의 낮이 턱없이 짧던 거였을 줄은 몰랐다.
그게 그냥 꽃, 봄, 세상 탓인 줄 알았지.
올해처럼 봄을 완연히 만끽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되짚어봐도 떠오르는 봄이 별로 없다. 아, 고등학교 때 학교 정원에 핀 벚꽃으로 친구들과 기념사진 찍으며 놀던 기억 정도. 중학생 때 까지는 봄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던 것 같다. 그저 새 학기가 되고, 적응할 생각에 바빴지. 고3 때야 말할 것도 없고, 스무 살엔 일에 대한 욕심에 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었다. 작년엔 겨울부터 여행을 떠나 봄을 뛰어넘기 해 버렸고. 그래서 올해의 봄은 유달리 기대하며 기다리기도 했다. 고작 일 년 건너뛴 봄일 뿐인데, 왜이리 오랜만인 건지. 밤에도 새하얗게 빛나는 벚꽃들을 보고 있으면 심지어 낯설기까지 했다. 원래도 봄이 이랬나? 스스로 '봄'을 자각하고 즐기며 보내는 건 어쩌면 이번이 처음일 수도 있겠다.
맨날 누워있다 강아지 산책하러 나가고, 한껏 자고 일어나 꽃 보러 나들이 가고 하니, 어딜 가도 화사한 벚꽃을 보며 봄이 그렇게 짧기만 한 건 아니었구나 싶다. 그것보단, 예쁜 꽃구경할 햇살 그득한 낮이 부족한 거라는 걸, 이렇게 누워만 있으니 이제야 겨우 깨달았다. 바쁜 일상을 좇다 보면 겨우 한 숨 돌리기에도 턱없이 짧은 주말인 것을, 꽃이며 봄이 웬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한창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할 땐 해야 하는 것 다 나몰라라 한없이, 늘어지면 늘어지는 대로, 흐느적거리는 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꽃이 져가는 지금은 차라리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처럼 봄 그 자체에 집중한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언제 또 이렇게 봄에 마냥 한가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어쩌면 몇 년이 지더라도 올해의 봄은 잊혀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만큼 올해 봄이 내게 꽤 짙은 계절로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서 게을렀던 지난날들을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만하면 합리화라도 썩 나쁠 것 없으니.
눈치채지 못하는 새, 정신없는 틈을 타 맥없이 당연하듯 흘러가버리는 게 봄이라는 거니까, 사실 조금 슬픈 얘기이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