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것엔 나의 삶과,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part 1.
그리는 대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일까, 어려운 일일까.
최근 방 배치를 바꾸었다. 그것을 바꿈에 따라 내 공간에 대한 감정이 전혀 달라진 것을 느낀다. 바꾸고 나니, 이 집에 이사를 오던 3년 전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다수의 반대에 휩쓸려 원치 않는 구조 속에서 어영부영 3년을 보냈지만 그 중 7개월 반 정도는 아예 집 밖으로 떠나버렸고 6개월 정도는 작업실을 따로 구해 생활과 작업 공간을 분리했다. 그 후 다시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아쉬운 대로 내 식에 맞추어 공간을 바꾸었다. 그냥 그랬던 것뿐인데, 그제야 내 방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방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고나니, 무언가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자주 오가지 않도록 물을 가득 담을 수 있는 커다란 컵을 사고, 시린 바닥에 닿는 어딘가 허전한 맨발을 위해 실내용 슬리퍼도 구매했다. 이 슬리퍼를 신을 때마다, 나의 삶에 가까워진다는 기분이 든다. 지금은 아주 작은 슬리퍼지만, 내게 필요한 공간에 직접 나를 위한 것들을 채워 넣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린 삶 안에 내가 들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
part 2.
나의 삶은 어쨌든 나의 것이니 그럭저럭 알겠는데,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때가 잦다. 아무리 오래 사랑했더라도 늘 그들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미처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상대를 보고서, 아 원래 저렇게 반응할 사람이었지, 하고 새삼스레 놀라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그들을 결코 모르지는 않지만, 늘 ‘나’를 한 번 거쳐서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아는 것조차 멋대로 간과해버리는 것이다. 조금 더 그들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면, 조금은 더 확실한 방법으로 아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서, 한참의 시간이 필요한 뒤에도 턱없이 모자를 지도 모르겠다.(2018.03.1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