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파티 같은 불면증

즐기자

by 토끼

9년 전 사고 후유증으로

잠을 잘 수 없고, 면역력이 떨어져 한 가지 병이 2년 동안 지속되고 있었을 때

불안이 찾아와 하루가 온통 지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은 해야 했고, 일상을 살아야 했기에...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했지만

병원에서 못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2년 동안 낫지 않는 방광염을 포기하고, 병원치료도 포기하고, 그냥 될 대로 되라고

살고 있을 때 방광염은 기적처럼 나았다. 사고 전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방광염은

왜 생겼는지 남들은 일주일 약만 먹으면 낫는다던 그 병이 왜

2년을 약을 먹었는데도 낫지 않았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하지만 내 장기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러니까 내 몸은 몸이 알아서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낫고 싶다는 열열한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되었는지.... 집착은 내 몸을 치유하는데

하나도 도움을 주지 않는 건지 시크릿이라는 책에서는 간절히 원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다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고 마음먹었을 때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는 이런

마음을 경험하고 나니... 간절한 바람과 집착 이 두 가지 마음상태를 구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뒤틀려 버린 마음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자유를 찾아주는 여행

그 여행을 시작 한지 6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여행길에 많은 글들을 썼지만 불면증에 관한 글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험난한 여행의 시작은 불면증 때문이기도 했는데... 불면증은 도무지 다루기도 힘들고,

접근하기가 힘든 영역이었다. 왜냐하면 불면증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기만 해도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올 만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빨리 낫고 싶은 바람의 강도만큼

두려움의 강도는 같았다.

모든 병의 시작이 불면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선입관이 절대적으로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의학적, 과학적 , 이론적으로 해석하는 건 맞지만 사실은

이성이 아닌 마음이 하는 일은 다르다. 마음은 이런 이성적 해석을 토대로

내가 마음가짐을 정하는 일이다.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몸. 인류는 그런 몸을 연구해 왔고,

과학적인 이론을 만들어 질병이라는 병의 치료를 수세기에 걸쳐 해 왔다.


하지만 내 몸의 주인인 나라는 주체가 그 질병을 부정하고, 치료제를 부정한다면

그 약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마음이 도와주지 않으면 약들은 내 몸 안에서 그냥 배설물처럼

빠져나가 버릴 수도 있다. 결국 약은 내 면역체계와 협업으로 내 몸을 치유하는 것이지

그 약만으로는 치료 효과가 없다. 면역체계만 완벽하다면 그 어떤 병도 스스로 치유할 수가 있다.

내 몸에게 나의 병을 완전히 맡기고, 신뢰하고, 믿는 것만큼 좋은 약은 없다는 것이다.

불면증이란 단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불안하다는 사실은 어쩌면

일종의 불면증을 치유하는 마음의 열쇠이기도 하다.

불안을 느끼는 마음에는 불안을 느끼지 않는 문도 있다는 절대적 진리가 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기 마련이다.


나는 불면증이라는 문을 두려워서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면서, 아직은 때가 아니야, 아직은 때가 아니야

하면서 열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방광염이 사라진 후 3년간 불면증은 없었고,

그러다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재발했으며 다시 2년간 잠잠했고,

이명이 생겼을때 다시 재발 한 이후로

지금까지 이제는 수시로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수면의 질로 따져보자면 불면증이 없었던 몇 년간 보다 지금이 훨씬 수면의 질은 좋아졌다.

또한 잠을 못 자도 과거에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다면 지금은 버틸만하다.

이제는

익숙해지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한 표현 같기도 하고, 그래서 불면증이라는 문을 열어젖히고,

이제는 불면에 대한 글을 지겨울 때까지 써 보기로 했다.

불면에 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이야기를

자연스럽고 무심하게 늘어놓을 때 불면을 모르는 지인들은 이런 질문한다.

" 그래서 불면증이 이제 완치된 거야?"

그럴 때면 당당하게 얘기한다.

" 아니 완치는 무슨 어제도 못 잤는걸. 그냥 나에게는 이게 일상이야. 완치 같은 건 없어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컨디션 관리를 하면 지낼 만해. 잠을 못잔 날은 조용히 숨만 쉬고, 일만 해, 운동도 움직이도 않아.

그러니까 버틸만해"

안쓰러워하는 표정을 하는 지인들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처한 상태에 맞추어서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 살아가는

능력이 있다. 몸이 건강하면 즐기고 싶고, 다른 욕심을 내면서 쾌락을 추구하지만

어디 한 곳이 시원찮으면 또 거기에 맞추어 삶의 방향을 정한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나만의 해석을 만들고, 나만의 즐거움을 찾는다.


사람들이 함께 느끼는 집단공동체 속 공통된 즐거움에 동참하지 않아도 혼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양질의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다.

나는 이 양질의 즐거움을 지금 이 순간의 현존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가끔은 불면이 없는 몇 달이 지속되면 불면이 치열했던 그때의 쾌락이

그리울 때도 있다. 쾌감은 즐거울 때만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다. 고통스러울 때도 생긴다.

그 느낌을 경험하고 나면 평온함만 계속될 때 치열하게 자신과 대치하면서

긴 밤을 나와의 대화를 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생생하게 느끼던

불면의 밤이 때로는 삶에 있어 희열의 시간이 아닐까?

진짜 살아있음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 몸은 신비롭다. 내 마음은 더 신비롭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수족관 속 삶보다는

어디선지 모를 파도가 늘 몰아쳐오는 바다에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고,

죽음을 맞닥뜨리고 있는 이 신비로운 세상에서

나만의 창조를 또 해본다.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들은 내가 창조한 만큼

즐기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이 현존이고 지금 이 순간이다.

카르페 디엠이고

아모르파티다.

니체는 이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불면증은 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