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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Apr 18. 2024

왜 사과를 하는 거야!

사과

음악을 함께 듣고 싶은 사람.

시를 함께 읽고 싶은 사람.

그림을 함께 감상하고 싶은 사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

영화를 함께 보고 싶은 사람.

비 오는 거리를 함께 걷고 싶은 사람.

첫눈이 오면 제일 먼저 알리고 싶은 사람.


이런 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리는데..


 음악을 듣다가  누군가가 너무나 그리워졌다.

한밤중에 혼자 방안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먹먹해진 마음으로 음악을 들어 본 경험은 그리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마음이 아리다 못해, 음악이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을 때,  친구에게 음악을

카톡으로 보냈다.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음악만 보냈다.  읽지도 않는 메시지를 보면서

이 밤에 이 음악을 함께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현실을 실감한다.


혼자 들을 수가 없는 노래, 그런 노래가 있는 밤이면, 차라리 음악을 틀지 않는 게 좋지만

  이 음악을 함께 듣고 싶은 사람들이 아직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이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을 함께 들어줄 사람은  추억 속에 남아있는 기억일 뿐 현실에서 존재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내 현실 속에 없는 그런 상상 속의 누군가를 상대로 그리움을 그려보는 순간은

애틋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할 때도 있지만 아주 짧은 순간일 때도 있고, 꽤나 긴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음악만 계속 듣다 보면 , 곧 혼자만의

향유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때는 책을 한 권 꺼내 들고 읽기 시작한다.


그때 읽는 책은 책장 앞에서 제목이 눈에 꽂히는 책이거나 내 단골 메뉴의 그런 책들이다.

지중해의 영감이란 던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던가!  릴케의 시집이라던가!

밀란쿤데라의 책이라던가! 그리움을 녹여줄 문장들에 잠시 생각들을 녹이다 보면

남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점점 내 마음이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때 다시 음악을 들으면, 내 이야기는 사라지고, 음악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를 대변하는  음악 속에서, 나의 그리움이 아닌 누구나가 다 그리워하는 그런

막연한 그리움의 형태를 띠고,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지금 이 순간은 아무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감정이 고갈된 상태에서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데.. 무슨

마음을 울릴만한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겠는가!  분명 어젯밤 음악을 들을 때는

그 누군가가 너무 그리웠다. 그렇게 그리운 시간에 글을 썼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쏟아졌을지

모르지만 난 그저 그리운 마음을 부여잡고,  음악만 탓하고 있었다.


순간의 감정을 붙잡아 글을 쓰거나 그 어떤 창작을 한다는 건

어쩌면 하나의 예술행위 일지도 모른다.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의 고통과 고난을 동력으로 그 영감이 떠오를 때 곡을 만들었을 것이다.

애달픈 사랑부터 행복한 순간을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작품에 옮겼을 것이다.

음악 중에서도, 노래가 아닌 연주음악을 들을 때면, 글을 쓰기 이전에는

평온한 감정이 항상 들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은 편안하고, 휴식 같은 시간을 선물했는데.

요즘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연주음악조차도 나를 긴장시킨다.


감정을  더욱 크게  증폭시킨다.  여러 가지 형태의 응축된 감정이 전달대면서

마음을 부대끼게 한다.  평온함을 느끼려고, 음악을 듣는데 감정이 요동치고 있다니....

마음의 카렌시아를 찾아서 선택한 음악은 아무런 평온을 주지 못할 때

차선책은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텍스트조차도 감정의 파도에 이리저리 부딪히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글을 써야 했다. 아주 솔직한 마음의 이야기를 써야 했다.

지금은 평온해진 마음으로

음악이 나를 요동치게 했던 이유를  찾아

한번 써보기로 한다.


그리움이 사무치게 마음을 흔들었던 바로 그 이유에 대해 그 어떤 이야기라도 써보기로 한다.

그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사과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어느 순간 아주 많이 친해졌다고 느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늘 자주 보다가

어떤 계기로

자주 보지 못하자.

 관계가  좀 서먹서먹 해 져 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도 사람들과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 웃고 있었다.

서로 농담이 오갔는데


" 내가 너한테 좀 심한 말을 한 것 같아 미안해"

나는 왜 이런 사과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우리는 예전 이런 농담이 자연스러웠다.

평소처럼  그렇게 무심하게 했던 농담들을 주고받다가,  재미있게 웃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사과를 했다.

" 아니 왜 그래, 나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어. 농담한 거 아니었어? 우리 이런 농담을 서로 할 만큼

편해진 것 같은데... 새삼스럽게 사과라니.. 좀 낯설다. 너 나한테 거리를 두려고 그러는 거니 뭐니?"

" 아니 편한 사이라고 해도... 내 말이 좀 심했던 것 같아. "

그 사람은   그렇게 아주 드라이하게 자기 말을 하고 사라졌다.

나의 직감은 서로의 거리를 멀어지게 한다.  더 이상 자신의 세계에 나를 들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로 나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굳이 달려가서 따질 수는 없다.


따져서 무얼 얻어낼 수 있는 관계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그런 사이가 바로

우리들의 관계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모른 채로 멀어지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 너무나 많이 아는 사람들은 너무 많이 알아서 지겨워지고, 무관심해져서 멀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멀어지나 저렇게 멀어지나 적당한 거리감이 서로 다시 만나기 위해 필요하다면

차라리 아무 말 없이 두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답답한 마음은 상대의 마음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혼자서  이런 해석을 하고 낯섦을 느끼는

이런 마음을 음악으로 달래 보려고 하다가 도리어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그리움으로 번졌다.

상념이 아닌 그리움으로 번졌다.

이 또한 참 낯선 감정이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의 모호한 대화 속에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단절돼 버린 채 , 혼자만의

해석으로 정의 돼 버리는 관계... 그리고 이런 관계 속에서,

그 어떤 의미를 찾고,  서로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기저인지... 하나의 관계를 멋지게 디자인해서 진화시켜 가려는

창조인지..  아니면,  내게 온 인연의 소중함을 감사하는 마음인지.

아니면 나에 대한 사랑인지... 상대를 존중하고, 감사하며, 애정하는 마음인지.

상대에 대한 섭섭한 감정인지 아무것도 정의 내리기도 힘들지만

나는 이런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을 풀어서 쓰는  시간만큼은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을 작곡하듯이

그런  선율이 연주되는 그런 시간임이 틀림없다.


이런 나의 은밀하고도, 시시껄렁한 감정의 이야기가 나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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