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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몽 Apr 16. 2024

무엇하나 확실한 것이 없어도

첫 번째 브이로그를 완성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게 찾아온 혼돈에 뒤흔들리고, 내 손으로 직접 내 인생을 난파시킨 뒤 그 잔해를 다시 이어 붙여보려 시도하고 있을 때, 문득 나는 이 분류학자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를, 끈질김에 관한 것이든, 목적에 관한 것이든, 계속 나아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든 내가 알아야 할 뭔가를 찾아낸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가당치 않게 커다란 믿음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죄악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밀러


  첫 번째 브이로그를 완성했다. 유튜브는 나에게 큰 결심이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그렇게 즐겨하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도 너랑 친해지는데 5년 걸렸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일상을 벽 없이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브이로그를 올린 이유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회사생활을 하며 으레 하는 허언 2가지가 있다는 말은 익히 들어서 아시리라. '퇴사한다', '유튜브 한다'가 바로 그것인데, 회사 동료들과 장난으로 맨날 유튜브 한다 유튜브 한다 주문을 외우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가 해야만 하는 숙제로 마음에 새겨졌던 것 같다. 이 시간 동안 유튜브를 시작하지 않으면 정말 나는 잉여인간이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에 휩싸였다. 1화를 만들어 놓고 올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순간, 아는 언니에게 '언니 나 정말 용기가 안나. 재미없다고 댓글 달리면 어떡하지?'라고 고백했고, 언니가 만약 박막례 할머니의 명언, '너의 박자에 맞춰 춤춰야지'를 날려주지 않았다면 내 브이로그 1화는 내 외장하드 속에서만 평생 존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설픈 편집과 촬영 그리고 조잡스러운 섬네일을 장착한 채 내 브이로그 1화는 그렇게 세상에 내보여지게 되었고, 올리자마자 어느 관대한 네티즌의 댓글이 하나 달린 것을 제외하고는, 처참한 조회수로 세상에 외면받았다. 그래도 나의 인생에서 이 일은 방구석에서 조용히 일어난 혁명이었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출정을 한 것'에 견주어 비장하게 진행된 일이었다. 나는 생각했었다. 내가 무언가 시작을 못해서 그렇지, 시작만 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거야. 하지만 나의 브이로그는 세상이 던져졌지만 나는 어제와 같이 여전히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대로의 아침을 맞아 사과 반 쪽을 깎아먹고, 늘 가던 카페에 앉아 늘 먹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시작한다고 해서 무언가 바로 바뀌는 것인 없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 현실이, 자꾸만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보다 그냥 현상유지나 하자고, 자꾸만 포기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붙잡고 있는 두 손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역시 세상에 기적 같은 건 없다고 믿고 쉽게만 살아가고 싶어 진다.


  언젠가 감명 깊게 읽었던 룰루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귀여니의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오열하면서 읽은 이후로,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라는 걸 흘려본 적은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없는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눈물이 앞을 막았었다. 무엇보다 가장 가슴에 박혔던 말은 인생이라는 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는 아버지가 작가인 딸에게 해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외면하고 싶은 명명백백한 조언이었다. 이 세상에 어떤 기준을 가지고 A는 A다 B는 B다라고 정의 내리면서 살아가고 싶은 우리들에게 사실은 A라는 것도 없다고 알려주는 이 책이 지금 나에게 어느 때보다 큰 위안이 된다. 내가 이 일을 지속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A라는 결과물이 나올지는 미지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2화를 올리려고 하는 이유는 작가가 말해준 것처럼, 어떠한 확신도 없을 때 나 자신을 가당치도 않게 그냥 믿어보는 게 내가 나의 방구석에서 나와 싸우면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결과도 없이 인풋을 쏟아부으면서 나는 바보가 아니라 승리자라고, 이 혼돈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하나 확실한 것이 없어도 그냥 나 자신을 믿어보는 것, 그냥 계속 던져보는 능력에서 기인한다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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