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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몽 May 14. 2024

쾌활함, 쾌활함만이 그냥 정답이야.

돈을 왜 괴롭게 벌어야 돼요

  요즘 휴직을 하고 있지만, 가끔 회사를 배경으로 극단적으로 난감해지는 상황들이 꿈에 나오곤 한다. 일종의 트라우마일까. 회사 다닐 때 전혀 그 정도의 일은 겪지 않았는데도, 스트레스받았던 부분이 곪고 곪아 왈칵 터지게 되면 현실적으로 벌어질 것만 같은 사건들이다. 그리고 잠에서 깨면 순간적으로, 지금이 현실인지 꿈이 현실인지, 당장 블라우스에 슬랙스 구겨입고 지하철역으로 나서야 하는 건 아닌지 착각마저 들 정도로 생생하다. 휴직 후 몇 달이 지났는데도, 회사가 꿈에 악몽처럼 나온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생각보다 내가 정말 큰 스트레스를 견뎠었다는 것과, 당시에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 같다는 그 느낌은 온전히 나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어쩔 수 없었구나, 그 시간들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 손 꼭 쥐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버티다 보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그 시간의 나를 이해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어떻게 사니?', '고진감래', 'No pain, No gain'이라는 문구를 경전처럼 외워왔던 우리들은 고통을 참지 못하는 스스로를 두고 위로는 해주지 못할망정 자책하는 게 편하다. 왜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양 잘해나가는데 너는 이렇게 힘든 거냐고, 안 그래도 전장에서 팔 하나 잃고 돌아온 자신에게 대놓고 삿대질한다. 그런데 꼭 살아가면서 사람이 '고통'을 참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왜라고 물어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견디고 있는 이 시간이 '힘들다'는 느낌인지 '괴롭다'는 느낌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상황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직장인을 위로하는 몇 가지 짤 정도로 위안을 얻고 친구들이랑 공유하면서 킥킥대는 것으로도 반 정도는 경감될 수 있는 스트레스이다. 요가 몇 번과,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몇 번 먹고 나면 깨끗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괴롭다는 생각이 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괴로운 시간을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내가 버텨냈던 괴로운 시간들은 꼭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복수한다. 작게는 나의 경우처럼 꿈에 주기적으로 나와서 괴롭히기도 하고, 크게 복수를 당한 누군가는 아예 자기만의 방에서 몇 년이고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잘해봐야 손익분기, 대부분은 손해다. 그래서 나는 괴로운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괴로운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만 하면 괴롭지 않은 일들만 생긴다. 단순하지만 놀랍다.


  고통 없이는 결실도 없다는 말에 '왜요'라고 되묻는 자세가 우리를 오래 일하게 한다. 결국 인생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 몇 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돈을 마련하는 일의 반복이라면, 돈을 버는 일은 내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는 일이 괴로운 일이라면, 인생 전체가 괴로워져도 괜찮다고 스스로 허락하는 셈이다. 일이 끝난 저녁에, 힘들었다는 넋두리와 함께 내가 웃을 수 있는지, 아니면 내일도 모레도 반복될 일들에 짓눌려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는지 체크해 본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오늘 해나가는 것들이 나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지, 그냥 삽질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삽질이 나은 삽질이 될지 저 삽질이 나은 삽질이 될지 어차피 알 수 없는 것이라면 나를 즐겁게 해주는 삽질을 하는 것이 남는 장사가 아닐까? 오늘 하루 나의 쾌활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을 선택한다. 힘들지만, 괴롭지 않은 일을 선택한다. 괴로운 삽질은 오래가지 못한다. 오래가지 못하면 어차피 잘되기 힘들고  설령 잘되어도 그때부터 새로운 차원에 옴짝달싹 못하는 지옥이 시작된다. 과정이 즐거운 게 진짜다. 결과는 하루짜리지만, 과정은 그 자체가 내 삶의 스토리이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한다. 내 외부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 내 손으로 어찌할 수 없지만, 그 일을 대하는 나는 항상 쾌활하기로. 그래서 매일을 남는 장사만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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