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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몽 Apr 05. 2024

실패라는 이름의 기회

자원의 낭비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그리고 당신에게

  최근 며칠 동안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누워 지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 다 해보기'라는 의욕적인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한 나의 휴직라이프는 쉬운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해보고자 했던, 야심 찬 마음이 좌절되면서였다. 그 누구도 좌절시킨 사람은 없다. 범인은 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생충>같이 기가 막히고, <박쥐> 같이 눈을 뗄 수 없도록 매혹적인 스토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몇 시간 끙끙대서 겨우 생각해 낸 아이디어를 몇 줄 적어보면 내가 봐도 너무 뻔한,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나는 스토리텔러로서 재능이 없나 보다, 그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살 거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나는 굿 스토리리스너인가 굿 스토리텔러인가, 그 명확한 대비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했다.


  아, 나는 커피머신 돌아가는 소리와 재즈가 뒤섞인 평화로운 카페 한 구석에서 매일, 매초 실패하고 있었다. 실패는 사람을 필연적으로 주눅 들게 한다. 왠지 바깥세상에서는 그 무엇도 내 손으로 이루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착각에 빠진다. 이런 패배감 뒤에는 곧이어 필시 자기 합리화가 찾아오게 된다. '그래, 그냥 휴직기간 동안 책만 많이 읽어도 남는 게 아닐까?',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까 쉬기만 해도 이 정도는 나에게 주는 보상이지 안 그래?'라는 속삭임이 귀에 아른거린다. 괜히 뭘 해보려고 했던 내가 잘못한 것 같고, 그냥 쉬기만 했으면 재충전이라는 보상이 있었을 텐데, 뭘 해보려고 해서 출근할 때만큼 스트레스만 받고 얻은 건 없는 것 같은 그 느낌,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는 계산이 선다.


  그렇게 천장과 유튜브 채널을 시간차를 두고 번갈아 쳐다보고 있다가, 마음의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억울함이 올라온다. 아니 그래도, 이야기가 이렇게 흐르면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던 찰나, 의미 없이 릴스를 넘기고 있는데 비욘세 언니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해주었다. 실패가 날 더 강하게 해 줄 거라고. 본인도 24번 그래미 트로피를 들기 위해서, 46번 실패했다고. 뭘 할 건지 말만 하지 말고 꿈만 꾸지 말고 너만의 것에 집중하라고.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가서 직접 해보라고. 계속 밀고 나가 두려움을 지우고 의심을 지워, 너에게 계속 투자하고 너에게 배팅하라고. 맞아, 나는 그냥 이런 뻔한 위로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할 시간에, 차라리 실패를 쌓으라는 위로. 행동을 하면 필연적으로 실패와 성공 두 가지 답안이 뒤따르게 된다. 


  마치 동전 던지기 같은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동전을 던지지만, 그게 성공이라는 면이 나올지 실패라는 면이 나올지, 그 응답은 내 손안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동전을 던지는 것. 실패가 나오면, 동전을 괜히 던진 거 아닌가, 차라리 그걸로 새콤달콤이라도 사 먹었던 게 나은 거 아닌가 전전긍긍할 시간에, 그냥 다른 동전을 다시 한번 던져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 어쩌면 실패라는 면을 볼 때 우리는 기뻐해야 할지 모른다. 동전 던지기는 최소 50 : 50이라, 실패를 한 그 순간, 성공이라는 면을 볼 확률이 올라갔으니까. 앞으로 실패를 하면 '얏호'를 외치자. 시간, 체력, 에너지, 그리고 돈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실패를 확인한 것이 아니고, 성공으로 가는 운을 쌓았으니까. 이쯤 되면 눈치채셨겠지만, 내가 쓰는 글들은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이기 이전에 내 귀에 대고 때려 박는 다짐이다. 


(비욘세 동영상을 보고 싶은 분들은, Beyonce Commencement Speech, Dear Class of 2020 영상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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