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참 잘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영화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드라마 <연애시대> 같은 경우에는 틀어놓으면 10대의 통제 불가능한 내면의 불과 불안을 잔잔하게 만들어주기까지 해서, 몇 번을 본 지도 헤아릴 수 없을 지경으로, 생활의 BGM으로 틀어놓았다. 꽂힌 영화는 다섯 번이고 열 번이고 봤고, 친구들은 나보고 신기하다고 했다. 본 영화 또 보면 재미없지 않냐고. 그런데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었던 그때의 나에게, 이 세상에서 진짜처럼 느껴졌던 것은 오직 이야기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이야기에 몰입했던 순간, 그 밀도 높았던 순간에 나는 하루 중 유일하게 정말로 살아있었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갓생을 살면 잘 사는 걸까?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독서를 하고, 수영을 다녀온 이후에 10분 만에 후다닥 씻은 뒤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 업무에 집중하면서 퇴근하면 동료들의 간단한 회식 제안을 무시하지 않는, 관용적인 구성원이 되면서도 집에 가서 남몰래 부업을 마무리하고 자는 삶을 살면 나는 잘 살게 될까? 그런 하루들이 삶의 희열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무언가를 아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과정을 열심히 수행하는 것에 불과할까. 자가 마련, 연 소득 몇 억 달성, 부업으로 인한 소득 월급 뛰어넘어.. 같은 문구 없이도 그냥 살아내는 과정에서 잘 사는 사람이고 싶은데. 고민의 고민은, 내가 잘하고 싶은 것을 잘하게 되면 잘 살게 되지 않을까로 흐른다.
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을 늘리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잘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한다. 1개를 적어도 좋고 10개를 적어도 좋은데, 그걸 잘하고 싶은 마음의 순서대로 늘어놓는다. 그다음에 하나하나 그 일에 몰입을 시도해 본다. 어떤 일은 몰입이 잘 되는 일도 있을 것이고 안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잘 안 되는 일은 쳐낸다. 쳐냈는데 계속 생각이 난다. 포기가 안된다. 그러면 다시 해본다. 어떤 일을 해나가는데 몰입하는 시간을 늘릴수록, 믿는다, 그 일을 잘하게 될 확률도 올라간다고. 그게 내 인생에 진짜의 시간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계획이다. 좋은 시나리오의 구조는 복잡하지 않다. 단순한 구조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디테일이 다르다. 이런 단순한 계획으로도 나의 인생도 좋은 시나리오로 흐를 거라고 무턱대고 믿어보는 전략이다.
그런데 이 전략이 여간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시간낭비가 아닌가? 출근은 하면 그날의 일당을 받는데, 잘하고 싶은 것을 잘하게 되는 과정은 너에게 그 무엇을 쥐어줄게라고, 그 어떤 확신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잘하고 싶은 것을 잘하기보다는, 당장의 확실한 보상을 얻기 위해 행동하고, 그 별 것 아닌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 '그때 시도를 해봤어야 했는데, ',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과 같은 레퍼토리가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짜 귀한 것은 그 무엇도 확실한 형태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귀하다. 리스크를 감당한 사람만 가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냥 쉽게 생각하면, 내가 살아갈 이 100년의 인생은, 어차피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시간낭비다. 인간은 효율적으로 살아가라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낭비될 것을 알면서도 태어나지 않던가? 목적에 충실하자. 인생을 잘 낭비하고, 그리고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