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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Jul 04. 2022

손 느린 기자의 생존법

[산업부 어쩔기자 일지①]

기자 30여명이 모인 기자 간담회장.


협회에서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다. 긴담회가 시작되고, 협회 부회장이 발언을 하자, 기자들이 빠르게 노트북을 치며 손을 놀린다.


나 역시 메모장에 발언 내용을 받아치기 시작한다. 손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덩달아 메모장에도 무슨 말인지 모를 문장들이 적혀 있다.


나는 손이 느린 기자다.


기자에게 중요한 덕목을 뽑자면?


취재력, 친화력, 통찰력.


그리고 이 세 가지 능력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타자를 빨리 치는 능력!




기자가 하는 일 중 현장에 나가 취재원들이 말한 것들을 노트북으로 받아쳐 기사화 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연차가 어린 기자일수록 많다.


손이 느린 난 초등학교 때 쓰기 시간이 세상에서 최고로 싫었다. 50분 안에 선생님이 칠판에 쓴 글자를 다 공책에 받아써야 하는데, 50분 안에 그 많은 글자들을 공책에 받아 적기엔 손이 너무 느렸다.


성인이 됐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기자가 돼 간담회 장을 가면 속사포처럼 말하는 취재원들의 입에 멈춤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워딩을 친다고 쳤지만, 나중에 펼쳐보면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래서 타사 기자들에게 워딩을 공유해 달라고 읍소해야 하는 상황이 부지기수였다.


도대체 자연어를 인식해 곧바로 워딩으로 쳐 주는 IT기술은 언제쯤 완성되나요.


손 느린 기자 주제에 어떻게 이 바닥에서 10년 넘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우선 야마를 잘 뽑는다.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간담회에서 단순히 말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간담회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야마(주제)’를 뽑고, 그 야마를 중심으로 필요한 멘트를 받아 적는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추가 취재도 한다.


또 손이 느려 속도전엔 약하지만 기획력은 강하다. (동의해 주실 분 찾습니다!)




한 발 빠른 기사요? 아뇨, 저는 한 발 느린 기사를 씁니다!


매체의 홍수, 기사의 홍수 속 나보다 손 빠른 기자는 수두룩 빽빽 이다. 내가 빠르게 올리지 않아도 이미 고만고만한 기사는 어느덧 쌓여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안에 좀 더 깊숙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한 발 느린 기사? 데스크가 들으면 경악할 일이다. 이 글을 데스크가 볼 일은 없으므로.

뭐, 기사 좀 늦게 올린다고 하늘이 두 쪽 나진 않더랍니다만,


이것도 다 뭐, 손 느린 기자가 하는 자기변명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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