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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Jul 07. 2022

오전에 사표, 오후에 잠수

[산업부 어쩔기자 일지②]

"선배, 제가 지금 사직서를 내러 회사에 들어가고 있어서요..."     


오전 10시, 취재 지시를 위해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 말을 하고 있는데 후배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내 말이 끝나자 후배가 말한다. 사직서를 내러 회사에 들어가고 있단다.      


불과 며칠 전에 네 입으로 우리 회사에 애사심이 있다고 하지 않았었니. 네 얘길 듣고 10년 넘게 직장생활하며 회사에 애사심 한 번 가져본 적 없는 날 반성했었어. 그 말은 모두 거짓이었니.     


어쩔기자: 그래...그럼 언제까지 일해?

개똥이 후배: 지금 사직서 내니까 오후부터 일 안하려고요.


할 말을 잃었다.      


'넌 서른 넘게 처먹은 놈이 그 따위로 회사를 그만둬? 적어도 일 마무리는 하고 그만둬야 할 것 아니야!' 란 분노 섞인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그래, 알았다."하고 전화를 끊으며 관계를 정리한다. 그렇게 다시 볼 일 없을 것 같은 관계에 마침표가 찍혔다.      




"후배가 사직서를 내면 배신감이 느껴져요."     


한 대기업 홍보 팀장이 말했다.      


어쩔기자: 전 말이에요, 사실 후배가 그만둬도 그러려니 해요. 더 좋은 곳에 가면          좋은 일이죠 뭘.

개똥이 팀장: 기자님은 후배들에게 애정이 별로 없나 보다.


물론 영 일리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애정이란 것이 같은 조직, 같은 공간에서 같이 일해야만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지 않는가.     


애정이 있다면 회사를 나가서도 관계는 이어질 테고, 오히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상황에 애정은 더 끈끈해 질 텐데. 뭐, 당장 내 밑에 일 할 사람이 없어 짜증이 난다는 것은 번외이지만 말이다.      


특히 언론계는 기자실로 출퇴근 해 같은 조직에 소속된 기자들 보다 타 매체 기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돌고 돌아 기자실에서 다시 볼 사람이니 같은 회사에 소속된 기자들의 이직이 그렇게 서운하진 않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오전에 사직서, 오후부터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직장 선택의 자유와 남아있는 사람들의 업무 독박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데. 잠시라도 같이 일 한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개똥이 후배와의 관계는 한순간 전화 한 통으로 정리가 되고, 


팀장으로 해 봐야 이제 남은 후배는 딱 한 명. 이제 너하고 나 딱 둘이 남았는데 말이야,      

제발 회사 나가려면 미리 이야기 좀 해 줘라, 후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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