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쩔기자 Jul 15. 2022

상사 얼굴 보지않고 일한다는 것

[산업부 어쩔기자 일지⑤]

도서관처럼 조용하다. 여기저기서 '타닥타닥' 노트북 치는 소리가 들린다. '짤깍짤깍'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도 들린다. A기업 기자실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폐쇄됐던 기업 기자실이 대부분 다시 문을 열었다.     


기자실이 폐쇄됐을 땐 집 근처 커피숍이나 약속 장소 근처 커피숍에서 일을 할 수 있어서 편했다. 출근길 '지옥철'을 타고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게, 출근길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업무를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았던 시간이다.      


그리고 기자실이 다시 문을 열자마자 데스크는 득달같이 전화로 묻는다.      


"어디야? 어딘데 음악 소리가 들려?"     


얼마나 기다리셨나요. 그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자가 기사만 잘 쓰면 되지 어디서 기사 쓰는 게 뭐가 그리 중한가요? 집 근처 카페입니다만.'      


맘 속의 말이 입 속을 맴돈다.     




기자들은 통상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기자실로 출근한다. 정부 부처 출입이면 부처 기자실로, 기업 출입이면 기업에 있는 기자실로. 기자실이 없는 곳을 출입할 경우엔 회사나 인근 카페로 출근하기도 한다.      


즉, 일반 회사원들과 같이 사무실에서 직장 상사와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수습 시절, 기자실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시간을 보냈던 시절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는 느낌이 참 불안했더랬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로 이어지는 동안 어딘가에 소속돼 있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게 낡은 옷처럼 익숙했던 삶이었다.      


그런데 기자 일을 시작하며 아무도 모르는 기자실로 출근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앉아있자면 불안감이 엄습했다.     


타 언론사 기자의 '타닥타닥' 노트북을 치며 기사 쓰는 소리, 

이리 저리 전화 취재를 하는 소리, 

선배가 후배에게 지시하는 소리,      


그 모든 소리에 예민하게 귀를 쫑긋 세우지만, 정작 난 뭘 해야할지 몰라 불안감만 엄습했던,     


마치 대학 전공과목 시험 날 '땡' 소리와 함께 시험이 시작되고 '쓱쓱' 연필굴러가는 소리로 가득찬 강의실에 덩그러니 앉아 뭘 써야 할 지 모르겠는 심정.     


운이 좋아 취재원을 만날 때 데려가 주고, 함께 기사를 쓸 수 있게 배려해 기사지시를 해 준다면야 땡큐지만, 선배들 대부분은 하루하루 제 발제 쓰기에 급급해 후배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아, 나도 회사로 출근하고 싶다!'     




의미 없는 소속감에 목말랐던 시기.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에겐 그 때 그 생각은 틀렸다.      


이젠 사무실만 들어가면 숨통이 조여 온다. 터가 좋지 않은게 분명하다. 데스크들의 얼굴은 썩어 있고, 당직자를 제외하면 기자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기업에 계신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하루 종일 직장 상사랑 한 곳에 붙어 있어요? 만약에 상사가 진짜 싫은 사람이면 어떡해요?"      


대기업에 다니는 개똥이 과장에게 묻는다. 개똥이 과장은 어떻게 그렇게 당연한 일이 궁금할 수 있냐는 표정이다.      


"그냥 속으로 담배 펴요. 사무실에 앉아 맘속으로요."     


그렇게 담배를 펴대다 속에 폐병이 걸리진 않으셨을지.      


알고 보면 기자일의 최고의 복지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한 공간에 있지 않고, 혼자 동떨어져 일할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전 04화 아는 '오빠' 개똥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