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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Aug 17. 2022

기자정신으로 퉁치기 어려운 세상

[산업부 기자의 어쩔기자일지⑮]

(오늘의 이직) 

개똥이 기자==>A사

소똥이 기자==>B사

말똥이 기자==>C사     


오늘도다. 기업 홍보실로 전직한 기자들의 찌라시가 날아온다. 홍보실로 전직하는 기자들이 하도 많아 이젠 새롭지도 않다.      


A사로 전직한 개똥이 기자는 외신기자 출신으로 불과 1년 전 출입처 기업 임원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외신기자에겐 찾아보기 힘든 전투력 있는 기자였다. 개똥이 기자가 전직한 기업은 그 때 저녁자리에 참석한 임원이 소속된 회사의 계열사다.      


B사로 전직한 소똥이 기자는 전에 같은 회사에 있던 회사 후배로 여기저기 매체를 옮겨 다니다 결국 B사 홍보실에 터를 잡았다. 기자일이 잘 맞지 않은 친구였다.      


C사로 이동한 말똥이 기자는 기자 일을 하다 그만두고 훌쩍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돌아와 다시 기자 일을 하다 C사 홍보실로 떠나갔다.      


개똥이나 소똥이나 말똥이나 기자 일을 그만둔 이유는 각기 다르겠지만, 딱 하나의 공통점은 있다.      




"결국 돈이지 뭐."     


이미 10년 전 일지감치 대기업으로 전직한 전직 기자 출신 홍보 부장의 말이다.      

"일이야 기자 일이 재밌지. 자유롭고. 그런데 대기업으로 들어가면 돈을 훨씬 많이 주니까."     


아이 사교육비, 월세, 생활비... 돈이 한정 없이 들어가는 요즘 내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말,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 선착순으로 고금리 적금을 들 수 있는 은행 '오픈런(문을 열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이 유행이라던데, 새벽에 은행 오픈런이라도 뛰어야 하나? 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적금 들 돈이 없다.      


"기자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고는 하나(사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다) 온라인매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발빠른 유튜버들이 기자보다 한발 앞선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 기자는 돈도 없고 가오도 없다.      


그래서 내 초라한 월급 통장을 볼 때면 

'아, 이 일을 계속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부터 드는 건 어쩔수 없다. 




"기자가 기업으로 가는 것, 부끄러운 거 아냐? 기자라면 기업을 감시하는 입장인데, 일말의 직업윤리가 있다면 말이야!" 하는 다그침에 선뜻 동의하지 못 하는 이유도 기자도 결국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결혼 해 애도 낳고 애 교육도 시켜야 할 나이. 기자의 커리어를 가지고 더 좋은 연봉을 받고 일 덜 할 이직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을 꺼리는 기자는 몇이나 될까.      


기자들의 전직 소식을 전해들을 때 마다 '아 나도 어딘가 가야 하나...'하는 초조한 마음이 들면서도 막상 "기업 홍보실에 관심 있어?" 하는 진지한 질문에 입을 닫아버리는 아이러니.      


한창 돈을 벌어야 할 나이

그럼에도 기자로서 한 일 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나이


'이 길이 네 길이요' 누가 딱 알려주면 좋으련만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앞날은 그저 흐릿하기만 하다.      


참 기자정신으로 퉁치며 기자생활을 하기엔 녹록치 않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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