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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Aug 19. 2022

명함을 주고받는 30초의 시간

[산업부 어쩔기자 일지⑯]

어쩔기자: 안녕하세요 상무님! 어쩔매체에 어쩔기자입니다! 지난번에 인사 드렸었는데요.

개똥상무: 아, 죄송해요. (어색 웃음)얼굴 기억하려면 명함을 세 번 정도는 주고받아야죠!

어쩔기자: 지금이 세 번째인데요, 다음엔 꼭 기억해 주세요!

개똥상무: (어색 웃음) 하하하!     


대기업 개똥이 상무와 인사 자리. 벌써 인사만 세 번째다. 한 사람에게 몇 번이건 명함을 건내는 일은 그닥 대수롭지 않다. 홍보임원이나 기자나 한 달에도 수십장의 명함을 주고받으니 인사만 해선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일상이다. 


명함 지갑은 비워도, 비워도 새로운 명함들로 채워지고, 집에는 받는 명함만 몇 박스 씩 쌓여있다. 그리고 그 명함 무더기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중에서 내가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여의도를 지나다가 타사로 이직한 선배를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한다. 


어쩔기자: 선배! 잘 계셨어요?

행인      : ??

어쩔기자: 선배, 저 000에요!!

행인      : ??

어쩔기자: 아, 혹시 소똥이 선배 아니세요? 

행인      : 아닌데요...

어쩔기자: ?!(어쩔....)




"저 사람 이름이 뭐야?"     


회사 포럼에 출입처 사람들이 몰려든다. OO기업에 OOO상무, △△기업에 △△△전무, □□기업에 □□□센터장. 알 듯 말 듯 한 홍보맨이 알은체 하며 반갑게 인사하면, 아주 절친한 사이인 것 마냥 맞받아친다. 하지만 정작 이름 조차 기억나지 않는 관계다. 그래서 슬그머니 그 곁을 피해 후배에게 막 인사한 사람의 이름과 소속을 묻는다.      


10년 넘는 기자생활 동안 무수히 명함을 주고받은 관계들. 비즈니스 관계에 새로운 사람과 명함을 주고받는 30초의 시간은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 할 소모적인 스침은 아닐지.      


"많은 사람을 알 필요 없어. 정작 관계를 유지할 사람은 몇 안 되거든.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의지가 있는 사람, 그 사람들만 사귀면 돼!"     


기자생활 13년차, 소모적 관계들에 권태를 느낀다는 나의 고민에 대형로펌에서 대관업무를 하고 있는 노련한 전문위원은 조언한다. 정보의 길목에 있는 사람들도 정해져 있고, 관계를 유지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도 딱 정해져 있다고.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너에게도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 관계의 정석.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양보단 질이라는 삶의 진리.     


어쩌면 새로운 사람과 명함을 주고받는 30초의 시간보다 더 중요한 건 바쁜 일상 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짧은 안부 메시지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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