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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Aug 25. 2022

자기PR시대, 유튜브와 울렁증

[산업부 어쩔기자 일자⑰]

"어쩔기자 님이시죠? 혹시 유튜브 출연 가능하신가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정부기관 유튜브 작가의 출연 요청 전화다. 유튜브 진행자로 연예인도 두 명이나 나온단다. 기자로, 또 작가로 내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란 직감이 든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기자가 종종 등장한다. 드라마 속 기자들은 아주 공격적인 자세로 처음보는 취재원에게 질문을 쏟아내고, 거침없이 공격한다. 뭣 보다 그들은 낯가림도 없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다시피 난 MBTI 'I형', 내향적인 기자다. 발표, 면접 등과 같은 자리에선 바짝 긴장부터 하고, 주변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을 못 견뎌한다. 그런 내가 카메라 앞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나,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한다. 

"그런 것도 계속 해 봐야 늘지."     


맞는 말이다. 언론매체가 온라인 매체를 포함해 셀 수 없이 많고, 거기에 소속된 기자들도 쏟아진다. 알 수 없는 매체들이 난립하는 상황에 기자란 직업이 갖는 희소성은 이미 사라졌고, 기자 명함이 '프리패스'로 여겨지던 시대는 지나갔다.     




"대한민국 헤드헌터들, 참 부지런하더라고요."     


한 메이저 언론매체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대기업 상무로 입사한 개똥이 상무와의 점심 자리.      


"언론사 그만두고 어디 이력서를 올리지도 않았는데 헤드헌터 통해서 총 다섯 곳에서 오퍼가 들어왔어요. 이직하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았죠."     


개똥이 상무는 메이저 언론에서 경제부처, 국회, 청와대, 삼성을 출입처로 거쳤고 미국 워싱턴 특파원까지 다녀온, 소위 언론계에서 엘리트 코스를 제대로 밟은 기자였다.      

그런 개똥이 상무의 얘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가 당장 회사를 그만둔다면 대한민국 헤드헌터들, 나에게도 부지런할까?'     


그들이 내가 일을 그만뒀다는 사실 조차 모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바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출근을 해야한다.   

  

개똥이 상무 같은 빵빵한 포트폴리오로 무장하지 못 한 내가 기자이자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내 스스로 나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크든 작든 날 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기회를 꽉 물고 늘어져야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까지 나오는 정부부처 유튜브 출연은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무조건 나가야 하는 자리이지 '내 성향은 이런데...'를 따질 참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유튜브 방송 당일.      


연차를 내고 지방까지 운전기사 역할을 자처해 준 남편을 부여잡고 방송작가가 보내 준 대본을 수십 번 읊조린다. 1시간 전, 약국에서 가장 비싼 우황청심환도 사먹었다.      


사회자의 유연한 진행 속 차분하게 내가 취재했던 내용과 느꼈던 바를 털어놓는다. 그렇게 30분 동안 진행된 방송을 끝내니 그제야 긴장된 얼굴이 풀린다.      


"차분하게 잘 하시던데요." 방송작가의 말에 

"긴장 정말 많이 했어요." 하며 겸손떠는 말을 하며 

'아, 나 나쁘지 않았어!' 하는 생각으로 큰 산을 넘은 것 같은 안도감이 밀려온다.      


자기PR시대, MBTI 'I형' 기자로 살아남기에 넘어야 할 산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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