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개똥이 부회장의 현장경영 자료가 메일함으로 들어온다. 현장경영의 일환으로 계열사를 직접 방문하고 있는 개똥이 부회장. 그리고 추가 내용이 따라온다. 개똥이 부회장이 계열사 구내식당에서 식판에 밥을 받는 사진. 사내 어린이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아이컨택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사진.
기자들이 기사를 쓴다.
'개똥이 부회장의 소통경영'
'개똥이 부회장의 식판경영'
'사내복지 강화에 관심 갖는 개똥이 부회장'
이 기사대열에 합류해야 하나? 싶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개똥이 부회장은 저 식판에 몇 번이나 밥을 먹어봤을까.
"오늘은 대충 구내식당에서 점심 때웠어."
직장인 남편군은 종종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일이 바빠 대충 점심을 때우고 다시 업무를 봐야 하는 어느 날,
회사 밀집지에 위치한 식당에 지불해야 하는 밥값이 부담스러운 어느날,
밥을 빨리 먹고 좀 쉬고 싶은 어느 날.
나는 기자라 점심시간이 자유로운 편이다. 기업을 출입하다보니 기업 홍보맨들을 만나면 맛있는 것도 사준다. 하지만 맛있는 밥을 얻어먹는다고 해도 그 맛이 오롯이 느껴지지 않는 시간들이 대부분이다.
점심시간, 음식점의 작은 룸에 40대 후반 홍보 부장과 마주앉았다.
첫 대면에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한다. 홍보 일을 막 시작한 홍보 부장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작은 룸 안에 적막감이 감돈다.
"가볍게 맥주 한 잔 할까요?"
이런 어색한 자리에선 어색함을 조금이나마 지우기 위해 술에 기대야 한다. 기자생활을 10년 넘게 하며 터득한 노하우라고나 할까. 잠시 후 종업원이 맛있는 요리를 들고 들어온다. 얼마 전 가족들과 방문한 음식점, 너무 가격이 비싸 시키지 못 했던 메뉴다. 그 땐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어색한 분위기에 짓물려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기자에게 취재원과의 점심시간은 밥을 먹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한 시간이다.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밥을 빨리 먹고 30분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
새로운 사회적 인맥을 형성하는 시간,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한 시간.
개똥이 부회장은 구내식당에서 식판에 밥을 먹으며 직장인들이 갖는 점심시간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금수저 중 금수저인 개똥이 부회장이 식판을 들고 오가는 모습을 보며 직원들은 진정 개똥이 부회장과 소통을 하고 있다고 느꼈을까.
구내식당에서 찍은 개똥이 부회장의 사진을 보며 '개똥이 부회장은 대체 왜 저러고 있는 것인가'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 날, 어떤 기사를 써야 할 지 방향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