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뛰어 난 후계자, 부자간도 나누지않는 권력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

by 유원썸

비오는 주말

방콕 이틀째

토요일 세끼, 일요일 두 끼까지 차리고 치우고를 끝내고 나는 두 손 들었다.


" 이제 그만~!"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남편임에도 하루 세끼씩 이틀 내리 정확한 배꼽시계는 얄밉다.

나보다 앞선 선배들이 삼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집 가까이에 있는 동구릉이라도 가보자며 얼른 채근을 한다.

누가 비오는 날 왕릉을 보러올까 답답함도 풀고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도 걷고싶었다.


동쪽에 9개, 동구릉

서쪽에 5개, 서오릉

그 외는 잘 모르겠다만 18개의 장소에 50개의 조선왕릉이 있단다.

초등학교 시절 해마다 가던 소풍장소가 왕릉이었는데

당시에는 봉분에 오르내리고 미끄럼틀도 타고

난리도 아니었다.

애들은 애들이라고 그렇다치지만 선생님들도 관리인들도 그 중요성을 몰랐을까싶다.


궁궐에서부터 30km이내에 있어야한다는 왕릉의 규칙때문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이들에겐 혜택아닌 혜택이었겠다.

태조 건원릉이 제일 안쪽에 있고 9개의 능은 여기저기 흩어져있어서 제법 걸어야 모두 볼 수 있는 구조다.

티켓을 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제실이다.

제를 준비하는 직원, 당시에는 나으리정도 되지않았을까?

제가 주된 일인데다 왕이 행차하는 행사니 얼마나 긴장했을지 또 얼마나 정성을 다했을지 가늠이 된다.

종묘에서도 들었던 향로와 어로

향로는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라

일반인들은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이었다는 어로를 걸어야 한다.

산자와 죽은자의 길이라고도 표현했던 기억이다.


지붕 추녀마루위에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를 얼른 떠올릴 수 있는 잡상이 있다.

악귀를 물리쳐주는 의미로 당나라 태종이 귀신이 기와를 던지는 한마디로 꿈자리가 사나워

이를 막기위해 시작한게 우리나라까지 건너왔다고 한다.


전날 비가 엄청 왔던지라 행여 피해가 있을까싶어 비닐포가 덮혀져있는 봉분,

지금은 감히 오르지못하는 저 곳을 수십번도 오르내렸으니 철이 없어도 진짜 없었다.


코로나 백신을 완료한 분들에 한해서 해설을 해준다고 한다.

그 봉분이 그 봉분인 것 같고 왕릉이 재미로 찾는 곳은 아니지만

비오는 날, 방콕에 삼시세끼 뭘 해 먹을까 궁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행차였다.


동구릉에는 왕이나 왕비가 각각 단독으로 조성한 단릉이 있는가하면

왕과 왕후의 각각의 능이 나란히 놓인 동원이강릉

둘을 하나의 능에 조성한 합장릉

왕과 두 왕후가 나란히 놓인 삼연릉이 있다고 한다.


역사공부를 하러 온 어린 친구나 단체를 위함인지 왕의 숲길도 있고 공기놀이같은 전래놀이장도 마련되어있다.





조선왕조 500년에 태조부터 순종까지 27명의 왕이 있었다는데

어질고 이것 저것 만들어 태평성대를 이룬 세종대왕이 있는가하면 옥체를 보존해야한다는 이유로

줄행랑을 치거나 민정은 나몰라하던 폭정과 폭군도 있었다.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왕이지만

자라면서 왕이 될 운명이나 인성이 아닌 인생도 있을

법하다.


어떻게 돌다보니 영조앞에 서있다.

하고 많은 왕중에서도 누적관객수 600만이 넘은 영화 "사도세자" 때문인지

다른 왕보다 더 익숙한, 친숙한 느낌마저 든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란 말처럼

영조는 아들을 질투하고 권력에 유독 집착한 듯하다.


실제로 그의 군림은 52년에 달했다고 한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배경에 -후에 탕평책이란 제도를 만들게 된 계기는 마련했지만-

지긋지긋한 당쟁이 있었다고도 하다만

영화를 두 번 본 경험으로 어쩐지 영조는 사도세자를 그닥 신임하지않았다.


42살에 얻는 늦둥이 아들이었으니 보고 있기만해도 아까웠을텐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스물일곱의 아들을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대해야했을까

지금도 영조로 분한 송강호가 수렴청정을 한다면서도 매번 세자 유아인뒤에서

"쯧쯧쯧" 혀를 차거나 불같이 화를 내거나

귀를 씻으며 사도세자를 부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버지로써 아들을 먼저 보내고 가슴아파하는 장면은 크게 와닿지않는 걸 보면

그가 연기를 잘했던가 영조는 아버지이기전에 권력이 우선이었던 이미지가 강했다.



영조의 재임 50여년은 일관성있는 정책으로 많은 성과도 있었겠지만

백성들이나 신하에 입장에서는 고인 물과 같은 답답함도

분명 있었었으리라


본인은 어떨까?

일은 아랫사람이 다 한다고 해도 50여년을 결재해야하는 막중한 자리, 책임자의 자리에서

은퇴하지못하는 상황이 행복만 했을까?


내가 CEO나 수장이 되어보지못했으니 그 권력욕을 알 리 만무하나

금과 은으로 치장을 해준다해도 어느 때가 되면 좀 내려놓고 쉬고싶은 마음

사람이라면 분명 가져봄직하다.


마땅안 후계자를 세우지못하고 백발이 되도록

여전히 현역으로

"내가 아니면 일이 돌아가지않으니...내가 언제까지 이 자리에 있어야하나" 며 혀를 쯧쯧쯧 차는 게

결코 좋아보이지않는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

선거철이 되면 나온다는 이 말은 영조와 사도세자나 정치인들에게만 국한하는 것도 아니다.


나보다 나은 후임이 왔을 때

그 후임이 인기가 높을 때

나보다 더 잘한다란 평가를 받을 때

내가 아직 살아있음에도 뒷방 늙은이 취급할 때

메인인 나를 제치고 마이너가 더 영향력을 줄 때

회사에서도, 정치에서도 하다못해 작은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상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당혹감.

그 당혹감이 질투까지 이어지면 진짜 문제다.


그나저나 자식이 부모보다 낫다고 하면

부모에겐 아주 기분좋은 칭찬임에도

자녀들이 아직 대성하지않아서인가

딱히 칭찬같지않은 듯한 묘한 느낌이 들기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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