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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제가 원래 좀 솔직한 편이라서요

솔직함과 무례함은 다르다

by 커리어포유

얼마 전, 지인의 초대로 한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

직업도, 나이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였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단정한 외모에 깔끔한 옷차림, 정돈된 목소리 톤까지...

환한 미소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자리를 옮겨가며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사교성이 좋아 보였다.

처음엔 그냥 ‘분위기를 잘 이끄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런 그녀가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왔고 나와는 초면이라 가볍게 눈인사만 나눴다.

그리곤 내 옆자리에 앉아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말 거슬리기 시작했다.


"제가 좀 솔직한 편이라서요.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지적들.

"그렇게 무리하게 운동하는 건 건강에 안 좋지 않나요?

그냥 음식을 줄이시면 살이 빠질 텐데... 아까 보니까 살찌는 음식만 골라서 드시더라고요. 호호..."

"아, 그 회사 아직도 다니세요? 솔직히 거기 경쟁력이 좀 떨어지지 않아요?"

"어머, 헤어 스타일 바꾸셨어요? 지난번이 더 나은 것 같은데..."

그녀는 마치 ‘솔직함’을 면죄부로 삼아, 거침없이 사람들을 평가했다.

직업적인 특성상 사람들의 "말"에 민감한 나로서는 그의 '솔직함'이 '무례함'으로 느껴졌다.

'저건 솔직한 게 아니라 그냥 예의 없는 거 아닌가?'


솔직함에도 품격이 있고, 진심에도 예의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솔직함이라는 방패 뒤에, 상대를 상처 주는 날카로운 말들을 숨긴다.




주변에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는(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원래 좀 솔직한 편이라서..."

"나 거짓말 못 하는 거 알지?"

"나 원래 돌려서 말 못 해."

"절대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다 네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나니까 이런 말도 해주는 거야."

이런 말로 적당히 포장한 채

자신의 속에 있는 말을 여과 장치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다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후련할지 모르지만

받아들이는 상대에게는 그 말들이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아들의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참 다정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6학년인 아들은 지금까지도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가장 좋았다고 얘기한다.)

매일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클래스팅(온라인 수업 플랫폼)에 올려주셨는데

어느 날은 모종 심는 아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

음악과 자막을 넣어 동영상 작품으로 만들어 올려주셨다.

엄마들이 너도나도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남길 때 한 엄마가 조심스레 댓글을 남겼다.

"ㅇㅇ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저희 ㅇㅇ이도 잘했겠죠? 좋은 영상 감사드려요."

아마도 ㅇㅇ이의 모습이 빠졌나 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새로운 영상을 다시 올리며 답글을 달았다.

"우리 ㅇㅇ이 들어간 업그레이드 동영상입니다. ㅇㅇ어머니께서 ㅇㅇ이가 빠져 섭섭하셨을 텐데 이렇게 예쁘게 답글을 달아주시다니, 참 멋지세요."

ㅇㅇ엄마는 ㅇㅇ이만 영상에 보이지 않아 속상하고 서운했을 거다.

(분명 혹시나 놓치진 않았나 몇 번이고 영상을 돌려봤을 거다.)

그리고 그 마음을 그대로

"선생님, 왜 우리 ㅇㅇ이만 사진이 없어요?"라고 직접적으로 따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괜히 유별난 엄마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서운해도 그냥 모른 척 넘어갔을 수도 있다.

나라면 아마도 후자였을거다.

(나는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자주 쓰는 편이라 뭔가 마음이 불편하면 애써 모른척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괜히 한마디 했다가 관계가 불편해지느니 그냥 서운해도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ㅇㅇ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ㅇㅇ이가 빠졌다는 사실은 알리되 선생님이 무안하지 않도록 간접화법을 써서 표현했다.

그리고 그런 ㅇㅇ엄마의 마음을 선생님은 감사하게 받아들이신 거다.

이 장면에서 나는 ‘간접화법’의 품격을 보았다.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되, 상대의 체면을 지켜주는 방식.
그것이야말로 관계를 해치지 않는 솔직함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유창함이나 센스를 떠올리지만, 진짜 중요한 건 말의 태도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말은, 잘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막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직접화법'과 '간접화법'의 균형이다.

직접화법은 명확하고 직설적인 표현이다.

"왜 내 아이만 빠졌죠?"처럼 오해의 여지없이 사실을 묻는 방식이다.

반면, 간접화법은 배려와 여지를 담아 말하는 방식이다.

"ㅇㅇ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잘했겠죠?”처럼 의도를 에둘러 전하며 상대를 무안하지 않도록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직접화법이 필요하다.

신속한 판단, 분명한 입장 전달,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관계를 고려해야 할 때, 감정이 얽힌 상황에서는 간접화법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직접화법과 간접화법, 언제 어떻게 써야 할까?


✔ 직접화법이 효과적인 경우:

문제 상황을 분명히 짚어야 할 때

감정보다 사실 전달이 우선일 때

시간과 오해를 줄이고 싶을 때


✔ 간접화법이 유용한 경우: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해야 할 때

섬세한 피드백이 필요한 관계에서

아직 친밀하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에서




<솔직하면 안 돼?>라는 제목의 그림책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프랭크는

"선생님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요."

"교장 선생님 가발은 꼭 족제비 같아요."

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하는 아이다.

매사에 너무 솔직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이 언짢아하거나 화를 내자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도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를 고민하게 된다.

그런 프랭크에게 할아버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말하는 대신 마음에 드는 것을 솔직하게 말해보라"라고 조언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학교 축제 날 꼭 말처럼 웃는 선생님을 보며

"선생님 정말 재미있게 웃으시네요."라고 하거나

교장 선생님이 괴상한 춤을 출 때

"인상적인 회전이었어요. 교장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이 책에서는

'좋지 않은 것보다 좋은 것을 먼저 말하기'와 같이

나의 생각은 솔직하게 말하되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현명하게 말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간혹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가 좀 솔직한 편이라서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가식적인 사람이에요."

라는 단서를 붙이며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사람들...

상대방의 치부를 굳이 들추어내거나 상대방이 원치 않는 조언 따위를 하기도 한다.

그런 말은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을 때

뾰족한 송곳이 되기도 하고 날카로운 칼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분명히 말하지만

"솔직한 게 아니고 무례한 거다"

그렇다고 가식을 떨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의라는 것을 갖추라는 것이다.


직설화법이라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모호하지 않고 명확하게 의사전달을 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감정이나 입장은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솔직함과 무례함은 분명 다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생각한다면

"너도 알지? 나 솔직한 거... 그래서 말인데..."라는 말은 쉽게 나올 수 없다.


그렇다고 매번 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상대방 듣기 좋은 말만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그냥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왜 기분 나빠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말을 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말씨는, 상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말이었는가.

말투는, 존중을 담아 조심스레 건넨 말이었는가.

그래서 내 말은,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말씀이 되었는가.


말은 그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때론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힘이 되고,
또 때론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칼날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진심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상대에게 너무 쉽게, 너무 무겁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아무리 진심이어도, 배려 없는 진심은 그저 폭력적인 솔직함일 뿐이다.

그러니 꼭 기억하자.
솔직함은 가식 없이 표현하는 용기이자, 배려를 잃지 않는 지혜다.


‘솔직하게 말했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상처받았다면,
그건 솔직함의 문제가 아니라, 말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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