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게 아니라 걱정돼서 그래...
비 오는데 어디 가려고?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토요일,
행사 진행 때문에 아침 일찍 나갔다 점심때쯤 돌아왔더니 아들이 외출 준비 중이었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로 했단다.
오후에 점점 비가 더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웬만하면 그냥 집에 있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편의점에서 핸드폰 게임 조금 하고 떡볶이만 먹고 올게."라길래 그러라고 했다.
마지못해 허락한 척했지만 사실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저녁이 돼서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채 빗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너 이게 뭐야? 누가 비 맞으면서 놀라고 했어?" 라며 등을 찰싹 때렸다.
"아!!!"
잔뜩 인상을 쓰는 녀석에게
"엄살 부리지 마."라고 했더니
"그게 아니라... 사실...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다쳤어." 란다.
그 말에 놀라 젖은 티셔츠를 들춰보니
등 전체가 아스팔트에 거칠게 긁힌 붉은 자국이 선명했다.
"어디서 넘어졌어?"
"다리 위에서..."
"뭐? 떡볶이 먹으러 자전거 타고 갔다 온 거야?"
"응..."
떡볶이 가게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가야 하는데
무슨 생각인지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갔다 왔단다.
떡볶이를 먹고 집으로 오려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친구 한 명이 무리에 뒤쳐지는 바람에 기다려주다가
앞서 가는 친구들을 쫓으려고 속도를 내다 미끄러졌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다치고도 바로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비를 맞으며 신나게 축구까지 하셨단다.
"그러게 비 오는데 자전거를 왜 타?
그러다 찻길로 넘어졌으면 어쩌려고?
비 오는 날은 자동차도 사고가 얼마나 많이 나는데...
그리고 그렇게 다쳤으면 바로 집에 와서 약을 바르든지 해야지 이 시간까지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비 맞으면서 축구하는 게 무슨 낭만인 줄 알아?
너 내일은 나가 놀 생각하지 마.
외출 금지야!
얼른 들어가서 씻어."
신발도 벗지 못하고 현관에 서있는 아들에게 한참을 퍼부었다.
나는 아이가 밖에 나갈 때마다
"다치지 않게 조심히 놀아"라고 당부한다.
같이 노는 친구들이 모두들 워낙 활동적이라 멀리서 지켜보면 아슬아슬할 때가 많다.
그 덕분에 아이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늘 남아있다.
제발 좀 조심해서 놀라고 하면
"다른 애들은 더 심해."라며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했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놀다가 넘어져 다치는 것과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다 길에서 넘어져 다치는 건 좀 다른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 다시 한번 차분하게 얘기해 줘야겠단 생각에 밥을 먹는 내내 내 눈치를 살피던 아들을 불러 약을 발라주며 조용히 얘기했다.
"엄마는 ㅇㅇ이가 다쳐서 오면 정말 속상해.
이봐. 지금도 다리에 온통 상처와 멍 투성인데 이제 이렇게 등까지...
씻을 때 따갑진 않았어?"
"조금..."
"많이 아팠겠다.
엄마가 아까 소리 질러서 속상했지?
근데 엄마는 화난 게 아니라 걱정돼서 그런 거야.
자전거 탈 때는 진짜 조심해야 해. 너 요즘 헬맷도 잘 안 쓰잖아.
오늘도 넘어져서 머리라도 다쳤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비 오는 날은 절대 자전거 타면 안 되고
길 건널 때는 항상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건너야 해.
내리막 달릴 때는 속도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조심히 타야 하고..."
"응. 다음부턴 비 오는 날은 절대 자전거 안 탈게.
그리고 항상 조심하면서 탈게.
엄마 미안해..."
외출금지가 내려진 어제,
친구들에게서 놀자고 전화가 와도 아들은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근데 엄마... 다음 주에는 나가서 놀아도 돼?"
"으이구... 다 낫고 나면 놀아.
근데 제발, 제발 좀 안 다치게 조심히 놀아줘."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아이는 여전히 놀고 싶고
나는 여전히 걱정이 많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우리는 계속 배우고 있다.
사랑하는 법, 지키는 법, 그리고 놓아주는 법까지도...
그리고 나는 안다.
이런 날들이 쌓여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조금씩 부모가 되어간다는 걸...
*부모 마음 처방전*
1. 아이가 다쳐서 돌아왔을 때 화가 나는 건, 사실 걱정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꾸짖음'으로만 표현되면 아이는 부모의 마음을 오해할 수 있어요.
"화난 게 아니라 걱정돼서 그래."
그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2. 사고는 배움의 기회입니다.
실수나 다침을 무조건 '잘못'으로 여기지 마세요.
"다음엔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은 아이 스스로 위험을 판단하고 조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3. 감정이 가라앉은 후에 대화는 더 깊어집니다.
아이와 진심이 닿는 대화는 대개 화를 낸 직후가 아닌, 마음이 가락 앉은 후에 시작됩니다.
약을 발라주는 손길과 함께 건넨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