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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건데...

아픈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던 아들의 마음

by 커리어포유
짜잔~~


얼마 전 심하게 앓은 뒤, 여전히 병원을 오가며 겨우 몸을 추스르고 있던 중이었다.

며칠 동안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올 때마다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아들은 내 옆에서 이마에 물수건도 올려주고, 팔도 주물러주면서 나름의 간호를 했다.

너무 힘들 땐 그것마저 귀찮았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예뻐

없는 힘을 짜내 억지로라도 웃으려 했고

아이의 학교 이야기를 들어주려 애썼다.


그날도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옷만 갈아입고 침대에 눕자는 생각뿐이었는데,

집에 먼저 와 있던 아들이 성큼 내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 보여줄 게 있어. 이리 와봐."

말릴 힘도 없어 끌려가듯 따라간 냉장고 앞.

아들은 냉장고 문을 열더니 반찬통 하나를 꺼냈다.

"짜잔~~ 이것 봐라."

그 안에는 오이무침이 담겨 있었다.

"이거 ㅇㅇ이가 만든 거야?"

"응. 요즘 엄마 아파서 반찬 만들기도 힘들잖아.

그래서 내가 레시피 찾아보고 만들었어.

한번 먹어봐 봐."

보기엔 제법 그럴싸했다.

좀 싱겁긴 했지만 맛도 얼추 비슷하게 흉내를 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나의 맛평가를 기대하는 아들의 눈빛보다

엉망이 돼 있는 주방이었다.

사용한 도마와 칼, 숟가락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싱크대 상판엔 고춧가루 양념이 휴지로 대충 닦인 흔적처럼 얼룩덜룩 번져 있었다.

그리고 설거지통엔 양념이 잔뜩 묻은 그릇들과 오이껍질이 뒤섞여 있었다.

"하~"

무의식 중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다행히 아들은 못 들은 것 같았다.

"엄마가 만든 거랑 맛이 비슷하다. 잘 만들었네."

"진짜?"

"응... 저녁에 반찬으로 먹으면 되겠다."

아들은 뿌듯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주방이 자꾸 내 신경을 거슬렀다.


"아...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건데..."


차마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솔직한 내 맘이었다.

감동받아야 할 타이밍에 나는 피로감을 먼저 느꼈고,
고마워해야 할 순간에 정리할 걱정부터 하고 있었다.


엉망이 된 주방을 대충 정리하고 저녁을 차리면서 아들이 만든 오이무침을 꺼냈다.

그새 물이 많이 생겨 더 싱거워졌길래 고추장과 식초, 설탕을 조금 더 넣어 간을 맞췄다.

아들은 오이무침을 하나 집어 먹더니 그 뒤론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니가 만든 건데 왜 안 먹어?"

"이거 내가 만든 거 아니잖아."

"니가 만든 거 맞는데..."

"엄마가 새로 다시 다 한 거잖아."

"싱거워서 고추장이랑 식초, 설탕 조금씩만 더 넣은 건데..."

"완전히 다른 맛이잖아. 난 식초 안 넣었는데..."

그럼 뭘 넣고 만들었는지를 물었더니

고추장과 멸치액젓, 다진 마늘, 그리고 매실청을 넣었단다.

아!

아들이 만든 건 '오이무침'이 아니라 '오이김치'였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혼자서 열심히 레시피를 찾아보고,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오이를 썰고,
서툴지만 정성껏 양념을 만들고, 조심스럽게 버무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그 요리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었다.
"엄마, 내가 도와줄게"

그 마음 하나로 만든 사랑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정성 위에 내 방식의 맛을 덧입혔고,

결국 아들의 마음은 사라져 버렸다.


사실 그 마음조차 그날의 나에겐 조금 버거웠다.

지쳐 있는 몸은 사랑조차 무겁게 느끼기도 한다.

정성이 고마운 줄 알면서도, 그 정성을 다 받아낼 여유가 없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누워 있는 동안
옆에서 물수건을 올려주고,
조심스럽게 내 팔을 주물러주던 그 작은 손.

그 손이

오이를 썰고,
양념을 무치고,
내 입에 넣어줄 반찬을 준비했을 때
이 아이는 아마도
'엄마를 도와줬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마음 앞에 "고마워"라는 말조차 미처 꺼내지 못했다.


나는 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귀한 진심이었는지를...

그래서 미안했다.


말없이 오이김치 쪽으로 손을 뻗어 세 조각을 한꺼번에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래 씹었다.

입 안 가득 번진 건 오이의 맛이 아니라

아픈 엄마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 엄마가 다 삼켰다는 걸

아이도 어렴풋이나마 느꼈기를...


아들... 고마워.

그런데 말이야...

다음엔 그냥 옆에서 가만히 있어줘도 엄마는 충분히 감동할 수 있어.

진짜야...

그러니 제발... ㅋㅋㅋ


*부모 마음 처방전*

1. 아이의 '서툰 시도'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엄마가 원하는 방식은 아닐지라도, 아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을 전합니다.
그 어설픈 손길 뒤에는 "엄마, 내가 도와줄게"라는 말 없는 고백이 숨어 있습니다.

2. 때로는 도움을 주는 것보다, 도움을 받아주는 태도가 아이를 자라게 합니다.
아이의 진심을 고치거나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더 깊은 응원이 됩니다.
"고마워" 한마디가 아이에겐 세상의 어떤 칭찬보다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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