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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자전거가 박살 났어

먼저 '사과'할 줄 아는 아이

by 커리어포유

"엄마... 나 그냥 자전거 빨리 사면 안 돼?"

지난 주말 오후, 친구들과 놀다 들어온 아들이 현관에 멈춰 선 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고, 눈빛에는 이상한 주저함이 느껴졌다.

며칠 전부터 친구들 자전거에 비해 자기 것이 속도도 느리고, 사이즈도 작아진 것 같다며

로드 자전거를 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게 있었다.

휴대폰.

요즘 종종 전화가 잘 안 들리고 배터리도 금방 닳았다.

"자전거랑 휴대폰 중에 뭐가 더 급해?"라고 물었더니, 고민도 없이 '휴대폰'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전거는 여름방학 끝난 후에 사기로 한 터였다.

"왜? 오늘도 친구들보다 속도가 많이 쳐졌어?"

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끝으로 반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뜸을 들이며 내 눈치를 한참 보더니 깊은숨을 내쉬었다.

"자전거가 박살 났어."

"어? 무슨 소리야? 왜?"

놀라서 문을 열고 나가보니 자전거 타이어는 터져있고, 손잡이 부분과 핸드폰 거치대는 아들 말 그대로 다 박살이 나 있었다.

브레이크도 고장이 났다고 했다.

"넘어졌어?"

"아니... ㅇㅇ이랑 싸웠는데 ㅇㅇ이가 내 자전거를 발로 차서 넘어뜨렸어.

그래서 나도 ㅇㅇ이 자전거를 밀어서 넘어뜨렸어."

순간 아들 자전거가 망가진 것도 화가 났지만

친구 자전거를 넘어뜨렸다는 말에 혹시나 그 친구 자전거도 그런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끼리 서로 물건을 부수며 싸웠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ㅇㅇ이 자전거도 망가졌어?"

"모르겠어. 그냥 타고는 갔어."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안의 감정이 터져버렸다.

"아니... 너희들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어떻게 자전거를 부숴가면서 싸워?

친구가 그랬다고 너도 똑같이 그러면 어떡해?

너 앞으로 이제 자전거 없어."

결국 또 거기까지 갔다.

화를 내고 나서야 항상 후회하게 되는 그 지점.

그 말이 아이 마음에 어떻게 박힐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뱉어버린 말이었다.

아들의 어깨는 잔뜩 웅크린 채 조금도 펴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그 얼굴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아 그 자리에 아들을 둔 채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아들은 이내 조용히 거실을 지나 욕실로 향했고

잠시 후...

물소리에 섞여 울음소리가 들렸다.

목을 조여가며 참으려다 결국 새어 나오는, 작고 억눌린 흐느낌.

물소리가 그칠 때까지 울음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씻고 나온 아들은 말없이 식탁에 앉았다.

밥 먹는 아들에게 또 한바탕 퍼부으려는 나를 남편이 제지했다.

"밥 먹고 얘기하자."

어색한 침묵 속에 식사시간이 끝났고, 뒷정리를 하는 동안

아들은 누나에게 뭔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엄마, ㅇㅇ이 카드는 내가 정지시켰는데 재발급 신청도 해?"

딸의 말에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그제야 아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데?"

내막은 이랬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빙수를 먹으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이 친구에게 자전거를 서로 바꿔 타자고 제안했고 친구도 그러자고 했단다.

그런데 중간쯤 와서 친구가 다시 자기 자전거를 타겠다고 하자,

아들은 집까지 가기로 약속을 한 거니 계속 타고 가겠다고 우겼단다.

화가 난 친구가 아들 자전거에 꽂혀있던 휴대폰을 집어던졌고 ,

그 바람에 케이스에 꽂혀있던 카드가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아들 자전거를 발로 차서 넘어뜨렸고

아들 역시 화가 나 친구 자전거를 밀어버렸단다.

결국 카드는 찾지 못했고 휴대폰 액정 모서리 부분도 깨졌다.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냥 니 자전거 타고 오면 될 걸 왜 굳이 바꿔 타자고 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나는 또다시 아들의 잘못이라 몰아세웠다.

아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결국 시간이 나의 화를 가라앉혔다.





"엄마, 나 ㅇㅇ이랑 화해했어."

잠자리에 들긴 전 아들이 말했다.

자기가 먼저 미안하다고 톡을 보냈다고 했다.

그 순간 욕실에서 들렸던 울음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저 엄마에게 야단맞은 게 서러워서,

또다시 혼날까 봐 무서워서 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가장 친한 친구.

주말마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게임을 하고, 웃고 떠들던 친구와 멀어질까 봐...

그게 진짜 두려웠던 건 아닐까.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욕실 문을 닫고 물소리에 기대어 숨죽여 울었던 건 아닐까.

내가 깨진 휴대폰과 사라진 카드, 망가진 자전거만을 생각하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동안

아들은 무너진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없을까 봐 혼자 끙끙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작은 마음 안에

내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두려움과 속상함, 그리고 조심스러운 후회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잘했어."

그 한 마디에 마음을 담아 아들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나는 아들의 감정보다 앞서 반응했고,

그 마음을 들어주기보다 먼저 판단했고,

혼자 울고 있는 아이에게 위로 대신 화를 냈다.

그런데도 아들은 조용히 마음을 다독였고,

먼저 용기를 내어 사과했고,

스스로 그 관계를 회복했다.

그날, 아들은 분명 나보다 더 '어른'이었다.


*부모 마음 처방전*

1. 상황보다 감정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상황은 눈앞에 보이지만, 아이의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반응하기보다 먼저 들어야 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속에 아이의 진심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2. 혼낸 뒤의 침묵은 아이에게 더 큰 벌이 됩니다.
아이는 이미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화를 내고 돌아선 부모의 침묵은, 그 아이에게는 소리 없는 외면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주되, 그 시간 안에 "나는 네 편이야"라는 신호를 잊지 마세요.
말이 아니라 눈빛이나 손길만으로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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