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4총사

by 해니


“야, 나랑 친구 하자.”


꽃을 피우려 한껏 햇빛을 끌어안은 초록 등나무 벤치에 두 소녀가 있었다. 검은색 세일러복에 칼단발을 한 여고생들이었다. 당당히 악수를 청하며 먼저 벗이 되길 선언한 건 바로 숙희였다.


“너 이따 쉬는 시간에 벤치로 나와봐 봐.”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실에서 삼삼오오 무리가 지어지던 어느 날, 숙희는 옥이를 쉬는 시간에 불러냈다. 순하고 착한 성정의 급우를 눈여겨보다가 잘 맞을 친구라 판단하고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카리스마가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좀 무섭다고 해야 하나, 다소 겁나는 멘트로 불러냈지만 이를 요즘 문화로 빗대자면 해적왕 루피의 ‘너, 내 동료가 돼라!’ 같은 기운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숙희와 옥이는 친구가 되었고 결이 맞는 친구 정이와 은이 두 명이 더 합세해 4총사가 완성되었다.


“아유 그날 그렇게 불러내서 어찌나 벙찌던지! 네 엄마 참 대단하지?”

“와- 저는 성격상 도저히 할 수 없는 멘트예요. 하하하.”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 4총사는 이제 3총사가 되었다. 교복을 입고 해맑게 웃던 여고생들은 할머니가 되었고, 그 사이 숙희 씨는 먼저 가버렸다. 기일이 돌아오면 친구가 그리운 아주머니들이 이따금 나를 찾는다. 나를 보면 엄마가 느껴지나 보다. 자주는 못 뵙지만 이따금 엄마가 살고 있는 추모공원에서 만나 4총사가 함께 했던 옛날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암 진단을 받은 후 엄마의 친구들은 물심양면으로 숙희 씨를 챙겼다. 반찬도 해오고 몸에 좋다는 것도 구해 오기도 했다. 컨디션이 괜찮을 때는 교외로 호젓하게 콧바람도 쐬고 왔다.


“숙희 쟤가 원체 약하긴 했어. 우리 넷이 계곡에 가서 놀기라도 하면, 저 혼자 너른데 조용히 가서 눕고 쉬고 그러고 있었다니까. 한창때였는데도 말이야.”


암이라는 게 사람 가려가며 찾아오는 건 아니지만, 타고난 체질 탓이라도 해야 이 어찌할 바 모를 속상함과 야속함이 달래질 것만 같았으리라. 우리는 입을 모아 ‘엄마가 너무 약했어.’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이 죽기 전까지 단 한 명이라도 진실한 벗을 둔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숙희 씨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성공한 사람일 거다. 호스피스에 들어간 후 짧으면 3주, 길게는 2개월이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소식은 지인들에게 알려졌고 엄마의 벗들이 곧 떠날 오랜 붕우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기 위해 찾아왔다. 직장동료로 만나 이어온 인연, 학부형으로 만나 오래 교류한 벗, 고등학교 동창 4총사 분들까지, 희미해져 가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이곳에 붙어 있길 바라는 마음을 안고 찾아왔다. 처음 호스피스에 들어왔을 때는 그래도 대화라는 것이 가능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힘이 떨어져 필담을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갔다. 면회 온 아주머니들이 나에게 상황이 안 좋아지면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러부터 3주 뒤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기별을 받고 온 4총사는 엄마의 곁에 둘러서서 손을 꼭 잡았다.


“숙희야, 숙희야. 우리 왔어. 들리니?”


아주머니들은 엄마가 조금이라도 힘들까 싶어 이불도 다시 정리해 주고 머리칼도 매만져주면서 차마 이어지지 못하는 말들을 침묵으로 삼키며 서있었다.


“얘, 가서 밥 먹고 와.”


간호하면서 끼니를 빼먹으면 안 된다며 잠깐 우리가 있을 테니 식사를 하고 오라 했다. 감사한 마음과 착잡한 심정을 반찬 삼아 요기를 하고 돌아오니 울먹이는 아주머니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숙희가 우리한테 할 말이 있었나 봐. 뭐라고 뭐라고 소리를 내는데......”


가족들이 말을 걸어도 굳게 닫힌 문처럼 별 기색이 없던 엄마였는데...... 사랑하는 친구들이 곁에 와주니 어떻게든 힘을 내보려고 한 걸까? 아무도 알아듣지는 못한 엄마의 몇 마디는 무슨 내용이었을까.


‘내 걱정 말고 니들 인생 건강히 잘 살아.’


라고 말하고 싶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숙희 씨답게. 쿨하고 카리스마 있게.


그래도 마지막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지-라며 4총사 아주머니들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병원을 떠났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이가 곧 떠날 것임을 알고도 돌아서야 하는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엄마는 마치 ‘볼 사람 다 보고 간다.’는 듯 친구들을 보내고 1시간여 후에 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장례를 마치고 4총사로부터 엄마의 옛 사진들을 받았다. 고등학생 때의 사진도 있었고 네 분이서 놀러 가서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그중 한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양평 어딘가에 놀러 가 그네를 타고 있는 숙희 씨의 모습이었는데 사진 속 엄마의 미소가 18살 여고생 시절의 그것과 꼭 같았다. 엄마에게 이런 표정도 있었구나...... 친구들과 함께 해야지만 나오는, 자식들 앞에서는 좀처럼 나올 수 없는 얼굴이었다.


볼살이 통통하고 야무진, 진한 눈썹의 소녀를 오래도록 기억해 줄 사람들이 엄마 인생에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엄마도 마지막까지 함께 해준 친구들을 분명 고마워하고 있겠지? 아마 숙희 씨는 나중에 다 같이 만나게 되면 나눌 이야기와 수세미를 잔뜩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머니들이 건강히 잘 지내실 수 있게 저 위에서 잘 살펴봐 줘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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