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축하합니다.

by 해니

2009년 처음 갑상선 암을 진단받고 10년이 흘렀다. 애들 다 키우고 이제야 좋은 시절 보내려던 엄마는 운영하던 고시원도 접고 수술과 항암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처음 진단받기로는 A병원에서는 5년, B병원에서는 항암 없이 10년의 여명을 받았다. 2015년에 췌담관 쪽으로 크게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엄마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희망을 가지기 힘들었었다. 하지만 병원의 신속한 처치 덕에 엄마는 한번 회생을 했다. A병원을 통해 내려진 신탁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B병원의 예측뿐이었다.


100세 시대라는 말을 넘어 이제는 120세 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사실 현실을 돌아보면 100세를 넘긴 어르신들보다 아파서 오래 투병한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120살까지 사는 세상에 대해 지금 숙희 씨가 듣는다면 코웃음 쳤을 것이다. ‘120세는 무슨, 아프지나 않으면 다행이지.’라고 말이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는 예순이 넘도록 오래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나이 40만 되어도 이가 다 빠지고 관절도 몹시 약해졌다고 하니, 현대 의술과 영양조건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긴말이 필요 없다. ‘환갑잔치’의 개념도 61세까지 살아있는 사람이 흔치 않았기에 축하를 하기 위해 생겨난 것인데 내가 어렸을 적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환갑잔치가 흔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회관’ 같은 곳에서 가족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온 식구들과 지인들을 모셔 축하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하지만 요즘은 61세를 넘기는 어른들이 대부분이어서 되려 잔치를 하는 게 좀 유난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잘 안 하는 추세가 됐다. (핵가족화와 같은 시대변화도 한몫을 하긴 했지만)


우리 가족에게 숙희 씨의 환갑은 의미가 특별했다. B병원에서 받았던 여명 10년의 해가 딱 환갑 때였기 때문이다. 아마 엄마에게도 남달랐을 것이다. 그래도 너무 시끌벅적하게 하는 걸 싫어하는 가풍이었기에 회관을 빌려서 하기보다는 엄마가 좋아했던 식당에서 소규모로 식사를 하는 걸로 대신했다. 삼각지역 인근의 한정식 식당에 모여 꽃다발도 드리고 축하금과 더불어 손녀가 쓴 카드를 드렸다. 글자를 떼지 못한 갓 7살 된 손녀는 엄마의 지시에 따라 비뚤비뚤 메시지를 썼다.


‘할머니 환갑을 축하드려요. 100세까지 오래오래 사세요. 사랑해요.’


고사리손으로 쓴 카드를 읽으며 번져오던 엄마의 미소가 생각난다. 엄마는 고맙다고 하며 손녀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숙희 씨가 처음 아팠을 때는 존재하지 않던 아이가 어느새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될 터였다. 10년을 견뎌 온 보람 같은 걸 느꼈을까? 어떤 감회가 들었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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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 씨의 환갑을 맞이하며 나는 정말로 엄마가 나을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저 작은 체구와 정신력, 그리고 깡으로 이만큼 버텼는데 쉽게 스러지지 않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엄마는 항암제 임상 시험도 참여하면서 ‘렌비마’라는 독한 약을 먹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약이 얼추 듣는 모양새여서 이대로 쭉 복용하며 관리를 하면 삶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2019년도의 봄, 나는 그런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숙희 씨의 마음은 달랐나 보다. 엄마가 약을 그만 먹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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