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오랜만에 광화문 일대를 돌아다니는 중이다.
치앙마이에서 1년을 보내고 돌아온 후, 전혀 여기까지 나올 기력이 없었다. 귀국 후 거의 7개월 만에 나온 것이다. 불안장애 치료를 받으며 초반 3개월은 집을 청소할 기력도 없었다. 주중에는 힘겹게 일을 하고, 주말에 좀비처럼 지내기를 반복했다. 동네를 이곳저곳 돌아다녀 본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다 조금씩 기력을 회복해서 운동도 다녔고, 활동 반경도 넓혀나갔다.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고 동네에서 단골 카페도 만들었다.
대체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치앙마이에 있을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꽤 먼 곳까지 다니고는 했었다. 서울에 오자마자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좀 먹었다고 이렇게 무기력할 일인가. 약물의 영향이 이렇게 무서운 건가.
회사에서는 15시간씩 일을 하고, 주말에 몰아서 자는 생활을 위태위태하게 이어가다 팀장과의 갈등으로 병가를 쓴 지 3주가 지났다.
어젯밤, 인사팀장이 집 앞까지 찾아와서 논의한 결과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나가게 되었다. 그는 내가 복직할 팀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이미 시나리오를 다 짜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할 일이야 차고 넘치는데 인사팀장의 파워라면 어디든 나를 꽂을 수 있었을 것이다.
증거나 녹취를 모아두었다면 팀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할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이번 회사와의 관계는 이렇게 일단락시키기로 했다.
내가 일을 미친 듯이 해서 무섭다는 친구들이 주류를 이루는 회사에서 내가 뭘 더 할 수 있겠는가.
팀장과의 갈등이 시작된 이후로 거의 한 달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었다. 죽어라 일한 것에 대한 결과가 이것인가 하는 허탈함과 분노, 배신감이 한꺼번에 몰려온 탓이다.
인사팀장이 다녀가고 어제저녁도 잠은 거의 못 잤다. 새벽 3시즈음 겨우 잠이 들었다.
퇴사가 확정된 오늘은 나름 '과거를 털어버리자'라는 의미로 광화문까지 나왔고 아직까지는 지치지 않고 이곳저곳 돌아보는 중이다.
이것도 결국은 어떠한 경험이었고 나도 배운 것이 많기에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팀장과의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시의적절하게 벌어졌다. 이대로 더 일을 계속했다가는 과로로 쓰러졌을 것이다.
치앙마이에 있을 때 공황발작을 겪고 술을 영원히(1년 반 정도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잘 지키는 중) 끊었다. 아마 이번 일을 통해서는 학대에 가까운 업무중독을 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일도 돌아가신 조상님들 중 한 분이 나를 걱정하여 내려준 선물 같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야야, 자꾸 왜 할미가 있는 곳으로 못 넘어와서 안달이여. 그만혀!"
(나는 조부모님 중 그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기에 약간 누군가 나를 아껴준다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치앙마이에서 겪은 공황발작, 우울증상부터 서울로 돌아와서의 정신과 치료, 업무 중독까지. 나의 인생의 한 챕터가 드디어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듯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문제가 뭔지 조금씩 보인다.
애정결핍, 인정욕구, 돈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
특히 돈에 대한 불안은 돈에 너무도 잔인한 태도를 보였던 아빠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리라. 아빠는 돈과 관련해 가족들을 멸시했고 나는 아빠에게 생활을 의지하던 유년시절 이에 대해 너무도 큰 수치심을 느끼며 자랐다.
나는 타인과 돈의 눈치를 보느라 너무 지쳤다.
그래서 제발 쉬라고 불안장애도 겪고 지나칠 정도로 잠도 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차피 죽을 만큼 고통스러우니, 이번에는 타인이 아니라 내 눈치를 보면서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해보려고 한다. 적어도 업무적으로는 다시는 나를 인형처럼 조종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전전긍긍하지는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