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반년 넘게 이어진 21회 차의 심리상담이 어제부로 종료되었다.
상담하시는 분들은 이걸 '종결'이라고 부르더라.
전 국민 마음투자 사업이라는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16회 차를 진행했고, 나머지 5회 차는 개인 비용을 내고 진행했다.
지금은 소위 말하는 백수 상태라 더 이상 개인 비용을 내고 상담을 진행하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워 이번으로 종료를 하게 되었다.
시간당 9만 원은 백수에게는 벅찬 금액.
정신과를 다니며 불안장애 치료를 받았지만 그것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받은 상담이었다. 정신과 선생님은 내 증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이에 따른 약처방을 내려주는 사람이지 상담적인 부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그에 반해 상담사 선생님은, 초반에는 너무 반응이 과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기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 상황을 온전히 이해시키는 것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는 느낌도 든다. 내가 여러 번 반복적으로 말한 것에 대해서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말씀을 하신 게 얼마 되지 않았다.
그녀는 상담을 종료하며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A 씨는 0 아니면 100인 것 같아요.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자신을 불살라서 100을 해버려요. 그 중간을 찾는 게 중요해요.
맞는 말이라고 느꼈다. 부모님과 몇 년 간 교류하지 않는 상황도 다른 사람이었으면 얼굴을 마주하고 충분히 대화로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상담사 선생님은 이것을 자책할 것이 아니라 부모님에게서 배우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부모님이 나에게 중간이 없게 대했다. 나는 어찌할 바 모르게 부모님을 닮아갔다.
나는 내 주위 모두에게 커다란 부담을 느낀다.
부모님의 불행도, 회사에서 성과가 나지 않는 것도 모두 내 탓으로 돌린다.
특히 엄마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부담감과 죄책감, 원망, 분노를 느낀다.
상담사 선생님은 계속 이런 말을 했다.
"부모님의 행복은 부모님이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엄마도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을 거예요."
어려서 불행한 표정을 짓는 엄마의 모든 감정이 내 것 같을 때가 있었다.
초등학생인 나는 집에 가다가 꽃을 사거나 반찬을 만들 생선을 사가고는 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임연수(생선) 한 마리를 500원에 사갔다.
엄마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의 불행은 내 탓 같았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 나 자신에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이 모든 괴로운 감정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상담을 조금 받았다고 곧바로 '짜잔~나는 이제 새로운 사람이야!'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감정이 오롯이 나의 탓이 아님을, 그것 하나만 기억하고 계속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내 인생 첫 번째 장기 심리상담은 우선 이렇게 끝을 맺었고 나의 인생의 한 챕터도 이렇게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치앙마이에 갔다고 내 삶이 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괴로웠다.
오롯이 나만 생각할 환경을 마주하니 죽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그나마 외국이라는 낯선 환경이 주는 자극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모든 것이 터져서 결국 정신과도 다니고 심리상담도 받게 된 것이다.
언젠가 한 번 즈음은 겪어야 했던 일이다.
그걸 이번에 겪었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 그럴 때가 되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부모님이 나를 돌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타인을 돌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다만 그래도 누군가 나를 아끼는 사람(조상님? 신? 산신령님???)이 있어서 나라는 사람이 터져서 죽어버리기 전에 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대응할 기회와 시간을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삶은 이대로 끝이 아니라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다고. 그러니 그전에 힘든 것을 다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23년 8월, 치앙마이에서 시작된 '나 자신 알기'는 25년 8월이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주욱 이어질 예정이지만 그래도 많은 성과를 냈다.
금주한 지 2년이 되었고 강요당했던,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연습도 가능하게 되었다.
여전히 두려운 것 투성이이지만 그 두려움의 이유가 무엇인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나의 치앙마이 일년살기는 치앙마이에서 돌아온 지 일 년이 지나고야 마무리를 맺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