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태국 치앙마이 일년살기를 하면서 시작한 금주가 오늘로 689일 차를 맞았다. 아직 2년은 채 되지 않았다.
애매한 숫자인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금주의 이유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어제저녁은 잠시(10분 정도) 술 생각이 났다.
한국에 돌아온 후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불안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때로 은근한 불안감이 신경을 건드리는데 어제저녁이 바로 그랬다.
창업 준비를 한다며 바쁘게 지내는 요즘, 쉴 때는 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주중 내내 팀원들과 바쁘게 기획회의를 하고 개발공부를 하면 주말에는 약간의 멘붕상태에 돌입한다.
할 일이 없을 때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치앙마이에서 살 때는 무에타이 체육관이 주 7일 연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주말에도 운동을 할 수 있어서 불안감이 올라오면 그냥 운동을 했다. 혹은 스쿠터를 타고 지도에서 아무 곳이나 찍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한국에서는 바쁘게 할 일이 있는 대신 주말에 대한 대비가 어려워서 치앙마이에서보다 불안을 견디는 난이도가 더 높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어제저녁의 나는 어떻게 했는가?
독한 위스키를 사다가 한 잔 마시면 불안이 사라지지 않을까?라고 깊게 고민하다가,
이것이 절대로 한 잔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신경안정제를 털어 넣고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그냥 잠을 자버렸다.
금주를 시작하고 어제가 제일 위기로운 순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잘 넘겼다.
그래서 내가 금주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나마 다시 힘주어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이 결정은 지금 내가 목숨처럼 소중하게 지키고 있는 원칙이며 이 원칙이 있어서 바닥에서부터 다시 올라올 수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
잘한 일이다.
앞으로도 이것이 나의 당연한 상태값이 될 것이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