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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모르는 여자가 엄마 노릇을 하는 것

#애프터 치앙마이

by 송송당

16 회차째 진행 중인 심리상담 이야기.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라는 정부사업의 지원을 받아 심리상담을 받는 중이다. 24년도 8회차, 25년도 8회차, 총 2년에 걸친 16회차의 지원이 끝나가는 중이라 이후에는 내가 직접 결제를 해서 상담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연간 8회를 받을 수 있다, 26년도에도 계속되는지는 모르겠다)


상담을 처음 받는 것은 아니지만, 한 상담사와 16회를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16번을 만나고야 상담사는 나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몇 년 전인가, 처음으로 심리상담이란 것을 접했을 때는 상담이 마술을 부릴 거라고 믿었다.


절절하게 끓어오르는 내 마음을 상담사님이 구원해 줄 것만 같았다.


이제야 상담사는 도와주는 역할을 해줄 뿐이고 구원은 나 스스로가 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 경우는 고통의 근원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했다.


나는 이것이 부정적인 일이라고 믿었다. 불행의 리플레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번 상담사님은 이것이 내가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부모님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그대로 성인이 되어 과거의 고통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불효'라고 낙인 찍힌 나. 이 울분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고 상담을 통해 울분을 충분히 해소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라고 느꼈다.


나는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빠에 대해 분노하고 난 후에야 적어도 아빠에 대해서 만큼은 내 자신과의 평화협정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빠에 대한 감정은 차고 넘치게 소화한 것이다. 이제는 아빠에 대한 부채의식은 희미해졌다. 아빠에게 비 오는 날 먼지 털듯 맞고 쓰러져 울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손 내밀어 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엄마에 대한 작업이 필요한데, 이번에는 술도 끊고, 병원도 다니고, 상담도 받고 있으니 아빠의 경우보다는 덜 힘들고 아프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약간의 낙관적인 전망도 해본다.


나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겪는 문제가 꼭 고부관계의 갈등 같다고 느낀다. 부지불식간에, 엄마는 내 삶으로 뛰어 들어와서 내 목에 목줄을 걸고,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끌고 다니려고 했다. (긴긴 이야기지만 이렇게 요약해 본다) 나는 이러한 엄마의 행동에 공포에 가까운 불안증상을 보인다.


이에 상담사님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어린 시절 엄마와의 감정적인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엄마의 행동이 '전혀 모르는 낯선 여자'가 엄마 노릇을 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이게 고부갈등에서 며느리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비슷하다고 한다.


슬프지만 맞는 말이라고 느꼈다.


엄마는 내가 아는 한 최고의 회피형의 사람으로 나의 성장과정에서 나와 전혀 그 어떤 정서적인 교류도 나누어 주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자신의 노년기를 앞두고 겪는 불안을 나에게 다 토해내니 나는 그것을 당해낼 여력이 없었다.


엄마는 나를 붙잡기 위해 달려왔고 나는 이런 엄마에게 도망치기 위해 달렸다.


지금 나는 아주 확실히 도망친 상태다. 도망쳐서 몸을 웅크리고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원래는 여행이라도 좀 가보려고 했는데, 그 돈을 아껴서 계속 상담을 진행해보려고 한다.


엄마와의 문제를 파고들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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