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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Aug 05. 2020

내가 연극을 했던 이유

- 신인 시나리오 작가 집필 일기, 다섯 번째 질문 -

스무 살, 학과 연극 소모임에 들어갔다. 연기도, 무대도 관심 없던 내가 그 연극 소모임에 들어간 것이 어쩌면 시작이었다. 그 이후부터 공연 쪽에서 일할 기회도 생겼고, 동시에 대학로 많은 극장을 다녀보는 것까지... 새로운 눈이 열렸다.

가장 최근에 본 연극 <라스트 세션>, 신구 배우님과 이석준 배우님

처음에는 글을 쓰기 시작했던, 그 피자 빵처럼, 단순했다. 내가 쓴 이야기를 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소모임장 오빠의 제안.      

“우리 소모임 창작 연극 소모임이야. 네가 대본 쓰면 공연으로 올릴 수도 있어.”     


그래서 연극 소모임에 들어갔고, 내 계획에 없던 연기를 할 기회도 생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연기를 못했다...     

이렇듯 연기에도, 연극에관심조차 없던 내가 학과 연극 소모임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단순히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들어갔던 곳, 소모임장까지 하며 열심히 참여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선택으로 자칭 세미 연뮤덕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공연들이 삶의 윤기가 된달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좋아합니다. 글을 쓰시는 분들께 추천하는 극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입니다. ㅎㅎ)




다시, 연극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연극을 통해 배운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또 최근에 본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

첫 번째,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 각각 적합한 이야기들이 다르다.     


물론,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4가지의 포맷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뮤지컬이 영화화되고, 영화가 뮤지컬이 되며, 영화가 드라마로, 또는 웹툰이 영화로, 연극이 뮤지컬로, 마구 변화무쌍하다. 그 예로 제일 유명한 영화가 <김종욱 찾기>다. 대학로 뮤지컬이 원조였고, 소극장 창작 뮤지컬이 영화화된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와 공연의 내용은 일부 다르다. 일단, 주인공의 직업부터 달라졌다. 주요 사건들을 그대로지만, 영화화라는 기점에서 장면 구성이나 조금씩 수정됐다. 영상 콘텐츠인지 공연 콘텐츠인지 따라 제한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연극 대본을 처음 써보며 느꼈다. 연극에서는 내가 씬 넘버를 바꾼다고 해서 장소가 뿅 하고 옮겨지지 않는다. 이는 무대 동선과 소품, 극장과의 대화가 필요한 지점이다. 그 대화에서 또 다른 걸 배웠지만, 아래에 더 자세하게 담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공연 콘텐츠의 경우 1열이 아닌 이상 표정이나 디테일한 행동들이 잘 보이지 않거나 놓치기 쉽다. 복선이 될 대사와 행동으로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영화라면 한 번 클로즈업하고 넘어갔을 부분을 조금씩은 더 설명해줘야 한다. 그렇지만 유치하지는 않게 말이다. 방금까지 울고 있던 배우가 갑자기 내레이터로 변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연극은 훨씬 실험적인 무대가 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방식을 디졸브가 아니라 소품 그 자체 또는 무대를 갈라 보여줄 수도 있고, 무대 앞은 현재, 무대 뒤는 과거, 이처럼 영상 편집보다도 더 실험적인 시도가 가능하다.     


이렇듯 연극을 하며 각 포맷에 어떤 이야기가 잘 어울릴까, 똑같은 이야기여도 무대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또 영상이라는 광활한 공간에서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떠한 포맷에 어울릴까, 그러한 고민이 생겼을 때, 바로 시도해볼 수 있었던 연극이라는 무대가 내게 꽤 소중한 이유다.     


지금은 연극을 하고 있지 않지만, 졸업 직전에 다시 연극 동아리에 신입부원으로 들어가 활동했던 것도 이 맥락이다. 영상 매체, 시나리오에 적합한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중이지만 현장감이라는 매력이 또 있으며 어쩌면 관객 사이에서 튀어나와 스토리로 몰입시킬 수 있는 장르이기에 졸업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기획팀으로 예산과 현장 관리, 총괄을 담당하며 창작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꽤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또 최근에 본 뮤지컬 <미아 파밀리아>

두 번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연극은 홀로 할 수 있는 장르는 분명 아니다. 모노드라마 형식에, 내가 연출하고, 내가 희곡을 쓰고, 내가 연기해도, 내가 무대에 있을 때, 조명을 켜줄 사람과 음향을 담당해줄 스태프들이 필요하다. 적어도 혼자서는 공연을 진행하기 어렵다.     


특히나, 공연의 경우 관객들이 완성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연극은 사람들과 하는 작업이다. 물론 모든 작업들이 그렇겠지만 연극에서 팀워크는 필수다. 어느 누구의 역할이 당연시되는 순간, 그 역할에 대한 무게를 다 짊어지는 순간, 조금씩 틈이 난다. 다 같이 있을 때 웃고 있어도 미세한 균열들이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MBTI 검사를 했을 때, INFJ 유형을 지닌, 외향성보다 내향성이 짙은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피로감을 느꼈던 것 같다. (심리학을 복수 전공한 전공자로서... MBTI는 신뢰성이 높은 지표는 아니다. ㅎㅎ 지구 상의 수많은 사람을 16개의 유형으로 가두기엔 세상이 너무 크다. 그렇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성격 지표니까 ㅎㅎ)


힘들었던 것, 사실이다. 서로의 개성으로 가득 차 수없이 들려오는 의견들은 나를 혼란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릴 때는 그 혼란이 너무 버거웠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생긴 모양인지, 방법을 찾은 것도 같지만 여전히 어렵다.


연습을 빠지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친구도 있고, 의견이 맞지 않아 대립하던 친구들도 있고, 일 하는 스타일이 전혀 맞지 않아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군상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또 함께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는 있어서 좋아했던 것 같다. 아니, 좋아했다. 연극이라는 포맷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갈등 상황에 놓여봤던 건, 어쩌면 지금 나에게는 득이었다.


어떻게 많은 사람과 협업해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배웠고, 갈등 상황에 덜 상처 받는 법도 배웠다. 사실 어떠한 갈등의 정답을 알고 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직까지도 'No'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곳, 그곳의 정답은 정말 딱 그 사람들 수만큼 있는 것 같다.

그 정답의 수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걸, 연극을 통해 배웠다.      


이 공연은 본 지 두달 정도 된 연극 <데스트랩>. 플라잉체어를 경험했던 공연이다.

세 번째,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     


연극은 제한성이 높은 포맷이다. 어떻게 보면 이곳이 바다야! 하면 바다가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여줄지,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영상이라면 바다를 찍으면 되니까. 무대를 어떠한 공간으로 설치할지에 대한 한계도 있을 수 있고, 배우들의 분장이나, 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제한 사항은 예산이었다. 학과 소모임에 회비를 모으지 않고, 최대한 과의 지원만 받아서 공연을 올리는 건, 정말 저예산으로만 이뤄지는 일이었고, 소모임장이자 총무이기도 했던 나는 아이들이 배고프게 연습하는 것에 속상했다. (모든 건 사실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현실적으로 구현해낼 수 없다는 사실에 타협을 배웠다.      


앞서 말했듯이, 연극 희곡을 쓸 때는 무대와 극장, 그리고 소품과 대화가 필수다. 그것으로 웃긴 이야기가 하나 생겼다. 스무 살 때, 내가 쓴 연극 내용의 주인공이 무속인이었고, 소품으로 무당 방울을 구해야 했는데, 3만 원이었다. 그건 너무 비싼 소품이었고, 그래서 나무젓가락에 문구류에서 산 방울과 실을 붙여 흔들면 방울 소리가 나는, 무당 방울을 흉내 낸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대학은 기독교 미션 스쿨이었는데, 리허설까지는 아무 문제없던 그 무당 방울을 흉내 낸 소품이 공연 시작하자마자 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대 바닥으로 떨어진 방울들의 소리... 선명하다. 그 공연 장소 벽에 붙어있던 성경 구절을 보며 묘한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신입 부원으로 다시 들어간 연극 동아리에서도 무당 방울을 살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사비로 3만 원을 질렀다. 4년이 지나 한을 푼 느낌이었달까...)     


이렇게 현실과 타협하여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건, 꽤 매력적인 일이다. 이러한 타협점을 찾아 진짜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코로나가 퍼지기 전엔 카페에서 작업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집에서 작업을 한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고민 중이다.

집필 계약을 하고 처음 상업 장편 영화 기획안을 쓰면서, 똑같은 인물을 가지고 계속 변형하고, 현실 속에서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많은 이유를 덧붙일 때, 참 힘들었다. 그래서 지쳤었던 것도 맞다. 그럼에도 다시 새롭게 쓰기로 결심했다. 계속 머리로 새로운 아이템을 굴리면서 제작비는 적게, 그렇지만 전할 수 있는 메시지는 강하게, 그리고 관객들에게도 재밌게, 고민하는 게 여전히 재밌다.     


그래서 오늘도 머릿속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낸다.


++

코로나 19로 인해 공연들이 많이 취소되기도 했고, 아직까지도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적기도 하다. 최근 공연장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코로나 19 이후,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 꾸준히 공연이 무대 위에 오를 수 있어, 세미 연뮤덕으로 행복하다.     


최근 어느 뮤지컬 배우분이 커튼콜에서 혹시나 공연을 올리지 못할까 걱정했다며 그래서 와주신 관객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취소되지 않고 공연을 올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또 어느 시사회에서도 배우분께서 이렇게 한 분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일상의 모습 속에서 감사 인사를 많이 받게 되었던 것 같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끝나고, 누구나 어떠한 두려움 없이 무대와 극장들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의 질문

Q. 현실과 타협하셨던 일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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