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opener Mar 06. 2024

나를 들여다보기#2

욱의 대물림

우리 집에는 아직도 철이 안 든 사람 하나가 살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 골칫덩어리였던 아빠다. 

술담배 빼고는 안 해본 게 없는 아빠다. 


엄마는 연락 안 되는 아빠를 찾으러 어린 나를 데리고 밤거리를 헤맸다. 

나는 그때 당시 멋모르고 따라 나갔지만 이제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안다. 


수도 없는 언어폭력, 나는 막내여서 다행히 많이 맞지는 않았는데 앞에 언니들이 많이 맞았고, 

나는 언니한테 맞았다. 폭력의 대물림이었다.

Unsplash의Noah Buscher


그런 아빠의 타고난 더러운 성질머리, 그걸 내가 그대로 닮아버렸다. 

마음대로 안되면 내던지고, 화내고, 제멋대로인 인간을 그렇게 증오하고 미워하던 내가 그 성격을 닮아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기를 낳는 것이 두렵다. 자식에게 이 악을 대물려 줄까 봐.


한 번의 유산 후 임신에 대한 공포는 너무 크다. 남편은 내 임신사실을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완전 신혼이었기에 좀 더 신혼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때 나는 남편에게 화를 많이 냈었기 때문이다. 

착하지만 때론 답답한 남편의 행동이 나를 분노하게 했다. 


임신하고 입덧이 심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별생각 없이 말하던 남편에게 나는 고함을 질러댔다. 

그리고 며칠 후 아이가 유산됐다.


나는 내 탓이란 생각과 남편에 대한 원망이 동시에 들었다. 

엄청나게 원했던 아이는 아니었지만 태동까지 들었던 나는, 

너무나 내가 엄마로서 자질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 삶은 늘 외로웠고, 제대로 사랑받을 줄도 줄 줄도 몰랐다. 

그런데 내 아이까지 그런 삶을 물려받게 하고 싶지 않다.


Unsplash의Milan Popovic


이제 생각해 보면 욱하는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 적이 없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방법을 몰랐다. 

그러다가 오은영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내가 욱의 시발점이고, 욱하게 하는 요인(사람)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나를 자책하란 소리가 아니라, 왜 내가 이렇게 욱하는지 나를 멀리 서서 관찰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욱의 시발점
Unsplash의charlesdeluvio


상황이 어떻든 간에 욱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욱하는 나를 외면해서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나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욱하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안 난다.

그럴 때는 일단 자리를 빨리 피하는 게 상책이고, 말을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내 감정에 대해 나에게 묻는 방법을 택한다.



최근 남편하고 주말에 부산 여행을 갔다.

공휴일이 끼어있어서 식당 웨이팅이 너무 길었다.

부산에 유명한 식당들은 대부분 웨이팅을 앱으로 할 수 있다.

남편이 우리가 가려는 식당이 앱으로 웨이팅을 할 수 없다고 했다.(내가 이때, 다시 찾아봤어야 했었음..)

그런데 식당에 갔더니 앱으로 웨이팅이 가능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대기가 앞에 15팀이나 있었다.

Unsplash의Hitesh Dewasi


나는 순간 너무나 화가 났다. 

분명 앱으로 웨이팅이 가능한데, 남편이 잘못 알아서 또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함이 너무 짜증이 났다. 

거기다가 더해 남편은 진짜 앱에서 식당이름이 검색이 안된다고 자꾸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남편은 A앱으로만 검색했고, 그 식당은 B앱에서 검색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잘 생각해 보면 사실 화낼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순간 치솟는 짜증에 남편에게 화를 낼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걸었다. 남편이 쫓아오면서 어디 가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계속 걸었다. 그리고 속으로 지금 이 상황에 대해 화나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사실 좀 전에 택시를 타고 오는데 아저씨가 우리의 도착지로 가는 길을 몰라서 그냥 해운대역에 내려달라고 한 상황이었다. 나는 내비게이션으로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아저씨에게 이 내비를 보여주라고 했는데, 둘 다 쫄보들이라 그런가, 남편도 그냥 가보자고 했고, 결국 해운대역에 내린 상태였다.


이때, 이미 나는 남편이 가까이 내릴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 기회를 버린 것 같아 화가 난 상태였다.

게다가 식당까지 미리 예약이 가능했는데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너무 속생했다. 또 날씨까지 너무 추워서 기다리는 게 너무 싫었다.


나는 늘 최선, 최고의 선택을 해야만 속이 시원한 사람 같다.

잘못된 선택이나 실패가 있으면 그걸 용납하기가 어렵다.

성격이 급해서 답답하거나 느린 것을 못 참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 남편은 좀 느린 편이고 여유가 많은 사람이다.

어찌 보면 정반대여서 맞는 것 같다. 둘 다 급하면 싸울 일이 너무 많다.


Unsplash의Kimberly Farmer


어쨌든 남편과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아무 말 없이 창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덩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뭐가 그리 중하냐. 좀 기다리면 되지. 


그리고서 시간이 좀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기다리던 식당에 들어가 남편과 맛있게 식사를 했다. 

날씨도 추웠고, 기다림도 길었지만, 그래도 남편과 맛있게 식사를 하고 뿌듯하게 나왔다. 

둘 다 단순한 사람들이라. 좀 전에 있던 일들을 다 잊어버리곤 한다.


좀 실수하고, 잘 몰라도 된다.

실패하고, 잘못된 선택을 해도 괜찮다.

괜찮다.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실수와 급한 성격을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실수해도 괜찮아. 급하게 생각 안 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너 그대로 괜찮아.
못난 부분들이 있어도 괜찮아. 



내가 나의 실수를 받아들여 줄 수 있다면

누군가의 실수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좀 못나면 어때, 좀 부족하면 어때, 이게 나인걸,

완벽해질 필요 없어,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로 충분해.


비교가 만연하는 세상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나를 지키자. 나의 모난 점들도 내가 사랑해 주자.

내가 나를 이해해 줄 때,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나는 내 인생의 모든 관계의 시발점이다.

작가의 이전글 20분 이른 아침 기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