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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 Apr 21. 2020

마라탕과 불륜을 못 견디는 사람이 되었다.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블의 막장 드라마는 나를 제외한 주변인들은 다들 보는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보았냐고 흥분하며 어쩜 그럴 수가 있는지에 대해 최소 5분은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소재에 잔잔한 색감으로 감성을 더했다. 동공이 커지는 인물들의 심리묘사는 나까지 그 상황에 있는 것 같은 이입을 제공한다. 심지어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 엄마조차 영화를 보는 것 같다며 혀를 끌끌 차며 애청자가 되었다.


엄마 옆에 앉아서 같이 보려고 했다. 지난 주말에. 가족들이 같 있는 김에 마라탕을 배달시켰다. 매운 단계는 3단계에 고수와 연근 그리고 소고기 추가. 좋아하던 조합이었다.  상에 펴놓고 시청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시킨 마라탕 3단계는 속이 아플 지경이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충격과 혼돈이 섞인 장면들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누가 누굴 배신하고 뒤통수를 맞고. 누구는 울며 누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못 견디고 방으로 들어갔다. 너무 매웠다.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시트콤을 틀었다. 보면서 속으로 되짚었다.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도 남의 이야기인 양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볼 수 있었을까.



시간이 많이 해결해주긴 했다. 사건 직후처럼 엉엉 울지도 않고 내 삶에 집중할 수도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의 영향이 컸다. 내 사람들에게 좀 더 의지할 수 있고 잘 표현하게 되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연애를 하면서 쿵쿵거리는 설렘도 다시 찾아왔다. 업무를 하는데도 성과를 보이면서 보다 재밌게 다니고 있다. 엉망진창이었던 내 궤도가 정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안정적이고 다행이었다.


한편으론 트라우마를 극복해낼 수 있다고 믿는 편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힘든 지난날은 디뎌낼 새로운 길들로 덮어지게끔 말이다. 실제로 극복한 적도 있었다. 더이상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비판받는 것에 무서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역경이나 힘든 일이 닥치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인지. 난 아직도 주변인들의 치정사 얘기를 들으면 표정 관리가 안된다. 지난 일들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고 대화는 귓가에 왕왕되는 소리로 변한다. "몰랐던 사람도 이상하네"라는 말이라도 누군가 뱉으면 칼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예전 같으면 가볍게 흘리고 지나갔을 얘기는 하루 종일 빙빙 맴돌았다. 그 당사자들과 나는 함께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드라마끝까지 다 보지 못했던 것은. 영상의 어둡고 채도 낮은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마라탕은 내가 좋아하는 매운 음식 중 3번째 안에 드는 음식이었다. 친구들과 매운 마라탕으로 유명한 곳을 돌아다니며 평가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 먹은 마라탕은 아픈 맛이었다. 매운 나머지 끝까지 다 먹지도 못했다. 3단계를 먹고 난 다음날엔 위장약을 처음 사봤다. 아주 데어도 단단히 데었다. 3단계는 이제 나에게 자극적인 음식이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하얀 마라탕을 먹어보아야겠다. 조금 더 순하고 진한 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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