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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덴부와 셜리 Dec 04. 2023

내가 다녔던 직장에서 그렇게 웃었던 적이 있었나

권투장, 형광등 교체만으로도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중간 생략)
청춘과 유혹의 뒷 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르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한대수 / 70년대 한국포크록의 대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나라는 무얼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행복의 나라는 어떤 곳일까요? 막상 말로 하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유토피아일 수 있고, 그저 경제적 자유만 누리면 될까 하기도 하고,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나의 행복은…


그저 빚만 없어도 될 것 같고, 영끌해서 집 산사람 이자 부담만 없으면 좋을 것 같고.

집 없어서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애는 공부만 좀 잘했으면,

공부는 못해도 되니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고

누가 옆에서 그냥 있어주면 좋겠고

뭐 그런 작은 게 행복으로 이끄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권투장으로

쫄래쫄래 권투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 가나 나이가 많은 편인데,,, 나도 잘할 수 있을까? 했다.

그럴 때마다 관장님은


저희 연습장에는 70대 할아버지도 계시고, 60대 병원 원장님도 오십니다. 50은 젊어요


그런데 한 번도 못 봤다. 상술에 속은 것인가?

그러면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리바이스 501, 긴머리를 한 사람의 정체


내 앞에는 흰머리가 많은 장발의 남정네가 걸어가고 있었다.

역시나 청바지는 501이지. 501은 광부의 옷이고, 오리지널의 역사, 노동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리바이스 501을 입은 사나이는, 긴 뒷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다음,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앗… 나랑 같은 곳으로 가는구나.


나는 권투장에서 그에게 가볍게 목례만 했다. 그 할아버지인가?

나는 옷을 갈아입고, 스트레칭을 한 후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줄넘기는 권투 라운드로 따지면 3라운드 이상의 시간으로 뛰기 시작한다.


할아버지의 엉꼴


나는 줄넘기를 하면서 할아버지 쪽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권투화로 갈아 신으려고 신발을 벗으려고 허리를 숙이고 계셨다.

501이 아닌가? (501 골반 피트가 있다곤 했다)

할아버지는 골반에 걸친 리바이스 청바지여서, 고개를 숙이니 엉꼴(엉덩이 골)이 보였다.


예전에 골반 스키니 진이 유행했을 때,  보였던 엉꼴,

주성치 영화에나 나오는 어리버리한 캐릭터들의 엉꼴 모습을….

 70대 할아버지의 엉꼴을 봐버렸다.

으윽…


그런데 할아버지는 피부가 아주 좋았다. 어린이처럼.


얼굴은 한대수와 똑같았다. 한대수인가? 나이도 비슷할 것이고…

한국 포크록의 전설이었고, 노래도 금지당해서 미국에 갔었던 파란만장한 청춘,,,


할아버지는 무릎 때문인지 줄넘기는 넘어가고, 바로 샌드백 치셨다.

헉..

팡 팡!! 파워가 오올.


그런데 먼저 오신 분도 혼자 구석에서 쉐도우 복싱을 하고 계셨다.

쉐도우 복싱하시는 분은 오… 종아리가 딴딴하고, 원투 카운트가 빠르셨다.

관장님이 말씀하셨던 60대 병원 원장님이신가?


70대  60대 50대가 아무 말 없이 권투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젊은 친구가 형광등을 들고 왔다.


어두침침한 체육관에 “드디어” 형광등을 교체하기 위함이다.

낡은 형광등을 빼고,

감전 위험이 있어서 전기를 껐다가 형광등을 끼기 시작했다.

전기를 끌 때는 너무 어두워 쉐도우 복싱 연습하기도 애매했다.


모두가 형광등 밑으로 모였다.


형광등을 여러 개 교체하면서, 교체할 때마다 모두 박수를 쳤다.

특히, 할아버지는 크게 웃으며 좋아했다.


이게 뭐지?


모두 다 신나 했다.


뭐지?


그냥 형광등만 교체한 것인데…


모두 웃고, 어린아이처럼 신나 했다.



형광등 하나만으로도 웃는 체육관


우리가 일상에서 박장대소한 적이 있는가?

사회생활할 때 중요한 것은 포커페이스,

패를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을 뿐,

사람을 대할 땐 친절하게

억지로 미소를 배우면 자연스럽게 웃는다고 배웠지만

정말 크게 웃어본 적은 없다.


나이 들면 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70대 할아버지는 제일 좋아하고 박수까지 치며 웃는다.

모두가 형광등처럼 환하게 웃는다.


밝은 조명, 큰 빌딩에서 일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이것은 그냥 공무직 직원들한테 지시하면 끝나는 일이었었는데.


체육관처럼

이렇게 웃음은 소중하다.

그냥 낡은 체육관에 밝은 빛 하나가 사람을 기쁘게 만든다.


풍요로운 빛, 진수성찬, 가식적인 칭찬 속에서 살다가 여기 지하에 내려와서 웃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링에서 스파링 할 때도 웃으며 원투 카운트를 날린다.


밝은 빛에서 다시 연습한다.

원투 원투 카운트 펀치.


힘 빼고 원투원투… 때리려면 맞습니다. 오히려

힘 빼고 잽 날리고 원투원투

다시 자세 바로 하고 카운트 펀치.


상대방을 가격한다 생각하고


카운트!!!


https://brunch.co.kr/@peter1217/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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