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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s Jang Oct 11. 2020

미니멀리스트 VS 맥시멀 리스트  

취향이라는 것도 유행을 탄다. 꽤 오랫동안 추구하는 일정한 삶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매년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미디어와 주변 환경의 변화로 나 홀로 우두커니 올곧게 무엇인가를 지킨다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중에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관심 있는 것은 미니멀리스트의 삶이었다. 사계절을 30벌의 옷으로 난다든지, 에코백안에 닮을 수 있는 짐으로 한 달을 산다든지와 같은 수많은 사례들과 그걸 또 감탄하면서 당장 옷장을 몇 번씩 뒤지며 버리려고 애쓰는 나의 모습은 이런 삶을 동경하는 것이 분명했다.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살고 있다. 어느 휴양지에서 입을지도 모를 기약 없는 여행을 위해 아껴두었던 택을 고스란히 간직한 옷들이 몇 벌이며, 광고에 혹해서 당장 필요할 것 같은 압박감에 구매한 쓰지 않는 운동기구들과 그 외에도 셀 수 없는 잡다한 용품들은 집안 어딘가의 구석에서 영영 그렇게 빛을 잃고 익어가겠지. 그러다가 몇십 년 후에 이사할 때나 다시 이런 게 있었구나 하고 찾을 수 있을까? 


물건을 쉽게 정리할 수 없는 건 거기에 묻어있는 사연 혹은 이유 없는 애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울마다 꺼내 입던 20년 된 색이 누렇게 바랜 흰색 조끼, 심지어 밖으로 입고 다니기도 민망한 그 조끼는 겨우내 따뜻하게 해 주던 옷이자 베개이자, 인형이었다. 그 조끼를 보며 가슴이 마구 셀레인 건 아니었는데 날씨가 쌀쌀해지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아이템이었다. 조끼를 버리는 날 엄마는 속이 다 시원하다며 그 정도 입었으면 오래 입었다고 미련을 갖지 말라고 위로까지 해줬는데 지금도 생각나는 걸 보면 아직 깔끔하게 잊은 건 아닌 듯하다.  


억지로 무엇인가를 버려야 하는 건 아직 힘든 단계이다. 개수에 집착해서 몇 개 이하로만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몇 개 이상은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강박은 오히려 지금의 마음가짐에서는 버린 만큼 비워진 공허함을 더 채워야 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한다. 돈도 마찬가지로 이번 달에 너무 적게 썼으면 뭔가를 사야 할 것 같고 나 자신에게 더 칭찬하는 마음으로 선물해야 할 것 같고 그런 기분이 드니깐. 요요처럼 어느 순간 물욕이라는 것이 폭발하여 눈 앞에 보이는 거 없이 물건을 사대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르겠다. 예쁜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걸 보면 모두 사고 싶어 지는 충동이 발동하는데 어떡하지? 



미니멀리스트냐 맥시멀리스트냐 그것이 문제로다

  


마음이란 게 참 왔다 갔다 너무 쉽게 변한다. 어쩔 때는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게 멋져 보이고, 또 어쩔 때는 형형 색깔별로 가지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채우면서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24시간 노력하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끊임없이 허우적 대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매번 지고야 만다. 아니 꼭 필요한 걸 샀으니깐, 세일할 때 샀으니깐 이긴 거라고 우겨본다. 


그래서 미니멀리스트나 맥시멀 리스트냐의 기로에서 고민을 덜 하기 위해 일단 물건을 보이도록 정리한다. 이렇게 정리해 놓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가물해지는 기억력으로 인해 비슷한 제품을 또 사는 어처구니없는 만행을 피할 수 있다. 또한 구석에 있는 물건들, 1년 동안 햇빛 한번 받을 수 없었던 물건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 눈에 보이게 정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정량의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은 자연스레 비워진다. 짐이 너무 많다고 여겨질 때마다 한 번씩 비워주는 일은 가끔 희열을 느끼게 한다. 물건의 입장에서도 알맞은 쓰임에 임무를 다할 때 기쁠지 않을까?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은 너무 힘든 과정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의 연속이며 어떤 물건들은 마음이 아플 만큼 버리기 힘들다. 그럴 때에는 억지로 버리지 않고 그냥 남겨 둔다. 삶은 제각각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는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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