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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Oct 27. 2024

나쁜 남편과 착한 정부는 왜 그 여자를 속였나

<부다페스트 스토리>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헝가리 영화다. 장르상 로맨틱 스릴러로 봐야 할 텐데 극중 인물의 발화를 매개로 한 사건의 구성과 전개 방식이 장르 특성 외의 재미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독특한 영화이다.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달콤한 거짓말로 가짜 희망을 선물하는 천재적인 사기꾼 ‘한코’가 숲속에 아들과 함께 남겨진 여인 ‘유디트’를 우연히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돌아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배경은 2차세계대전에 패전하여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 헝가리로, 헝가리 영화계를 대표하는 아틸라 사스 감독의 2019년 작이다. 원제는 ‘Apró Mesék’(헝가리어)으로 영어로는 ‘Tall Tales’이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 황당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사랑의 영웅 서사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긴장과 자극을 과격하게 안출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수준 이상의 긴장과 자극을 꾸준히 유지하며 진행한 스릴러이다. 물론 극영화인 만큼 당연히 클라이맥스가 있다. 긴장과 자극을 안배하고 재미를 영화 전편(全篇)에 적절하게 배치하였기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다. 마블링이 고루 좋은 데다 적당한 크기의 떡심을 끼워 넣은 두툼한 스테이크 같은 느낌을 의도했다고 말해도 되겠다. 뒤에 살펴볼 ‘떡심’이 흥미로운데, 지성의 치아가 약하면 ‘떡심’을 소화하기 힘들다는 것이 영화의 문제점이다. 그러므로 그저 로맨틱 스릴러로 보고 싶은 사람은 그냥 그렇게 보아도 된다. 


스릴러의 축은 ‘한코’(사보 킴멜 타마스)와 ‘빈체’(몰나르 레벤테)이다. ‘유디트’(비카 케레케스)와 빈체는 부부 사이. 전쟁의 와중에 남편 빈체가 집을 떠나 실종 상태이다. 아내 유디트는 폭력적이고 야비한 인물인 빈체의 실종을 죽음으로 받아들인다. 정확하게는 그러하기를 희망한다. 갑자기 출현하여 사랑하는 사이가 된 한코는 유디트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유디트에게 평온하고 행복한 삶이 허용되지 않는다. 죽은 줄 알았던 빈체가 돌아와 다시 남편 행세를 하기 시작하자 한코는 졸지에 정부의 신세로 전락한다.  


하찮은 거짓말을 호구지책으로 삼는 보잘것없는 인물 한코 앞에 빈체가 압도적 위협으로 느닷없이 등장하며 이제 스릴러가 본격화한다. 여기서 한코와 빈체 사이 대립의 원인을 제공한 유디트는 원인 제공자이기는 하지만 보조적 역할에 머물고 스릴러를 끌어갈 전반적 책임이 한코에게 주어진다. 


갑작스럽고 감당하기 힘든 위협이 주인공에게 주어졌을 때 일반적으로 최초의 반응이라 할 회피를 거쳐 이후 위협에 맞서 위험을 감수하며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정이 흔히 스릴러에 담긴다고 한다면 한코는 전형적으로 이 임무를 수행한다. 현실에서 보통 사람에게 갑작스럽고 감당하기 힘든 위협이 주어졌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예상되지만, 회피로 끝날 확률이 훨씬 더 높을 것 같기는 하다. 회피하지 않는 용감한 선택을 내렸다 하여, 용감함이 성공을 보증하지 않는다. 사안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위협에 맞서 위험을 감수하며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성공할 확률이 낮을수록 회피할 확률이 높아진다. 다만 비즈니스나 세사와 달리 사랑에서는 성공이든 회피든 무엇이든, 확률이란 개념이 무시될 확률이 종종 매우 높아진다고 단서를 달아야 한다.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스릴러이면서 로맨스이다. 스릴러에서 보조적 역할에 머문 유디트가 로맨스에서 주역으로 떠오른다. 유디트는 로맨스의 두 주역 가운데 하나이며 로맨스의 전반적인 기획가이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시쳇말로 운명 때문이겠지만 그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적극 수용하여 상대(한코)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이는 유디트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유디트는 로맨스에서 완전한 독립변수가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분명히 확인하고 선택도 확고하지만 거의 한코에 전적으로 기대어 활로를 열어가는 종속변수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장면을 비유로써 사용하여, 영화 초반에서 한코가 유디트ㆍ빈체 집의 덫을 발견하지만 거기에 걸리지 않은 반면 유디트는 영화 막판에 비록 급박한 상황이긴 하였지만 자기 집의 덫에 걸려 위기에 처한다. 


삶의 큰 덫에 걸린 유디트를 한코가 구해준다. 이 대목에서 로맨스와 스릴러는 유기적으로 결합하여야 한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이지만 로맨스와 스릴러가 겉돌면 당연히 영화가 좌초할 수밖에 없다. 하나 마나 한 현실의 이야기로 로맨스와 삶이 겉돌아도 두 당사자가 좌초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로버트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기억하면 된다.


주요 세 인물 중에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은 한코이었고 그러한 영화적 설계를 통하여 추가적인 영화의 지평이 확보된다. 스릴러에 그치지 않고 사랑의 텍스트가 된다.     


세계와 담화     


한코는 영화가 시작할 때 보잘것없는 인물이었지만 영화가 끝날 땐 영웅적인 인물이 된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어그러진 삶을 바로잡아 주는데,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그 일을 해낸다. 앞 문장에 주어를 넣으면 바로 영웅이다. 물론 영웅이 다양한 술어를 호출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한코가 영웅의 술어에 해당함은 자명해 보인다.


한코가 호구지책으로 택한 거짓말은 모두 ‘영웅’을 소재로 하였다. 목숨을 걸고 기꺼이 아이를 구한, 타인에게 행한 자신의 거짓말이 나중에는 자신이 주체가 된 진실로 바뀐다. 영화는 부다페스트의 행적과 탈(脫)부다페스트의 행적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며 각각이 전자(거짓말)와 후자(진실)에 해당한다. 부다페스트의 스토리는 탈(脫)부다페스트 스토리를 위한 전주(前奏)였던 셈이다. 그리하여 로맨틱 스릴러에서 영웅 서사가 탄생한다. 어찌 보면 대놓고 영웅 서사의 포즈를 취했지만 영화의 흐름에 휩쓸려 가다 보면 이 서사는 느낌으로만 포착된다. 그러나 그 느낌은 파노라마처럼 확연하다.


이 영화는 담화와 세계 사이의 동학을 그려낸다. 한코가 꾸며낸 하찮은 이야기들(Tall Tales)은 누군가의 세계로 진지하게 구축된다. 부재는 스스로 발화하지 못하지만 발화된 부재는 ‘발화된 부재’라는 그 담화로부터 세계의 구성력을 획득하여 지경을 넓혀간다. 창세기의 신이 세계를 만든 방식과 동일하다. 발화의 서사와 서사의 발화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다가 두 가지가 엉기지만 엉김의 해소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영웅 서사뿐 아니라 삶의 비의 한 조각을 관객에게 내민다고 하겠다. 


이것이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떡심’이다. ‘떡심’을 조금 친절하게 설명하면, 허상과 실상이 뒤섞여 이해하기 힘든 전경 중경 후경을 만들어내는 삶에서 마침내 인간이 무엇인가를 ‘본경(本景)’으로 삼기를 결정함으로써 그것이 그 인간의 세계로 확정된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보다는 확정을 ‘떡심’이라고 보는 게 더 그럴듯한 비유이지 싶다. 


개인적으로 헝가리영화 <부다페스트 스토리>에서 프랑스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을 떠올렸다. 주요 등장인물이 아내, (진짜)남편, (가짜)남편으로 동일하다. 적대의 구조가 동일하지만 두 영화에서 승자는 달라진다. 또한 둘 중 한 영화, 즉 <마틴 기어의 귀향>은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거짓을 대하는 세 사람의 입장 차이가 두 영화에 어떻게 나타났는가이다. <마틴 기어의 귀향>에서 아내와 (가짜)남편이 거짓을 공유하지만 <부다페스트 스토리>에서는 (진짜)남편과 (가짜)남편이 물론 잠정적이지만 거짓을 공유한다. 두 영화의 이러한 차이는 세계를 대면한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헤쳐나가는 방식에 관해 화두를 던진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화두가 사랑에 관한 것 말고 다른 것일 수 있을까. 사랑은 인생의 본경이다. 또한 세계의 떡심이고, 영웅 서사이며, 거짓말이자 참말로 삶의 담화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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