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눈치게임 '쿠키요미(空気読み)'에 등장하는 장면들을 소개합니다. 이전 글 <천만명이 체험한 일본 '눈치게임'>을 읽고 오시면 훨씬 이해하기 쉬우실 거예요.
1. 앉을까, 말까
전철 안 상황입니다. 자리가 나서 앉으려는데 옆으로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다가오죠. 눈치껏 할머니가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양보하는 쪽을 택할 확률이 높습니다. 노약자나 장애인, 임산부가 앉을 수 있는 우선석(優先席)이 존재하지만 교통약자가 앉지 않는 이상 텅 빈 채로 가는 우리나라 전철과는 달리 젊은 사람들도 꽤 앉는 편인데요. 대신 언제든 배려할 준비는 되어있는 상태죠. 언제든 앉을 수 있게 공간을 비워두자는 우리나라 전철 문화와는 조금 다른 식으로 운영됩니다.
자리 양보를 안 한다고 해서 눈치가 없는 걸까요? 빈자리 덥석 차지하고 앉는다고 해서 공기를 못 읽는 걸까요? 절대적인 정답은 없을 겁니다. 다만 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을 때 당황한 할머니가 아이고 허리야, 하고 괜히 주변을 쓰윽 둘러본다던가, 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이가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 있겠죠. 그때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렇다면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란 뜻입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요구되는 '눈치'와 '공기'엔 '공공장소 내 노약자에 대한 배려'가 포함되어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설사 처음 보는 할머니일지언정, 다시 안 볼 사이일지언정, 피치 못할 사정이 없다면 대부분은 양보하는 쪽을 택할 테니까요.
공공장소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둔 행동양식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그 나라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주기도 하지요. 일본에 다녀온 친구들이 많이 물어보던 질문 가운데 하나가 있어요.
"일본 사람들은 왜 자꾸 스미마셍이라고해? 내가 부딪힌 건데도 자기가 스미마셍이래."
웃음이 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일본에선 스미마셍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더라고요.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은 세 가지 의미를 포함합니다. 사죄, 감사, 의뢰. 때에 따라선 그 세 가지 마음이 고루 섞여있기도 합니다. 우리에겐 '미안하다'는 뜻의 스미마셍이 가장 익숙하지만요. 식당에서 직원을 부를 때 '저기요, 여기요, 사장님, 이모, 주문할게요, 언니, 행님...' 온갖 호칭이 등장하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선 대부분의 경우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감사의 의미로도 자주 쓰이는데요. 고깃집에서 내가 마늘을 너무 잘 먹으니까 직원이 서비스라며 한 움큼 접시에 담아 내와요. "아, 스미마셍,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는 말이 절로 입에서 나옵니다. 신경 써주어서 고맙다, 들고 와주어서 고맙다, 는 뜻이지요.
2. 내가 잘못했는데 왜 네가 미안해?
전철이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기 전에 빨간색 '나'는 어디에 설지 선택하는 퀴즈입니다. 앞사람 뒤에 일렬로 서서 기다렸는데, 100점짜리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 서 있을 수 있게 플랫폼에 점선이 그어져 있죠. 딱 맞춰 정차해야 할 전철이 점선보다 조금 더 나아간 곳에 서버렸습니다. 위치가 살짝 어긋난 거죠. 때문에 빨간색 '나'는 제대로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졸지에 내리는 사람들과 부딪히게 됩니다. 잘못하진 않았지만 '스미마셍'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입니다. '선 하차, 후 승차'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지요. 사람들이 내리는 방향을 재빨리 캐치하고 비켜서지 못했기 때문에 부딪힌 것이니 조금 더 배려하는 건 빨간색 '나'의 몫인 거죠. 아마도 일본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의아하게 여겼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됩니다. 내린 사람 입장에선 내가 내리다가 부딪힌 건데, 서있던 상대방이 '스미마셍' 하니까 뭐지? 싶은 거죠.
우리나라에서 저런 상황이 벌어지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 것 같습니다. 혹은 나는 잘 기다렸는데 내리는 사람이 제대로 안 본 것이다, 라며 억울해할 것 같기도 한데요. 일본에서 같은 상황이면 생각 회로가 조금 다르게 흘러갑니다. 최대한 타인과 몸이 닿지 않는 위치에 서 있게 되거든요. 그 나라 문화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행동양식도 살짝 바뀝니다. 이 장면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퀴즈의 100점짜리 정답은 앞사람의 옆쪽에 서던가 아예 오른쪽으로 비켜서서 부딪히지 않게 하는 것이니까요.
3. 머리가 커서 미안, 움직여서 미안, 그냥 다 미안
관람석에 첫 줄에 '머리가 큰 나'의 모습이 보이네요. 나의 헤어스타일이 뒷사람의 시야를 가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까지 시선이 미친다는 건 그만큼 주변 공간에 대한 배려가 있다는 것이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겐 상식이고 누군가에겐 배려이고, 또 누군가에겐 무신경한 부분일 수도 있지요. 적어도 이 게임에서의 정답은 '머리가 큰 나'를 왼쪽 빈자리로 옮겨주는 행동입니다.
만약 제가 일본에서 빨간색 '나'의 입장이라면 여기서도 어김없이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배려를 건넨 건 나니까 뒷사람으로부터 '감사합니다'를 들어야 마땅한 상황인데요. 되레 배려해주고 있는 내가 '스미마셍'하고 움직입니다. 물론 비켜준 걸 알면 상대방도 감사인사를 건네 오겠지요.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하는지는 나의 자유이지만, 찰나라 할지라도 당신의 시야를 가려서 미안했고, 자리를 비켜주느라 앞을 지나갔으니 주변 다른 이들에게 생기는 미안한 마음. 이런 마인드는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시각 차이와도 연관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선 다음 장에서 이야기해볼게요.
4. 영화가 끝날 무렵의 '공기'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나오고 있습니다. 빨간색은 자리에 앉아있죠. 여기서 일어나 나아갈지 그대로 앉아있어야 할지 선택은 자유입니다. 우리나라는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 대부분의 극장이 조명을 켜줍니다. 언젠가 친구와 스릴러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를 보러 갔는데요. 쿠키영상이 있다고 하길래 (알고 보니 지인의 농간이었습니다만) 엔딩 크레딧 다 올라갈 때까지 앉아있었거든요. 조명이 켜지자마자 관객석 5할이 나갔고, 엔딩 크레딧 중반쯤에 3할이 사라졌습니다. 저희가 꿋꿋하게 앉아있으니 덩달아 자리를 지키던 사람은 딱 두 명이었지요. 사실 저희도 눈치가 보였습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생이 '쟤들은 왜 아직도 있을까'라는 표정으로 저희를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양손에 빗자루를 들고 있었으니 저희가 빨리 나가주어야 청소를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었겠죠.
그렇다면 일본 영화관에서는 엔딩 크레딧이 나갈 때까지 앉아있어야 하느냐? 정답은 없습니다. 조심스레 추측해볼 순 있겠죠. 조명이 켜지지 않는 이상, 옆사람들이 자리를 일어서지 않는 이상, 굳이 내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영화관에서 요구되는 공기'인 셈입니다. '쿠키요미(空気読み)'를 같이 풀어나가는 한 유튜버는 이 장면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 가끔 있죠, 이런 사람들.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개인의 선택을 넘어선 영화관에서의 매너로 치부되는 모양입니다.
5. '스미마셍'의 다채로운 의미
핫플레이스로 소문난 펜케이크 집 앞에서 리포터가 생중계 중인 모습입니다. 얼떨결에 카메라에 잡히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짐작하시겠지만 여기서 '공기를 잘 읽는 행동'은 화면 밖으로 나가 주는 겁니다. 잘못한 건 하나도 없지만 이 상황에서 역시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건넬 듯합니다. 하필 거기 서 있어서 미안하다는 거죠. 멋대로 등장한 건 카메라지만, 일단 나의 존재가 당신들이 일하는 공간에 등장해버렸으니 '미안하다'는 마음을 담는 겁니다.
공공장소에서의 '스미마셍'은 이처럼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와 마주치고 부대끼는 과정에서 추임새처럼 등장하는 말이지요. 꼭 내가 미안하거나 고마워할 상황이 아니라도 '공간의 흐름'을 방해했다면 충분히 주고받을 수 있는 말입니다. '공간의 흐름'이란? 전철에서 내리는 사람이 우선인 흐름, 두 번째 줄에 앉아도 시야를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흐름, 돈을 내고 보는 영화에 엔딩 크레딧 마지막 글자가 올라갈 때까지 조용히 관람할 수 있는 흐름, 공공장소에서 방송을 중계하는 흐름. 어쩌면 나 하나 개인보다 '공간의 흐름'에 부여하는 의미가 더 큰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