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이란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Ludovico Einaudi - Nuvole Bianche
근대를 지배한 인간에 대한 사고, 혹은 인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이념은 ‘평균주의’ averagarianism라 규정지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 배경을 잠시 추적하자면 이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과학자 아돌프 케틀레Adolphe Quetlet는 사회문제에 자신이 본래 연구하던 천문학적 지식을 접목시켜 ‘평균법 method of average’이라는 당시로서는 독창적인 방법론을 개발했습니다. [1]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사회의 개개인관에 일대 변화를 일으키게 만들었습니다. 평균이라는 개념은 탄생 이후 이를 곧 ‘이상’이자 ‘표준’으로 여기는 사회 인식이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케틀레는 “사회의 한 특정 시대에서 어떤 개인이 평균적 인간의 모든 특징을 지니고 있다면 그 사람은 위대함이나 훌륭함이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상징하는 셈이다.” 라 주장했습니다.[2]
오늘날 평균적인 사람을 과거처럼 완벽한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여전히 한 집단, 유형의 전형적 표본으로 간주합니다. 사람을 단순화해 가정하고 분류, 결론짓는 경향은 케틀러에 의해 ‘과학적 정당성’을 얻고 당연한 사고관으로 지금까지 고착되어 왔습니다. 평균주의의 시대를 연 사람이 케틀러라면 이이를 단지 학문의 영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기업과 학교 교육, 국가 시스템의 주류 조직원칙으로 확산시킨 주인공이 바로 프레더릭 윈슬로 테일러 Frederick Winslow Taylor 입니다.
경제, 사회학자 제레미 리프킨 Jeremy Rifkin은 “20세기 남녀의 사적, 공적인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3]로 그를 언급할 정도로 그의 과학적 관리법은 전 세계 산업계, 나아가 교육계까지 휩쓸었습니다. 1927년 국제연맹 League of Nations (UN의 전신)은 “미국 문명을 규정하는 하나의 특징"[4]이라고까지 칭했습니다.
그는 1890년대부터 평균주의를 차용해 평균법이 오류를 최소화해준다는 가정과 같은 방식으로 조직의 비효율성을 최소화해줄 새로운 산업조직의 비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표준화Standardization’였습니다. 그에게 인간의 ‘창의성’은 오히려 독이었습니다. 독창적인 방식으로 일하려는 근로자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이었습니다. 테일러리즘의 ‘사고’의 주체가 ‘시스템’ 혹은 이 시스템을 기획하는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테일러는 기업이 근로자들에게서 모든 기획, 통제, 의사결정 권한을 빼앗아 새로운 ‘기획’ 계층에 넘겨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근로자)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여러분의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지휘하는 그 사람의 뜻을 섬기는 것입니다.”[5]
평균주의의 본질은 인간의 개개인성_Individuality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테일러는 매우 직접적으로 근로자의 ‘창의력’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기업은 여전히 지배구조로서 테일러식 조직, 지배구조를 고수하면서도 그러나 ‘창의성’을 외칩니다. 모순적인, 때로는 블랙 코미디_Black Comedy 같은 상황입니다. 기업, 학교, 정치 모두가 급변하는 환경에서 개인의 창의력, 이를 통한 혁신이 중요하다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현실은 누가 봐도 개인보다 시스템이 중요하게 설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조직 구성원들은 여전히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취급당합니다. 여전히 점수화되고 등급화되어 어딘가로 분류되고 내몰립니다. ‘초개인’의 첫 번째는 그렇게 우리 자신의 고유성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개개인성이 존중되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토드 로즈 Todd Rose 교수가 제시한 프레임워크[6]를 바탕으로 조직이 개개인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향성을 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째, 들쭉날쭉의 원칙jaggedness principle 입니다. 이는 인간, 사회 현상은 대부분 1) 다차원적이고 2) 이 차원들간의 관련성이 낮기 때문에 1차원적 사고로는 이를 온전히 해석할 수 없다는 관점을 취합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앞서 제시한 평가 결과 도출 예 – 항목별로 점수화하고 이를 다시 평균내 등급을 도출하는 방식 – 처럼 1차원적 사고가 깃든 접근은 전혀 효용성이 없는 왜곡된 결과에 불과합니다. 과거 구글 google 직원으로서 인사, 조직 관련 분석업무를 담당했던 토드 칼라일 Todd Carlisle은 어떤 차원의 재능이 구글에 중요할 것인지를 300가지 이상의 차원에서 분석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지원자의 GPA와 표준화 시험 점수가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그는 이 요소들 가운데 사실상 성공적 직원 발굴과 결부된 요소들을 분석하기 휘한 검증을 거듭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업무 영역별로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요소가 달랐으며, 심지어 단 하나의 업무 영역에서도 특정변수가 단독으로 부각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7]
결국 구글이 내린 결론은 구글에서 재능을 발휘할 만한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며, 그래서 구글이 채용을 잘하고 싶다면 그 모든 방식에 방심하지 않고 세심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칼라일은 구글 인재의 들쭉날쭉성을 감지했고 그에따라 구글의 채용 정책 역시 바뀌었습니다. (구글은 전세계에서 가장 신중한 채용을 진행하는 기업 중 하나로 유명합니다.)
토드 로즈Todd Rose는 우리가 서로의 들쭉날쭉성을 인정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재능에 대한 일차원적 관점에 사로잡혀 자신 및 타인의 역량을 제약하는 위험을 그만큼 줄일 수 있게끔 합니다. 또한 조직 구성원의 미발굴된 잠재력을 찾고, 또 한편으로는 약점을 간파해 이를 개선하도록 도와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집니다.
둘째, 맥락의 원칙context principle: 이에 따르면 개개인의 행동은 특정 상황과 따로 떼어서는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으며 어떤 상황의 영향은 그 상황에 대한 개개인의 체험과 따로 떼어서는 규명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행동은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독자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표출됩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규명한 아동발달 연구의 대가 유이치 쇼다Yuichi Shoda 워싱턴대학교 교수는 『맥락 속의 인간: 개개인의 과학 세우기The Person in Context』에서 ‘상황 맥락별 기질 if-then signature’로서 인간을 바라볼 것을 권합니다.[8]
예를 들어 당신이 동료 M을 이해학 싶다면 M은 외형적이다라는 판단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쇼다는 조금 다른 성격 묘사를 제안합니다. ‘만약(if) M이 사무실에 있으면 그럴땐(then) 대체로 외향적적입니다. 만약 M이 처음만난 사람을 마주한다면 그럴 땐 조금 외향적입니다. 만약 M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럴 땐 매우 내향적입니다.’
맥락의 원칙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직무상에서 강조하는 특정 역량, ‘자질’ 역시 본질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상황 맥락, 특정 상황과 엮여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자질’이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접근하는 태도가 잘 드러나는 분야 역시 일반 기업의 직원 채용 방식입니다. 직무의 최적임자를 찾는 문제에 관한한 기업의 대부분의 시스템은 ‘맥락’을 무시하도록 기술되어 있고 그 초반부터 지극히 ‘본질주의적’ 채용 도구를 내세웁니다. 이는 채용 공고 시 요구하는 직무 기술서 Job Description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B2B 영업 책임자의 직무에 대한 전형적 직무 기술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식의 자격 요건이 통상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 대기업, 외국계 기업 B2B 세일즈 경험 10년 이상
- 커뮤니케이션, 전략 수립, 리더십에 뛰어난 소질을 갖춘 사람
- 어려운 문제 해결 역량을 가지고 이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사람
- 학사학위 소지 필수, 석사 이상 학위 취득자 우대
이는 언뜻 생각하면 상식적인 방법입니다. 지원자들은 사람에 따라 특정 기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맥락의 원칙에 따르면 직원의 ‘본래적 기량’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 지원이 수행해야 할 직무의 수행력과 그 직무 수행이 행해질 맥락에 주목하는 편이 더 바람직합니다. 루 애들러Lou Adler는 직장을 맥락 중심에서 바라보는 시작에 착안해 “수행력 기반의 채용”이라는 새로운 채용법을 개발했습니다.
그는 고용주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수행되기를 바라는 ‘직무’에 대해 우선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맥락의 원칙에 따르면 채용에 있어 직무 기술서는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일반적 자격 요건보다 수행해야 할 직무의 상황과 맥락을 우선적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그 가운데에서 필요한 역량의 맥락적 구체성을 기술하는 형태로 재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루 애들러Lou Adler는 말합니다. “기업들은 하나같이 커뮤니케이션 능통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직무 설명서에 가장 흔히 기재돼 있는 기량이죠. 하지만 다방면에 걸친 ‘커뮤니케이션 능통자’ 같은 건 없습니다. 특정 직무에 필요할 만한 여러 종류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는 것이지, 그 모든 방면에서 능통한 사람은 없습니다.[10]
셋째, 경로의 원칙pathways principle: 우리 안에는 본래적 성격, 기량이 있다는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무엇이든 ‘적절한’ 경로가 있다는 믿음 또한 내재되어 있습니다. 걸음마 단계부터 학창시절 다니는 학원, 들어가야 하는 대학의 범주, 사회에 나와서 들어가면 좋은 기업까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정상적 경로가 있다고 가정하고 삶을 살아갑니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정상적 경로에서의 이탈을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로 간주합니다. 테일러는 이를 기업 조직에 매우 뿌리깊게 심어 놓았습니다. 기업에서 어떤 일이든 완수해내는 데는 ‘하나의 올바른 방법’이 있다고 봤던 그의 이념은 근무일, 출퇴근 시간, 주당 근무시간 등의 지속 기간을 결정하는 데도 이바지 했습니다. 평균적 인간에 대한 승진 경로, 보상 경로 역시 모두 테일러의 표준화 산물입니다. 하지만 현대 학문, 연구결과는 이런 ‘표준 경로’에 대한 신념, 가정이 상당부분 근거 없음, 혹은 오류로 판명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너무나 보편적이고 당연해 미처 의심치 않던 ‘걷기’조차 인간이 태어나 정상적으로 걷는 과정에서 표준적인 경로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11]
경로의 원칙은 인간의 발달은 생물학적 발달이든, 아니면 정신적, 직업적 발달이든 그 종류를 막론하고 단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라는 것이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12]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는, 그리고 그 어떤 특정 목표를 위한 여정 마저도 똑 같은 결과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갈래이며 그 길은 저마다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등결과성_equifinality이라는 탄탄한 (근거기반이 뚜렷한) 개념에 기초한 신념입니다. 이에 따르면 시간에 따른 변화를 수반하는 다차원 시스템은 그것이 어떤 시스템이든 간에 예외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다양한 길이 있습니다. 한편, 개인에게 가장 잘 맞는 경로는 개인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결정됩니다. 개개인은 들쭉날쭉 원칙_jaggedness principle과 맥락의 원칙_context principle에 따라 당연히 진전의 속도와 결과에 이르기까지 순서가 다양합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경로가 한 가지뿐이라고 믿으면 사람의 성장, 진전을 평가할 방법도 한가지 뿐입니다. 다시 말해 각각의 중대 시점마다 기준과 비교해 자신이 얼마나 더 빠르거나 느린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한 결과로 우리는 성장, 학습에 ‘속도’를 중요 척도로 부여함으로써 더 빠른 것을 더 훌륭한 것으로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속도’와 ‘학습능력’은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사회는 사람들에게 고정된 속도의 학습을 강요함으로써 수많은 학생의 학습능력과 성취력을 인위적으로 해치고 말았습니다. 모든 학생은 개별적인 속도에 맞춘 독자적 경로를 따르며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세계 어느 곳의 누구에게나 무료로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모토로 하는 비영리 교육기관 칸 아카데미Kahn Academy 설립자 살만 칸Salman Khan은 TED 강연에서 속도와 학습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통적인 모델에서는 특정 기간이 지나면 학생들을 단선적으로 평가해 ‘얘들은 재능이 있고 얘들은 더디네. 얘들은 특별반으로 배치하고 쟤들은 다른 교실로 배치해야 겠군.’과 같이 말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을 저마다의 속도에 맞춰 공부하게 해주면 6주 전에 더디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재능있는 아이들로 보이게 됩니다."[13]
Reference
[1] Todd Rose, 평균의 종말 THE END OF AVERAGE, 21세기 북스, 47-49p
[2] Adolphe Quetelet, Sur l’homme et le developpement de ses faculties, ou Essai de physique sociale (Paris: Bachelier, 1835): Trans. A Treatise on Man and the development of his Faculties (Edinburgh: William and Robert Chambers, 1842), 276, Todd Rose, 평균의 종말 THE END OF AVERAGE, 21세기 북스 55p 재인용
[3] Jeremy Rifkin, Time Wars: The Primary Conflict in Human History (New York: Henry Holt & Co. 1987), 106
[4] [1] Robert Kanigel, The One Best Wat: Frederick Winslow Taylor and the Enigma of Efficiency (Cambridge: MIT Press Books, 2005)
[5] Frederick W. Taylor, “Not for the Genius – But for the Average Man: A Personal Message,” American Magazine 85, no.3 (1918): 16-18, Todd Rose, 평균의 종말 THE END OF AVERAGE, 21세기 북스 78p 재인용
[6] 토드로즈Todd Rose, 평균의 종말 THE END OF AVERAGE, 21세기 북스
[7] Saul Hansell, “Google Answer to Filling Jobs Is an Algorithm,” New York Times, January 3, 2007
[8] Yoichi Shoda, Daniel Cervone, and Geraldine Downey, eds., Persons in Context: Building a Science of the Individual (New York : Guilford Press, 2007)
[9] Lou Adeler, Hire with Your HeadL Using Performance- Based Hiring to Build Great Teams (Hoboken: John Wiley & Sons, 2012): Todd Rose, 평균의 종말 THE END OF AVERAGE, 21세기 북스, 172p 참조
[10] 토드로즈Todd Rose, 평균의 종말 THE END OF AVERAGE, 21세기 북스, 172-173p
[11] 심리학자 캐런 아돌프 Karen Adoph 뉴욕대 교수는 28명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기어다니기 전부터 걸음마를 떼는 날까지 발달 과정을 추적 관찰한 결과 기어 다니기에 정상적인 경로라는 것은 없음을 밝혔다. 아이들은 25가지의 다양한 경로를 따랐는데 각 경로마다 독자적 동작 패턴을 띠었고 모든 경로가 걷기로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정상 경로에서 규정된 대로라면 기어 다니기는 특정한 순서대로 특정 단계를 따라야 맞았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12] 토드로즈Todd Rose, 평균의 종말 THE END OF AVERAGE, 21세기 북스, 185-190p
[13] Salman Khan, TED, http://www.ted.com/speakers/salman_k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