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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지 Oct 10. 2024

양궁과 자세 #07 앵커

앵커(anchor): 나만의 기준으로 중심 잡기

양궁을 시작한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처음 왔을 때를 떠올려보니 처음엔 이걸 어떻게 하지? 생각했던 것들이 제법 익숙해진 게 신기하다. 자세를 차근차근 잡아나가는 게 꽤 재밌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처음에는 산이가 좋아서 양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가, 양궁체험했던 그날의 느낌이 자꾸 떠올라 다짜고짜 양궁장을 찾았고, 일반인 대상 수업도 없는데 조르고 졸라 시작했었다. 시작은 조금 얼렁뚱땅이었지만 정말 운이 좋았다.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고 양궁이 나한테 잘 맞는 운동이라는 걸 점점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한 달 배워 보고 결정하기로 했는데, 확신이 들어 오늘 세 달 연장도 했다.


오늘은 슈팅 전까지의 자세를 연습했고, 5m를 쏘다가 7m로 거리를 늘렸다. 과녁이 멀어지니 왼팔의 안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체감된다. (몰랐는데 엄청 흔들리고 있었구나...) 전체적인 텐션이나 각각 구분자세들이 조금씩 익숙해졌고, 활 당기는 게 편해졌다. 이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아서 매일 나오고 싶을 정도다! 너무 재밌어서 3시간이나 쐈다. (열사병 조심...★)  


거리를 늘려본 김에 10m도 쏴봤는데 70m를 쏘는 선수들이 너무 대단하다. 10m도 조준점이 조그맣게 보이는데 70m를 어떻게 조준하고 쏘는 걸까? 스코프도 처음으로 사용해 봤다. 저~ 멀리 있는 과녁이 선명하게 잘 보인다! 제일 신기한 건 스코프 브랜드가 스와로브스키라는 거! 500~600만 원이나 한다고 한다. 보석 세공 때문에 유명한 걸까? 너무 비싸다... 그렇지만 선명해...


중간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 선생님께서 자세 좋은 선수들 영상을 보는 게 도움이 된다면서 세계선수권 영상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난 이미 산이 덕질하면서 실시간으로 봤던 영상이었다.. 하하 나도 모르게 벅차올라서 이 영상 실시간으로 봤었다고 말하는 바람에 나의 덕질이 제대로 들통나버렸다...(해외경기라 우리나라에서 실시간으로 보려면 새벽에 봐야 하는... 그런 경기였음...) 선생님은 내 속도 모르고, 원하면 사인을 부탁해 보겠다며 필요한지 물어보셨다... (이미 받았다고요ㅠ ㅠ) 덕질이 계기가 되었지만, 내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양궁! 앞으로도 행복양궁 가보자고~!



➹ 오늘의 양궁언어 - 화살과 스파인(spine)

화살은 주로 카본으로 만들어진다. 카본은 힘을 가하면 모양이 바뀌었다가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탄성이라는 성질을 지닌다. 화살은 날아갈 때 바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출렁이면서 비행하게 되고, 이렇게 활이 출렁이며 날아가는 현상을 파라독스라고 부른다. 화살의 비행이 안정적이려면 이 파라독스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장비를 세팅해야 한다.


나에게 맞는 화살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내 활 세기에 맞는 스파인을 확인하는 것이다. 스파인은 번호로 확인할 수 있다. 활의 힘이 세다면 비교적 낮은 스파인을, 활의 힘이 약해지면 높은 번호의 스파인을 가진 화살을 고르면 된다. 스파인 외에도 화살의 길이, 촉의 무게, 깃의 형태 등 많은 것들이 화살에 영향을 준다.


나는 지금 1300 화살을 사용하고 있는데, 600으로 테스트해 보니 화살이 날아가는 힘이 다르다. 스파인이 낮으면 그만큼 큰 힘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적중률이 높아지긴 하지만, 내 활의 힘과 맞는 정도의 힘을 가진 스파인을 사용하지 않으면 원하는 방향으로 화살을 보낼 수 없다. 그러니 적중률을 높이고 싶다면 기초체력과 활체력을 기르고, 활 파운드를 높여서, 더 낮은 스파인의 화살을 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 양궁과 장비 - 슬링

양궁을 할 땐 활을 손으로 잡지 않고 밀면서 쏘게 되는데, 그러면 현을 당기고 놓는 반동에 의해 활이 앞으로 튀어나가게 된다. 이때 슬링을 이용하면 활을 손으로 잡지 않아도 슬링에 활이 걸리면서 떨어지지 않고 돌아가게 된다.


오늘은 자세가 잘 나와서 슬링을 새로 차 봤다. 슬링은 화살을 실뜨기하는 느낌으로 엄지와 중지에 슬링을 감아 활을 고정하면 된다. 활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무게중심을 앞으로 두기 위해 스타비 앞에 추도 추가했다. 그런데 활이 앞으로 떨어지고 돌아가는 게 자꾸 의식돼서 동작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선생님은 멘붕에 빠지셨다... 전 괜찮아요^^! 하니까  내가 안 괜찮아요ㅠㅇㅠ! 하시던 모습이 선명하다… 그래도 뭔가 잘 해내고 있으니까 욕심을 내시는 것(?) 같기도 해서 내심 기뻤고, 다시 슬링이랑 추 빼고 나의 장점인 잘 까먹기^^를 이용해 다시 감각을 되찾았다!



➹ 오늘의 필기

➊ 활 쏜 후 릴리즈 (오른손이 반동에 의해 뒤로 빠지는 것) 매우 중요!

➋ 그립을 잊지 말자! 안정적이게, 민다는 느낌으로 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하기

➌ 앵커위치 + 현이 코에 닿는 위치 감각 익히기

➍ 셋업 할 때 오른손 활 따라 딸려나가지 않게! 오른손을 그대로 위로 올리기 (팔꿈치 이용해서!)

➎ 앵커 - 드로우 - 릴리즈까지 힘 유지!

➏ 끝까지 집중하고 쏘기.

➐ 양궁은 이완운동이다! 힘을 빼 자!



➹ 앵커(anchor) : 나만의 기준으로 중심 잡기

앵커는 ‘닻을 내린다’, ‘고정시킨다’는 의미를 가진다. 양궁에서 앵커는 셋업 - 드로잉 동작을 지나 안정된 풀드로우를 하기 위해 적절한 턱의 위치에 당기는 손을 고정시키는 자세를 말한다.


이 자세에서는 턱에 활줄을 고정시키면서 밀고 당기는 좌우 힘의 팽팽한 균형감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중요한 건 역시나 일정성! 앵커의 위치가 달라지면 일정한 타임으로 슈팅을 할 수 없으므로 매우 중요하다. 턱 아래에 닿는 손과 현이 코, 입, 턱에 고정되는 올바른 위치를 몸으로 느끼고 잘 기억하고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드로우를 마친 후 앵커와 조준에 집중하게 되면 미는 힘이 떨어지게 된다. 미는 팔의 힘과 어깨의 위치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의식하면서 당기는 힘만큼 왼팔을 버티며 좌우밸런스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활줄이 나를 중심으로 안정되게 당겨질 수 있고, 활줄을 턱 아래에 고정시키며 당기는 손과 팔이 내 몸에 밀착된 느낌을 느껴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위치에 화살을 보낼 수 있다.


앵커를 잘 고정해야 해!라고 생각하면서 과녁에 조준하다 보면 얼굴이나 턱, 입술을 내밀게 되거나, 손가락으로 현을 움켜쥐게 된다. 선생님은 내가 이런 행동을 할 때 ‘과녁에 마음이 가 있어서 그렇다’는 말씀을 하신다. 양궁을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마음이 과녁에 가 있으면 실수하게 된다. 과녁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게 된다거나, 힘이 과하게 들어간다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면 지금 여기에 충실해야 한다. 벌어지지 않은 미래에 집중하며 힘을 쓰기보다 현재에 마음을 두고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쓸데없이 무거워지지 않고 가볍고 산뜻하게 화살을 보낼 수 있다.


앵커라는 자세는 고정한다는 의미를 가지지만, 고정하는 자세만을 앵커라고 부르긴 어렵다. 제대로 고정하기 위해 몸이 올바르게 정렬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버티는 왼팔의 각도와 고개의 위치, 목과 어깨의 거리 등... 중심을 잘 잡으려면 중심을 기대기 위한 환경에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사실 이 앵커라는 자세는 2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큰 숙제다. 올바른 위치를 알고,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일정성을 가지는 일. 30년을 넘게 살아온 삶 속에서도 이 중심을 잡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데, 일주일에 고작 2번 양궁을 취미로 하는 내가 이 자세를 빠르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리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머리로 배우고 몸으로 까먹는 이 과정을 반복하며 앵커를 내 자세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겠다.


양궁의 자세를 배우면서 재밌는 건, 타고난 신체조건에 따라 본인에게 맞는 자세가 조금씩 다르다는 거다. 그러니 억지로 자세를 만들거나 권장되는 방법에 집착하기보다는 내 몸에 맞는 길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고, 특히 앵커라는 자세가 그렇다.


중심에 대한 기준이 온전히 나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 나의 리듬대로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고 그걸 계속 되뇌는 것,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우직하게 나아가는 것.


앵커자세의 감을 잡은 것 같다가도 모르겠는 날, 그렇게 다시는 이 자세를 바로잡을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신기하게 다시 알 것 같은 날엔 항상 처음 중요하다고 했던 초심의 자세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삶에서도 뿌리가 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잘 가꾸고 돌보는 힘과 태도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까먹는 날에, 또 흔들리게 된다면 앵커가 알려준 삶의 태도를 들춰봐야겠다.



➹ 양궁의 자세

양궁은 발사선에 서서 활을 쏘기까지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➊ 스탠스(stance): 발사선에 서기

➋ 노킹(nocking): 화살을 활줄(현)에 끼우기

➌ 그립(grip): 활의 핸들을 손으로 밀기

➍ 후킹(hooking) : 활의 현에 손가락 걸기

➎ 셋업(set up) : 활이 표적 방향으로 향하도록 팔을 들어 올리기

➏ 드로잉(drawing) : 미는 팔과 당기는 팔의 균형 유지하면서 현 당기기

➐ 앵커(anchor) : 턱 아래에 손 고정시키기

➑ 풀드로우(full draw) : 표적에 조준한 채로 릴리즈 동작까지 집중하기

➒ 릴리즈(release) : 화살을 손가락에서 풀어주기

➓ 팔로스로우(follow through) : 릴리즈 한 (오른) 팔의 힘 이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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