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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삼수를 지지하는 이유

다시, 스몰 스텝 - 박요철의 이야기 (5)

첫째가 재수 끝에 호원대 실용음악학과 후보 1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알고보니 이 쪽에선 이른바 '서동호'로 불리는 탑티어에 속하는 학교였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던 슈퍼스타 K 출신의 장재인 등이 졸업생이라고 한다. 처음엔 몰랐는데 누군가와 톡으로 대화를 하다가 울컥 눈물을 쏟았다. 그래도 아빠라고 마음 고생을 조금은 했던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또 마음대로 할 수 없는게 자식들이 아닐까 싶다. 나의 잘난 점보다는 못난 점을 물려준 것 같아 마음 아플 때도 많다. 중학생이던 첫째가 등교 거부를 하던 뜻밖의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누가 봐도 루저로 낙인 찍힐 듯 보였던 대안학교 시절을 지나 계원예고에 입하하던 그날, 그리고 다시 6개월 만에 학교를 뛰쳐나온 아들을 어떻게 대할지 난감해하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한 가지 다행인건 아들에겐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얘기를 들어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지켜볼 뿐이었다.


아들은 오후 2, 3시가에 되면 겨우 일어나 세상 무기력한 모습으로 밥을 먹는다. 학원을 간다. 그리고 연습실을 빌려 밤 11시까지 있다가 또 다시 무기력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다. 또다시 밤새 무언가를 하다가 새벽 4,5시가 되어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학원비와 연습실 대여비만 매달 10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아빠로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생활 습관이다. 물론 다른 아이들과 굳이 비교를 하진 않았다. 나는 아이의 행복을 원한다. 하지만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이제서야 소설가 김영하 씨의 아버지가 다 큰 아들이 밤새 글을 쓰다가 남긴 재털이를 비웠다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분 역시 매일 그렇게 아들을 향한 불만과 의심과 체념의 재털이를 비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 우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는 다시 아이에게 그 우울감을 물려주었다. 좋게 말하면 예술가적 기질을 물려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닥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다려주었다.


자퇴를 포함해 이제껏 세 번의 입시를 치루었다. 단 한 번도 합격 가까이 가본 적이 없다. 첫째는 유달리 무기력한 아이였요. 입시를 치러 가면서 수험표나 신분증을 집에 두고 가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실제로 어느 해인가는 서울예대 시험을 치르지도 못한 적도 있었다. 수험 등록 날짜를 까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모라지만 울화통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삼수까지 각오했지만 이 사실을 아는 내 친구들의 걱정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낙오자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후보 1순위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나름 동아방송대를 아깝게 떨어진 아들은 호원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막상 가능성 있는 소식을 접하니 온 가족이 달 뜬 기분으로 그 날 저녁을 보냈다. 나도 모르게 두둑한 용돈을 주었다. 하지만 다음 날 저녁 아들과 엄마는 또 새벽까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원하던 학교가 아니었던게 문제였다. 결론은 학원 입시 담당 선생님과 논의 후 결정하자였다.


다시 다음 날이 밝았다. 면담을 다녀온 아이 엄마는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예상과 다른 학원의 제안 때문이었다. 호원대 입학을 독려할 것이라는 에상과 달리 원장님까지 가세한 학원은 한 해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 재즈 쪽은 거의 교수 수준의 실력을 갖췄다고 했다. 그럴만도 했다. 그쪽은 자기가 알아서 뉴욕의 뮤지션에게 줌으로 개인 지도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발라드와 같은 대중 음악 쪽은 그렇게 약하다고 한다. 그것도 당연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아니면 잘 안하는 아이였으니까.


그런데 그 쪽은 조금만 더 연습하면 된다고 말한다. 사비를 털어서까지 첫째를 가르쳤던 학원의 입장은 다음 해를 노려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아이가 원하는 쪽으로 가자고 말해둔 상태였다. 졸지에 학원에서 쿨한 아버지로 낙인?이 찍혔버렸다. 그렇다. 나는 한 번 더 아이를 믿어보려고 한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건 누구나 두려운 법이다. 하지만 남들 가는 길을 생각없이 따라가는건 더 싫다. 나 역시 2,30대의 시간을 한없이 무기력하게 보냈다. 학교며, 회사며 당연히 가야 하는 줄만 알았다. 남 모르게 울면서 다진 때도 있었다. 그리고 40대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굳이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저는 7년 째 홀로 일하고 있다. 우려와 달리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수입은 몇 배로 늘었다.


최근엔 세바시와 1년 24번의 브랜드 수업을 시작했다. 작은 브랜드의 연합체인 스브연, 즉 스몰 브랜드를 위한 연대 모임을 만들었다. 놀랍게도 100여 명 가까운 분들이 함께해주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들을 지금 혼자 해내고 있다. 하지만 외롭지는 않다. 다양한 형태의 연대로, 많은 일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로 소속은 되어 있지 않아도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나고 또 함께 일하고 있다. 더 놀라운건 누가 봐도 대단한 분들이 굳이 저를 찾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첫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금 기타를 전공하고 있지만 굳이 기타리스트가 되지 않아도 좋다. 음악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친구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한 후엔 무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 집 안엔 예술을 하는 사람이 지금까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다. 음주가무?를 즐겼던 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유전자가 혹 있었다손 치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 포기했었을 것이다.


세상 예뻤다던 고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가족의 기억 속에서 강제로 지워졌다. 큰 아버지는 평생 방랑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게 다 예술가적 기질의 한 단면을,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작은 시대의 비극으로 기억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그 유전자를 내리받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들이 자신의 방법대로 삶을 꾸려나갔으면 좋겠다. 부모인 내가 할 일은 그저 낙오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어 뒤를 받혀주는 것 뿐이다.


학교 밖 아이들이 서울에만 수만 명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또 각자의 사연을 가진채 그들만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부모들이 다 저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 거라는 것,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1,2등급이 아니면 아무 의미없다는 대학을 왜 그렇게 다들 가야만 할까. 물론 좋은 대학을 나오면 인생의 출발점이 달라지는 건 사실이. 만나는 사람, 주어진 기회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개성과 기질을 싸그리 무시한채 갈아넣듯 입시에 매달리는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나름의 결을 가지고 태어난 소중한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그 아이는 어쩌면 혼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아이일지도 모른다. 입시보다는 예술에, 스포츠에, 관계 맺기에 더 많은 재능을 갖고 있을수도 있으니까. 그런 아이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돌봐야할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면담을 마친 첫째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 길로 바로 연습실로 갔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돈을 많이 벌어 아이를 미국이나 영국으로 보내고 싶다. 최소한 우리나라보다는 예술가의 삶을 더 존중해줄 거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목표는 단 한 가지다. 아이의 행복이다. 비록 그 길을 제가 미리 가본 것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어차피 세상에 단독자로 불려진 존재인 것을.


내가 행복해야 비로소 그 다음에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어차피 세상은 불공평하다. 똑같은 출발선에서 내달리는 경주가 아니다. 그저 각자의 방향으로, 각자의 속도대로 갈 수 있는 만큼 사방으로 내달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아이의 삼수를 지지한다. 그때도 떨어진다면 그때 가서 다시 머리를 맞대어보겠다. 우리의 진짜 목적은 대학 합격이 아니라 첫째의 행복, 오직 그 하나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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