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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도 자퇴했습니다

다시, 스몰 스텝 - 박요철의 이야기 (4)

솔직히 욕 먹을 줄 알았다.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냐고, 오냐 오냐 하다가 큰 일 난다고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다. 적어도 열에 한 두 분은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브런치에 소개한 이 글을 무려 2만 6천 명이 읽어주고 가셨다. 무려 200회 가까이 공유되었다.


적지 않은 댓글이 달렸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댓글이 길게 여운이 남는다. "나도 이런 부모님이 있었더라면..." 뿌듯함과 민망함이 묘하게 겹치는 걸 어쩔 수 없다. 정말 나는 이 분이 이런 말을 할 만큼 좋은 부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하루는 딸과 드라마 '환혼 2'를 같이 보고 있었다. 나는 진부연, 즉 낙수 때문에 보지만 딸은 서율을 좋아한다. 9화의 엔딩을 보고 딸이 흥분해서 내일 마지막 화의 내용을 스포한다. 그새 검색을 했나 보다. 괘씸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 다음날은 딸과 함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딸이 한 때 성우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이번 극장판에서는 그 성우가 서태웅 역을 맡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츤데레 캐릭터다. 그러고보니 딸이 나랑 함께 뭔가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예전에는 곧잘 볼에 뽀뽀도 해주고 했는데... 아마 나만의 아쉬움은 아닐 것이다.


나는 거실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때마다 딸이 커다란 엉덩이를 들이밀고 어깨를 맡기는 때가 종종 있다. 한마디로 주물러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때론 손이 아플 때까지 머리와 어깨, 등을 마사지해주곤 한다. 딸은 성격도 좋고 친구도 많다. 그냥 전형적인, 수다 떨기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여학생이다.


그래서 눈에 띄게 예민한 아들과는 달리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알아서 척척 잘 하는 아이였기 때문다. 그런데 최근에야 알았다. 우리 딸이 느린게 아니라 예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저 쾌활한 아이가 아니라 잘 참는 아이였을 뿐이라는 것도. 그래서인지 딸은 스트레스 때문에 밤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내가 싫은 척 하면서도 딸을 마사지해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딸 아이가 학교를 자퇴한 것은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내 모든 관심은 딸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그 좁은 오솔길을 찾아가는데 있기 때문이다. 딸은 항상 이렇게 투덜거리곤 한다.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럴만도 하다. 기타를 좋아하고 전공했던 아들에 비해 딸은 특출나게 잘하는게 없다. 그냥 성격 좋고 밝지만 성적은 좀... 그런 아이였다.


그런 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쉬게 하는 거였다.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주는 일이었다. 그 다음에 조금씩 뭔가를 해볼 의욕을 갖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은 지금 보컬 학원을, 미술 학원을 다닌다. 그것도 입시와 전혀 상관없은 취미 활동으로 말이다.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면 이제 아이들 걱정을 나누는 일이 많아졌다. 올해만 해도 친구의 아들 둘이 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실기 시험을 치러가는 녀석이 신분증을 빼놓고 갔다고 한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저런 정신머리로 뭘 하겠다는 건지 아빠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다 문득 밤새 뭔가를 끄적이는 아들의 재털이를 털어주었다는 소설가 김영하의 아버지에 대한 소회가 생각이 났다. 나는 아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그 모든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은 오롯이 아들 몫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집을 지어놓고 기다릴 수는 있다. 어쩌면 그게 부모의 몫은 아닐까.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저는 딸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 중에서도 집 앞에서 활짝 웃던 딸의 모습은 제 기억 속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교실에 앉아 친구들과 얘기 나누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런 딸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딸과 함께 '뉴진스'의 덕질을 하는 것이다.참고로  딸은 민지를, 저는 혜인이를 좋아한다.


물론 저는 지금까지 아이돌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런 덕질 때문에 딸과 데이트를 좀 더 자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아빠의 마음을 딸이 전혀 모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런 밀당이 좋다. 딸은 자퇴했지만 '우리의' 집에 머물러 있다. 이 집도 언젠가는 떠나야만 하겠지만, 괜찮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언젠가 기어이 찾고 말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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