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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자퇴하던 날

다시, 스몰 스텝 - 박요철의 이야기 (3)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어느 날 첫째가 울고 있었다. 착하고 성실한 아이였다. 그런데 학교에 가는게 싫고 두렵다고 했다. 며칠, 그리고 한 달 그렇게 유예 기간을 두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중학교는 졸업해야 했기에 방법을 찾아나섰다. 대안학교를 발견했다. 그곳을 다니면 출석일수를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첫째인 아들은 겨우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둘째는 그 시간이 조금 늦게 찾아왔다. 중학교를 별 탈? 없이 무사히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당연히 수업량도 많고 시험도 치고 성적표도 나왔다. 그런데 딸은 무언가를 배우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다. 엄마와 함께 새벽까지 공부하는 시간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학기를 열심히 공부하던 딸에게 어느 날 번아웃이 왔다. 딸도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다고 했다. 내 마음 한쪽이 조용히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우리 때만 해도 학교를 나온다는 건 상상 밖의 일이었다. 아무리 힘들도 싫고 어려워도 학교 안에서 해결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다. 학교 가기 싫은 날이 참 많았다. 그러나 견디고 견딜 뿐 대안은 없었다. 문제는 그런 시간이 회사를 가서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우울증, 공황장애, 공황발작을 차례로 경험했다. 그리고 마흔 중반 드디어 회사를 나왔다. 그제서야 알았다. 나는 잘 짜여진 조직에 다니기 힘든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딸이 독학으로 배워 그린 그림.


오해는 마시길. 직장 생활은 열심히 했다. 15년 이상을 견뎠다. 우울도 겪고 병원도 다니고 약도 먹으면서 버티고 버텼다. 직장 밖은 지옥이라고 믿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홀로 일한지 5년 차, 오히려 회사 다닐 때 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행복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들도 딸도 나의 유전자를 얼마간 나눠 가졌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겪은 고난의 길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와 회사 생활이 조금 더 어려운 유전자를 타고 났을 뿐이다. 그건 아이의 무능함이나 부모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다. 난는 그저 조금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우리 집안에는 우울의 유전자가 뼛속 깊이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비밀이었던 고모는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큰 아버지는 평생을 방랑하는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음주가무를 좋아했지만 그 밖의 날은 집안에 머무는 날이 많은 분이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남동생도 꽤 심각한 우울을 경험했다고 했다. 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힘들어하는 것에는 그런 이유도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중학교를 졸업한 아들은 기타를 좋아했다. 우연히 동네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단체 수업을 들었던 아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수강생이 되었다. 그리고 단 한 명을 뽑는 계원예고 실용음악과 기타 전공에 합격했다. 물론 고등학교 생활도 순탄치는 않았다. 6개월 만에 학교를 나왔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뉴욕의 뮤지션으로부터 줌으로 사사를 받으며 재수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하루 종일 학원에 살다시피 한다. 그러나 밤 11시쯤 돌아와 엄마와 한 시간 가까이 수다를 떤다. 나는 아들이 미국이나 영국에서 좀 더 넓은 세계의 음악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줄 계획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딸이 선물도 해주었다.


딸은 아들과 달랐다. 친구를 좋아하는 사교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아주 섬세한 아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관계에 민감한 아이는 상처도 쉽게 받는 타입이었다. 무엇보다 뭔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아이였다. 하다못해 뭘 먹을지, 선물을 주면 뭘 갖고 싶은지 오래 오래 고민하는 아이였다. 당연히 학교 생활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딸은 지금 미술과 보컬 학원을 다닌다. 그 중에서도 그림을 그릴 때는 몇 시간씩 집중하곤 한다. 아마도 느리고 섬세한 아이라서 가능할 일일 것이다.


아빠인 내가 마냥 느긋할 수만은 없다.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배웠습니다. 학교, 회사 같은 정해진 길만이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저는 두 아이가 자기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이유로 나는 '스몰 스텝'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개성, 기질, 역량을 최대한 펼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 길을 아직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필코 그 길을 함께 찾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남들이 가지 않는, 숲 속의 오솔길이라고 해도 말이다.


우리는 자주 두 갈래의 길을 만난다. 그러나 용기 있는 자는 발자국이 없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그 길은 때로는 기회의 땅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학교는 아이들의 능력 중 아주 일부만을 발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장치일 뿐이다. 회사 역시 모든 사람의 섬세한 차이를 발견하고 발현하는데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과 딸의 길을 함께 걸어보려 한다. 내가 스몰 스텝으로 그 길을 걸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응원하고 지원할 것이다. 어차피 가족이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관계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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