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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브랜드의 연대를 제안하다

다시, 스몰 스텝 - 박요철의 이야기 (2)

우리나라에는 10개 남짓의 브랜딩 전문 회사들이 있다. 물론 이 회사들에서 독립해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브랜딩 자문을 받는 데에만도 수천 만원이 필요한 이 회사들에 작은 브랜드들이 도움을 청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립한지 채 6년이 되지 않은 나는 이들을 돕는 일이 가능했다. 그렇게 5,60개의 업체들을 도와 작은 회사들을 위한 브랜딩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회사가 작다고 해서 이들의 브랜딩을 향한 의지와 노력까지 작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요즘은 아무리 작은 카페 하나를 해도 사장님들이 먼저 브랜딩을 고민하는 세상이 되었다. 중견 기업들은 브랜드를 공부한 2세들이 경영 일선에서 성과를 낸 경우가 작지 않다. 덕화명란, 삼진어묵, 피스 코리아, 일광전구, 지평 막걸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브랜딩은 자본과 인력이 풍부한 큰 회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동네에서 아주 작은 과일 가게 하나를 해도 사장님이 브랜드를 공부하는 세상이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열정과 노력을 가이드할 전문 인력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과 기관들이 진행하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은 이론과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과연 이들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지식인지 의문이 드는 과정들도 적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이들에게 필요한 현장의 브랜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어떤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성공한 작은 브랜드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수많은 시행 착오와 맨땅에 헤딩하기 식의 실수를 거듭하는 데는 예외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분들을 한 곳에 모아볼 생각으로 '브사세' 때와 같이 구글 폼에 저의 이런 생각을 한줄 한줄 적기 시작했다. 각각의 경험과 장점을 가진 스몰 브랜드들이 서로 모여 교류를 시작하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담아 '스몰 브랜드 연대'란 모임을 제안했다. 2023년 2월 초의 일이다. 그리고 3월이 채 가기 전에 100여 명이 회원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의 특강과 한 번의 네트워크 모임, 두 번의 실무 특강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나는 스브연의 첫 번째 특강이 열리던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10층의 열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날의 강사는 외부 강연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박종윤 대표였다. 1시간 정도로 예정된 강의가 2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끝나지 않았다. 현장은 물론 줌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이 강의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브랜딩과 마케팅이 결코 큰 회사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모두가 경험한 날이기도 했다. 모임과 뒷풀이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내 스스로에게 이렇게 뿌듯함을 느낀 경험을 언제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작은 회사와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경험에까지 이르는 방법은 결국 '스몰 스텝'이었다. 어느 날 떠오른 생각을 이미지 한 장 없는 구글 폼에 담았다. 그리고 그 생각에 동의한 100여명의 스몰 브랜더를 채 두 달이 지나기 전에 모을 수 있었다. 역시 구글 폼 한 페이지를 통해 500여 명의 수강생을 모았던 '브사세' 처럼 말이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이트를 1년 동안 개발한 적이 있었다. 수억 원의 투자비가 들어간 이 프로젝트의 PM이 바로 나였다. 여러 명의 전담 직원은 물론 방학 때 실습을 위해 찾아온 대학생 인턴들도 모두 이 작업에 투입되었다. 멤버십 프로그램 하나를 기획하기 위해 무려 한 달간 치열한 토론을 거친 이 사이트는 결국 제 생애 가장 큰 실패의 경험으로 지금 남아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 사이트는 결국 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흑역사로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실패의 이유는 다양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이 사이트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과 철저히 유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회사가 필요한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이 사이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필요와 목소리를 듣는데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개발 과정에도 고객들이 낄 자리는 없었다. 우리는 찾아오지도 않을, 그들이 관심도 가지지 않을 멤버십 프로그램의 빈 팀을 메우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사세와 스브연을 시작한 저의 생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작게 시작할 것, 고객들과 함께 만들어갈 것, 이 두 가지 원칙을 뼛 속 깊이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랜딩'을 회사의 CI와 BI를 바꾸고 네이밍과 슬로건을 만드는 정도로 오해하는 분들이 작지 않다. 사실 수많은 브랜드 에이전시들이 실제로 오늘날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전에서의 브랜딩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다. 예를 들어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을 위한 메뉴를 개발하는 과정도 하나의 브랜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손님은 자신을 향한 이 가게의 '환대'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브랜딩의과정에서 가장 먼저 힘을 쏟아야 할 영역은 '업의 본질'을 확인하는 일이다. 우리가 왜 이 가게를 시작했는지, 왜 이 과일 가게를 오픈했는지, 왜 이 카페를 해야만 하는지를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 왜냐하면 이 과정에서 진정한 의미의 '차별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화장품은 많다. 하지만 고객의 내일을 바꾸고자 하는 화장품 브랜드는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제품과 서비스의 담긴 '가치'이다. 그리고 이 가치는 고객들의 결핍, 문제, 불안, 필요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가치는 자신의 '업'이 가진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나는 이론은 물론 현장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스브연이 그랬다. 저는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가진 고민과 불안을 여러 번의 컨설팅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도 매출을 고민한다. 생존이 가장 절실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판촉이고 홍보이다.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차별화'다. 장사가 잘된다고 해도 반가울 수만은 없는 것은 곧바로 비슷한 아이템의 경쟁 가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경쟁하는 가게가 더 크고 화려한 규모와 인테리어로 승부한다면 이 싸움은 더 힘들어진다. 그리고 그제서야 우리 가게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스브연은 그러한 스몰 브랜드의 고민을 해결해줄 방법으로 '연대'를 제안했다. 작은 물고기가 큰 포식자를 상대할 때면 수천 수만 마리가 힘을 모아 '군영'이라는 무리를 만든다. 이렇게 되면 포식자 물고기는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는 작은 물고기를 공격하는데 애를 먹는다. 비록 자연이 만들어낸 본능이지만 나는 이것이 스몰 브랜드가 '함께 모여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 생각은 현실이 되어 다양한 특강과 프로그램들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어느 수요일엔 스브연의 첫 번째 '네트워킹 파티'가 열렸다. 특강 한 주 뒤에 열리는 이 모임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비슷한 규모의 스몰 브랜드와 깊이 연대하고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역시 스브연 멤버인 사장님의 카페가 흔쾌히 장소를 공유해주었다. 흑석동 3번 출구에서 계단 하나만 내려오면 만날 수 있는 이 카페는 2층에 있다. 카페 주인 부부가 일일히 열을 맞춰 만든 마루바닥은 세려된 요즘 카페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2층이라 탁 트인 전경은 이 카페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스스로 대한민국 0.01%의 커피를 만들어낸다고 자부하는 카페 주인장은 바 형태의 테이블에서 손님들을 맞는다.


나는 이 공간이 '스몰 브랜딩'을 고민하는 우리들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첫 번째 모임을 하고 보니이런 이런 내 생각이 짧았음을 알 수 있었다.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온갖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이 공간을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 내가 관여한 부분이 아주 작았다는 부분도 저에겐 흐뭇하기 짝이 없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이 날의 모임은 자신만의 유니크한 양말을 준비하는 드레스코드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신고 온 양말들로 우리는 마루 바닥을 걸으며 런웨이를 함께 했다. 저마다 왜 이런 양말을 신고 왔는지를 얘기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파티 음식들은 운영진이 준비했다. 과일은 역시 스브연 멤버인 '스위트리'의 대표님이 공수해주었다. 왜 우리가 이곳에 모였는지를 이야기하는 짧은 발표 시간을 가졌을 뿐인데도 시간은 10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점은 이 모든 행사를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발적인 기획과 준비로 진행했다는 점이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나누는 이야기는 뜨겁고 간절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이 모임은 아마 어지간한 열심이 아니면 참석하기 힘든 소중한 모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이것이 브랜딩의 핵심, 즉 고객의 필요와 문제와 결핍과 불안을 공유하는, 즉 브랜딩의 핵심적인 목표 및 과정과 맞닿아 있다고 자부한다. 이 모임에서 나눈 수없이 많은 아이디어들이 현실로 나타날 앞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다.


'스몰 스텝'은 제 인생을 바꿔 놓았다. 내가 가진 필요와 욕망에 충실할 때 어떤 결과들이 만들어지는 그동안 충분히 경험하고도 남음이 있다.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회를 얻었는지를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나는 스몰 스텝을 통해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발견했다. 아울러 그 일을 통해 회사를 다닐 빼보다 5배, 많게는 10배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그로 인해 제가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바로 그것이다.


이 충만함은 바로 제가 발견한 '가치'에서 온다. 사람들의 고민에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해주고, 함께 솔루션을 개발하는 과정이 바로 스몰 스텝이 내게 알려준 지혜다. 그 결과 나는 '박요철'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구체화해갈 수 있었습니다. 브사세를 통해, 스브연을 통해 저는 예전의 제가 꿈도 꾸지 못했던 여러가지 경험을 계속하고 있다. 브사세를 통해 수백 명의 브랜드에 관심있는 고객을 만나고 있다. 스브연을 통해 100여 명의 스몰 브랜더는 물론 평소에는 만나기도 힘들었던 특급 강사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놀라운 변화의 시작에는 '스몰 스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이제 '스몰 브랜드'란 새로운 키워드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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